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네 집 / 박순태
꽃샘추위만큼이나 몸이 오싹거린다. 육체의 통증을 삼키며 흘러나오는 아내의 신음, 촉촉해진 눈에 떨리는 입술로 소리 없이 애원하는 딸. 그 둘 사이에서 곤경의 진동을 고스란히 흡수하자니 마음 한복판이 시리다.
어제와 다름없이 하루는 출발한다. 집 안에서 미리 접해버린 인생사의 삐걱거림 탓에 가슴이 선뜻 죄어 온다. 가족 사이에 이어지는 성가심을 넘어서는 고달픔이 또 있을까. 가벼운 관심사로 여기며 서로에게 가해지는 자극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마음은 끝내 얼어붙고 말 것이다. 위기가 정점에 이르기 전에 훈기를 불어넣을 방도가 필요하다.
어릴 적 살던 띳집은 몹시 허술했다. 가벼운 바람에도 문이 삐걱댔고, 식구가 많아 방문은 하루에도 수없이 쿵덕거렸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문짝과 문설주에 박힌 암수 돌쩌귀가 ‘끼긱끼긱’ 고통을 토해냈다. 어느 날, 시장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가 윤활유 몇 방울을 떨구자, 심사가 뒤틀렸던 문도 금세 숨을 고르듯 잠잠해졌다. 조력의 힘이란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분명했다.
평소 아내를 ‘보살’이라 부른다. 스스로 인자하다고 노래를 부르기에 붙여준 별칭이다. 그런데 요즘, 보살은 사뭇 다르다. 방문을 ‘쿵’ 닫아버리기 일쑤고, 말끝마다 얼음 알갱이가 ‘차작’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집 안은 냉기가 감돌고, 나는 좌불안석이 된다. 바깥일을 핑계로 무심했던 사이, 냉기류가 집 안 깊숙이 스며들었던 모양이다.
보살은 지금 두 아이 사이에서 시름에 잠겨 있다. 허리 통증을 견디며 외손자를 키웠고, 두 해 뒤 태어난 외손녀까지 백 일이 지나자마자 맡았다. 딸이 직장에 나가면서 외손 양육은 자연스레 친정 어미의 몫이 되었다. 외손녀가 첫돌을 넘기자 보살의 짜증도 눈에 띄게 잦아졌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외손자는 품으로 파고들고, 외손녀는 등에 매달린다. 회갑을 넘긴 몸으로 아이 둘을 감당하는 일은 날이 갈수록 버거워 보였다.
집 안은 날마다 수라장이다. 물건들은 제 자리를 잃은 채 굴러다니고, 화장품 병은 쏟아지기 일쑤다. 깨진 사기그릇과 유리잔도 하나둘 늘어간다. 벽은 마치 피카소의 제자가 다녀간 듯 얼룩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한쪽에서는 업어 달라고, 다른 쪽에서는 안아 달라며 아우성친다. 아무리 ‘보살’이라 불리던 사람이라도 얼굴이 굳어갈 수밖에 없다. 문득 스치는 말 한마디. 여자는 결혼하면 친정과 멀리 살아야 탈이 없다는 옛말.
“욕심도 많아라. 죽을 때 돈 가지고 갈래?”
“엄마, 몇 달만 참아달라고 했잖아요.”
모녀 사이의 공기가 날로 싸늘해진다. 출근하는 딸에게 웃음으로 배웅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딸은 제 처지를 알기에 말없이 고개만 숙인다. 보살이 강짜 섞인 염불을 늘어놓아도, 딸은 아침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온다. 제 어미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리는 외손녀를 넘겨주고, 외손자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내달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아내는 다시 보살의 얼굴을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날이 갈수록 말끝이 높아지고, 부딪힘은 잦다.
어느 토요일, 둘 사이의 마찰이 거세지던 때였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재래시장 주막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켰다. 잔을 다시 채우고, 보살의 불평을 값싼 안주 삼아 곱씹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던 장면을 떠올리며 술을 따르자, 술기운마저 잔 밖으로 넘쳐흘렀다. 더는 모른 척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나마 내 몫을 하자며 둔한 머리를 굴렸다. 마지막 잔을 비우고 나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 다리 건너면 남이 될 외손을, 무슨 영광 보려고 그렇게 끙끙대며 키웁니까. 오늘까지만 봐주고 그만둬요.”
“형편대로 살아야지요. 인구 절벽을 눈앞에 두고서. 예전에는 혼자 벌어도 식구를 건사했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는 세상입니다. 내라도 거들어야지요.”
아이고, 보살이다. 정말 보살다운 말씀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떤 넋두리로 나올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 말이오."
“다시는 시끄러움은 없을 겁니다.”
아내의 얼굴이 아침과는 달라져 있었다. 궤도를 벗어났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은 표정이었다. 거친 시간의 갈퀴는 그대로인데, 입술에서 떨어지던 피로의 독이 새싹의 거름으로 바뀐 듯했다. 할아버지가 떨군 몇 방울 윤활유에 잠잠해졌던 띳집 방문 같다고나 할까. 어미의 마음이란, 기분에 따라 흔들리되 끝내는 선한 쪽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내 한마디 말에 보살은 본연의 인자한 모습을 되찾았다.
해 그름에 딸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외손녀를 안고 외손자를 앞세워 나가는 딸을 살며시 뒤따랐다. 네 어미 성정에 속상하겠지만 시간이 약이려니 생각하라며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요즘 엄마 같은 사람 찾아보기 힘들어요.” 하면서 얼굴을 활짝 폈다.
그날 이후, 집 안의 공기는 전처럼 팽팽하게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말끝이 조금씩 풀어지는 순간들이 스쳤다.
아침에 현관문이 열린다. 보살의 버거움은 여전하다. 그래도 딸은 다시 아이를 맡기고, 어미는 말없이 받아 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