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굳은 살 / 이규근 - 제11회 항공문학상 대상

 

비행기가 활주로의 끝에서 잠시 숨을 고를 때, 기체 전체로 전해져 오는 미세한 떨림이 있다. 쿵, 쿵, 쿵. 거대한 강철 심장이 이륙을 준비하며 내는 고동 소리. 나는 그 진동 속에서 늘 할아버지의 손을 떠올린다. 검게 기름때가 배고, 마디마디 굵어진 채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손. 그 손에서는 언제나 맵싸한 항공유와 차가운 쇠붙이가 뒤섞인, 서늘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어린 시절, 나는 할아버지의 그 손이 싫었다. 코끝을 톡 쏘는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악수라도 할 라치면 손바닥을 긁어내리는 사포 같은 감촉, 어린 살갗에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아이 러니하게도,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피가 흐르던 내 무릎에 빨간 약을 발라주던 손 또한 바로 그 손이 었다. 소독약의 따가움보다 더 아릿하게 다가왔던 그 거친 온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자랑스러 움과 안쓰러움, 싫음과 좋음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시작이었다.

나의 놀이터는 활주로의 소음이 아득하게 들려오는 공항 근처 정비 격납고의 담벼락 너머였다. 할 아버지는 그 거대한 쇳덩어리들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 항공정비사셨다. 축구장 몇 개를 합친 것보 다 더 거대한 격납고 안에는 집채만 한 비행기들이 날개를 접은 채 쉬고 있었다. 그곳의 공기는 늘 차가웠고, 거대한 동체에 반사된 형광등 불빛은 어지러웠다. 할아버지의 손톱 밑에 검게 밴 것은 단 순한 기름때가 아니었다. 그것은 등유를 기반으로 한 Jet A-1 항공유의 흔적, 수백의 생명을 태운 철의 심장을 뛰게 하는 혈액의 향이었다.

할아버지의 작업복 주머니는 언제나 무거웠다. 그 속에는 렌치와 드라이버 말고도 용도를 알 수 없는 쇠막대기들이 가득했다. 한번은 손바닥만 한 붉은색 꼬리표가 달린 굵은 핀을 꺼내 보여주신 적이 있다.

“이놈 이름이 그라운드 락 핀이라는 기라, 이게 있어야 비행기가 땅에 서 있을 때 다리가 저절로 접 히는 걸 막아주제. 사람으로 치면 무릎에 박는 철심 같은 기다. 요거 하나 잘못 끼우면 수백 톤짜리 비행기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뿐다.”

할아버지는 무심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 핀을 쥐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수없이 볼트와 너트를 조이고 풀었을 둘째와 셋째 손가락 마디에는 유독 노란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고, 여기 저기 쇳조각에 베인 흉터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그 굳은살은 단순한 노동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명의 무릎을 지탱하는 단 하나의 철심을, 수천 번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책임감의 무게 가 눌어붙은 자리였다.

가끔 할아버지는 정비가 끝난 비행기를 활주로로 밀어내는 토잉카에 나를 태워주시곤 했다. 거대 한 비행기의 코앞에 앉아 세상을 보는 기분은 마치 내가 거인이 된 듯했다. 할아버지는 비행기와 토 잉바를 연결하는 지점에 또 다른 핀을 끼우며 설명했다.

“이기 바이패스 핀이라카는기다. 이걸 낑가줘야 비행기 앞바퀴가 지멋대로 안 놀고 토잉카를 얌 전히 따라오는거그든. 사람이든 기계든간에, 제 갈 길을 제대로 가려면 보이지 않는 데서 누군가는 이렇게 방향을 꽉 잡아줘야 하는 법이다. 알긋나?”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다. 그저 할아버지의 굳은살 박인 손이 만지는 모든 것이 거대 한 비행기를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할아버지의 손은 비행기의 가장 깊고 어 두운 곳을 어루만졌다. 날개의 동맥과도 같은 유압 장치를 점검하고, 착륙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랜딩기어의 이음새를 조였다. 그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비로소 육중한 쇳덩어리는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세계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친구들의 아버지는 번듯한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다루는 분들이었다. 한번은 친구를 집에 데려온 날, 마침 퇴근하신 할아버지가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왔냐”며 친구에게 손을 내미셨다. 친구가 악수를 망설이며 뒷걸음질 치던 그 찰나의 순간, 내 얼굴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 은 내게 가난의 증거이자 벗어나고 싶은 현실 그 자체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 으려 하시면 핑계를 대며 피하기 일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철없던 시절의 치기였지만, 그땐 그 거친 손에 밴 고단함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정년을 몇 해 앞두고 갑자기 일을 그만두셨을 때, 나는 그 이유를 묻지 못했다. 평생의 자부심이었던 일을 왜 그리 허망하게 놓아버리셨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 답은 몇 년 후, 할머니의 푸념 섞인 말 속에서 우연히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정비했던 비행기가 이륙한 직 후, 아찔한 경고등이 떴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최종 점검했던 부분이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회항 했지만,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공구함을 열지 못하셨다. 한번은 먼지가 뽀얗게 쌓인 공구함 앞에 우 두커니 서 계신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평생을 함께한 도구들을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던 어깨가 얼마나 작고 외로워 보였는지 모른다.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셨고, 당신의 굳은살 박인 손이 더는 수백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는 공포에 사로잡히셨다. 그날 밤, 나는 비로소 할아버지의 침묵의 무게를 이해했다. 그 굳은살은 자부심의 훈장이었지만, 동시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외로운 전쟁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 깨달음은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다. 사회에 나와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나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유혹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약간의 편법, 사소한 절차의 생략. 누 구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마감 시간에 쫓겨 데이터를 단순 복사하려던 순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늘에서는 작은 실수가 가장 큰 재앙이 된다던 그 목소리. 나는 밤을 새워 원칙대로 일을 바로잡았다. 할아버지의 굳은살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한 성실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 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책임감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이제 나는 할아버지가 만졌던 것과 같은 기종의 비행기 안에 앉아 있다.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 이 나오고, 창밖으로 날개의 플랩이 부드럽게 펼쳐지며 속도를 줄이는 것이 보인다. 저 거대한 날개 를 움직이는 힘이, 한때 할아버지의 굳은살 박인 손끝에서 시작되었음을 생각한다. 나는 내 손을 가 만히 내려다본다. 매끄럽고 상처 하나 없는 손. 이 편안함과 안전함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 는다. 우리가 발 뻗고 잠든 새벽에도, 궂은 비바람 속에서도,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굳은살을 만들며 하늘의 길을 닦고 있었음을.

비행기가 마침내 땅에 닿으며 ‘쿵’하는 안도감 섞인 충격을 전해온다. 이 순간, 창밖의 풍경도, 승 무원의 감사 인사도 아닌, 할아버지의 굳은살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진다. 하늘의 무게를 감당해 온 땅의 그 수많은 굳은살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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