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선 / 김태성 - 제25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병원선’

이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혹자는 영화배우 하지원이 출연했던 드라마 〈병원선〉을 떠올릴 수도 있다. 가상의 경상남도 병원선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에는 병원선에서 충수돌기절제술을 비롯한 온갖 수술과 응급 처치를 거침없이 행한다. 가는 곳마다 중대한 사건이 터지고 주인공들은 그것을 멋지게 해결한다. 그야말로 떠다니는 작은 병원이라 할 만하다.

물론 진부한 말이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완전히 다르다. 드라마와 현실의 공통점은 배에 공중보건의사가 탄다는 것, 그리고 배가 도서 지역을 돌아다니며 진료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선 ‘경남 511호’는 162톤 정도 되는 낡은 배다. 이 배는 통영에서 출항해 경상남도 서쪽 끝 하동 대도에서 동쪽 끝 거제 지심도까지, 41개 비연륙도를 한 달 주기로 찾아가며 도서 지역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한의사 1명 총 네 명의 의료진이 팀을 이루어 때로는 선내에서, 때로는 모터보트를 타고 마을회관에 찾아가 진료를 본다. 물론 전원 나와 같은 공중보건의사다.

누군가에는 놀라운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병원선에는 수술실이 없다. 영상 촬영 도구도 없으며, 혈액검사도 불가능하다. 소독된 마땅한 도구가 없기에 봉합술과 같은 간단한 술기도 상당한 무리다. 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전공의로서 전동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중환자들을 보던 내가, 이곳에서 의사로 할 수 있는 일은 도서 지역 주민들에게 약을 주는 일이다. 사실 그것이 공중보건의사로서 업무의 처음이자 끝이다.

‘낭만의 시대’였던 7~80년대에는 실제로 공중보건의사들이 간단한 응급 처치나 수술을 시행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1세기도 벌써 20년이 넘어가는 지금,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병원선의 의사는 일차진료의로서 고령의 섬 주민들의 만성 질환을 빈틈없이 관리하고, 신체 검진을 통해 숨겨진 병을 조기에 진단하며, 필요할 경우 육지 병원으로 적시에 이송하는 의료 파수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은 현실 앞에 공허한 메아리로 끝난다. 각 섬에는 환자가 수십 명씩 있고, 하루에도 몇 개 섬을 돌아야 하기에 한 환자당 배정된 시간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몇 분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환자는 연세가 이미 70줄에 접어드신 분들이며, 90줄도 심심찮게 있다. 어떤 기저 질환을 앓고 계시는지 자세한 병력 청취가 필수적일 것이나, 상세한 과거력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혈압약, 당뇨약밖에 안 먹어요”라고 하시던 분이, 조금이라도 젊은 보호자가 나타나는 날이면 대학병원에서 받았던 항암치료와 심장 스텐트 시술력, 그리고 한 보따리의 약 목록을 베일을 벗듯 드러낸다.

사실 병력 청취에 난관이 있고, 객관적인 결과를 담보해 줄 영상이나 혈액검사는 불가능하고, 마땅한 기구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력이 파악되지 않는 분들에게 위험한 전문의약품을 처방하는 것도 의사로서 꺼려지는 일이다. 혈압이나 당뇨 약제 조절을 가이드라인에 따라 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환자분들도 그걸 아는지, 많은 분이 만성 질환 약을 육지의 의원에 가서 타 드시고 있다.

도서 지역은 도시 사람들의 편견만큼(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고립된 곳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 중에는 창원이나 진주의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서울까지 상경해 ‘빅5’ 병원에서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도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많은 전임자가 그랬듯, 나 또한 타성에 젖은 진료를 하게 된다. 마을 주민들에게 필요한 약을 묻고 소화제, 감기약, 피부 연고 같은 상비약을 처방해 주는 단순한 역할로 전락하는 것이다. 호소하는 증상을 듣고, 신체 검진과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병을 유추하고 그에 맞는 처치를 하는 일반적인 진료가 아니라, 필요한 약을 말하면 약을 뱉어내는 자판기에 가까운 진료를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치과 공보의는 체어가 있기에 스케일링이나 충전 같은 간단한 시술이 가능하고, 한의과 공보의는 침이 있기에 나름의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의과 공보의가 하는 것은 절대다수의 ‘약 자판기’ 역할, 또는 의료 상담(그러나 결국 ‘도시의 큰 병원을 가야 한다’로 귀결되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응급 처치(대부분 예방접종이나 주사 후 생기는 아나필락시스) 정도다.

이러다 보니 자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오는 우리보다, 도서 지역에 '상비약 자판기'를 설치해 원할 때마다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타이레놀을 타는 것을 잊어버려 한 달 내내 병원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통증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마을회관에 누르면 약이 나오는 자판기가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미 육지에서는 편의점에서 하고 있는 일이 아니던가.

섬 주민 또한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50년 전만 해도 수백 명이던 섬 주민이 이제는 수십 명도 남지 않은 섬이 허다하다. 평균 연령대는 70을 웃돈다. 청년층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조금 큰 섬에나 중년층이 몇 분 있을까 말까다. 그러다 보니 지난달에 멀쩡히 얼굴을 뵈었던 분이, 다음 달에 찾아가니 육지의 요양병원으로 가셨다거나 사망하셨다는 말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는 대학병원에서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하는 것과는 또 다른 비애가 느껴진다. 어쩌면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천천히 진행되는 소멸이 확정된 한 공동체에 대한 슬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이 활성화된다면, 굳이 사람이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면, 아마 이 병원선과 의료진도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실 그러고도 최소한 병원선 의사가 하고 있는 일의 9할은 대체 가능하리라.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혹자는 말하겠지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병원선의 시간대에 맞추어 응급 환자가 갑자기 발생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병원선에서 가능한 응급 처치도 거의 없기에, 차라리 응급 환자 이송 체계를 더 다듬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닥쳐올 일일 수도 있다. 공중보건의사로 가는 의무사관후보생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내일도 이 배에 탄다.

단순히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다. 약 자판기로는, 비대면 영상 통화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여기에 있다. 병원선이 입항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섬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든다. 70, 80, 9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아이고, 선생님 왔네!”, “오느라 고생했소!” 반가운 목소리들. 누군가는 오디 한 봉지를, 누군가는 선창에서 팔딱이는 방어를 꺼내 안겨 주신다. 지금까지 방문하지 않던 섬에 병원선이 새로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갓 잡은 꽃게를 쪄서 준비해 주신 분도 계셨다.

그 순간 깨닫는다. 이 병원선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약을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섬에는 사람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온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러.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의사로서 의미 있는 순간도 찾아온다.

몇 달째 입이 마르고 눈이 뻑뻑하다던 60대 여성, 단순 노화이려니 했지만 혈액검사를 권유했고 뒤늦게 쇼그렌 증후군 진단을 받으셨다. 3개월간 10kg이 빠졌다던 70대 남성, “입맛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큰 병원의 검사를 권유했더니 간암 초기였다. 조기 발견으로 치료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안도감.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자주 있냐고? 솔직히 거의 없다. 대부분의 날들은 여전히 약 봉투를 나눠 주고, 형식적인 진료표를 채우는 일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 ‘거의 없는’ 순간들이,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섬 주민들의 미소가, 이 무료하고 허무할 수도 있는 일상에 작은 의미를 부여한다. 약 자판기는 쇼그렌 증후군을 발견하지 못한다. 비대면 진료는 갓 찐 꽃게를 건네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에 존재하는 가치가 있다. 완벽하지 않다. 이상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비록 자그마할지라도 분명 의미는 있다.

경남 511호는 오늘도 바다를 떠다닌다.

162톤의 무게로, 41개의 섬을 향해.

약 봉투와 함께, 그리고 조금의 온기와 함께.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