레일 위, 구두 한 켤레 / 김근혜

구두 한 켤레가 기차 레일 위에 놓여 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듯 광택이 바래고 먼지가 엷게 내려앉아 있다. 전시회에서 본 사진이다.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신발 주인이 남기고 떠난 빈자리를 들여다본다. 주인 잃은 구두는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듯했다. 구두는 가벼워 보이나, 닳은 뒤축이 주인의 무거웠던 삶을 대변한다.

구두의 뒷모습이 초점 밖으로 흔들렸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흔들림이 오히려 선명한 질문을 던져왔다. ‘구두 주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에게는 꽃길이었을까’. 여러 갈래의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매미가 탈피하듯 구두를 벗어 둔 레일 위로 무심한 햇살만이 길게 드러누워 있다. 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존재와 부재의 실존 사이에서 잠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해 본다.

순간 옛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십 대 초반의 어느 날, 태아를 품은 채 레일 위를 걸어갔던 친구의 그림자가 겹쳐서다. 그녀의 무게가 레일 위 구두의 빈자리에 얹힌다. 얼마나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으면, 삶으로부터 도망을 치고자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람마다 삶의 무게가 다르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르다. 상황에 따라 비를 건너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친구 또한 사진의 주인공과 닮아서 오랫동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존재의 가벼움에 쓸쓸함을 느꼈다.

 

정신세계가 흔들린다. 내 의식의 흐름이 심연의 바다로 이끈다. 내가 세상에 발 딛고 있다는 감각조차 옅어지는 순간이다. 내가 붙잡고 있는 삶의 의미들이 허무해진다. 죽음은 한 장의 종이와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 종이 위에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소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나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삶이 뜻대로 이끄는 건 아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남겨진 가족에게 도리를 다하는 것일까. 새삼 목숨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시선이 내 발 쪽을 향한다. 세상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안도해야 하나, 이 안도마저 구두 주인에게는 미안한 것인가, 혼란이 왔다. ‘존재’란 것이 단단한 뿌리로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흩어져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존재의 무게’란 크고 확실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돈, 명예, 유명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유형의 조건은 부질없었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무형들이 숨을 쉬게 하고 삶을 여유롭게 하는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식의 울타리를 넘어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린다. 내가 붙잡는 것은 거대한 진리나 굳건한 신념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일’이다. “여기 행성에 작은 점 하나가 있었다.”라고 구두 주인의 마지막을 이해해 줄 누군가는 있을까. 그를 기억하진 못할지라도 세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만으로도 그는 위로가 될까. 어떤 마음으로 바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인생길은 직선처럼 보이지만, 휘어져 있다. 사람들은 직선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곡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만들어 낸 소망일 것이다. 좁은 의식이 측정하는 시간과 끝없이 휘어지는 곡 선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공백이 있다. 언젠가 나도 신발만 남겨둔 채, 우주의 한 점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 순간, 누군가는 나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름의 평가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 또한 반추해 보리라.

 

신발을 벗어 둔 이는 마지막 연주를 마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걸어간 것이 아닐까.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순수한 궤적만을 남기는 길로. 삶은 결국 껍데기를 벗는 여정인 것 같다. 많은 것을 걸치고 있을 때는 중압감이 온다. 그러면서도 그 무게의 존재감을 얻으려 한다. 하나씩 벗어내면 홀가분해지는 가벼움을 느껴 본 이는 알리라. 남는 것은 결국 장신구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협주곡처럼 연주한다. 때로는 불협화음이 섞이고, 때로는 화려한 절정이 찾아오지만, 마지막 악장은 누락되어 있다. 악보가 완성되는 것은 호흡이 끝난 후의 일이다. 그리고 잔향이 그 사람에 대해 말해 줄 뿐이다. 연주의 길이가 아니라 여운이다.

 

뒤를 돌아보았다. 구두는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구두를 남겨두고 사라진 누군가의 심리적 거리만큼. 내 그림자가 나를 따른다. 그림자는 자신의 본체를 몰라 형상이 하는 대로 헤매지만, 헤매는 것마저도 살아 있다는 징표가 아닌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파서 흔들리고 행복해도 흔들린다. 그러면서 무늬를 남기는 일이다.

 

레일 위의 구두가 전하는 메시지는 죽음을 대할 때의 태도였다.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마침표다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가족이나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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