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여자 / 허정진
차갑고 을씨년스러웠다. 천장에 달라붙은 형광등이 환자 이동 침대가 움직일 때마다 덩달아 흔들렸다. 얼음장처럼 냉기가 서려 있는 수술실은 그루터기만 남은 서릿가을 마른논처럼 텅 빈 창고 같았다. 반듯하게 누운 몸을 고정한 채 조심스레 눈동자만 굴리며 완전히 겁에 질려있었다. 진초록의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이 주변에서 두런거렸고, 언제 마취 가스를 주입했는지 의식할 새도 없이 세상은 적막 속에 빠져들었다. 호흡이 정지된 듯 허공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꿈만 꾸다가 5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깨어났다.
체구도 작고 단아한 모습의 여자가 첫눈에 보였다. 육십 대 후반쯤 나이에 쉰 듯한 목소리로 “눈감지 마세요.” 하며 반복해서 주문했다. 잠들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마취가 덜 풀려서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코와 팔, 옆구리며 음경에 주렁주렁 호스가 연결되어 있고 몸은 거미줄에 포박당한 것처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가슴부터 배꼽까지 지네처럼 기다란 절개 자국이 남아있을 것이고, 꿰맨 자리마다 담장 싸리나무 꽃처럼 홍자색 피 울음을 머금고 있을 것이다. 자꾸만 눈꺼풀이 감겨왔지만 폐에 남은 마취 가스를 제거해야 한다며 그 여자는 침대 곁에서 말을 걸거나 몸을 흔들면서 잠을 깨웠다. 전문 간병인이었다.
삶은 그 실체를,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동굴 같다. 황금빛 미래를 만들어 줄 연금술사 같다가도 느닷없이 두려움과 절망 덩어리를 던져주는 두억시니로 변하기도 한다. 짙은 연무 속에 갇힌 것처럼 어떤 증명이나 논리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함부로 교만하거나 무시하거나 적대해서도 안 되고, 쉽게 실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도 안 되는 것이 그 이유다. 건강검진을 하는 과정에서 청천벽력 같은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식도와 위 일부를 절단하고 접합하는 수술을 권유받고는 평소 나쁜 식습관을 가진 터라 차마 억울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간병인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셌다. 키꼴하며 비만인 거구의 남자를 침대에 앉히고 눕히고 일으켜 세우기를 강아지 다루듯 손쉽게 했다. 이동식 침대를 끌고 다니거나 휠체어를 밀거나 링거대를 붙잡고 보행을 도와주는 일도 물 만난 고기처럼 거침이 없었다. 누운 채로 구강 세정이며, 세수나 면도며, 환복이나 소지품 착용이며 소소한 일까지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거리낌 없이 꼼꼼하게 챙겼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후렴 같은 고통의 소리가 뒤따랐지만 어느새 간병인의 손길에 길들어지며 아기같이 응석받이가 되어갔다.
간병인은 자기 일에 열성을 갖고 책임을 다하는 눈치였다. 불안과 고통에 예민해진 환자의 심기를 살피며 안정감도 주어야 하고, 가래나 구토 같은 각종 토사물도 내색 없이 다 받아내야 하고, 행여나 건강이 더 악화하는 일이 없도록 자기 몸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주인님을 모시는 노예처럼 환자가 부족하거나 아쉬운 구석이 없도록 세심하게 챙겨주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가족들도 멀리 떨어져 있어 딱히 간병해 줄 사람도 마땅치 않던 차에 무슨 호강을 다 하나 싶었다.
자다가 깨다가, 줄곧 침대 생활을 하다 보니 정작 밤에는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초록 별빛 내려와 놀라 잠이 깬 날은 여명이 다가올 때까지 새벽 창을 바라보기만 했다. 수술이 잘되었으니 퇴원하면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마치 죽음의 문턱을 체험한 사람처럼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다시 살아 움직이도록 부추기는 것 같았다. 특히 부모 형제나 가족들 생각이 선연했다. 특별나거나 대단했던 기억보다도 평소 기뻐하고 슬퍼했던 소소한 일상들이 더할 나위 없는 감사함과 그리움으로 몰려왔다.
수술을 끝낸 환자들이 매일 집중 회복실로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진 환자들은 일반 병실로 옮겨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어도 직업이나 성품이나 습성도 다양한 것도 한편으론 신기했다. 병나는데 사람 구분 없고, 통증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 같았다. 아직은 아물지 못한 수술 후 고통에 누구네 침대 가릴 것 없이 고통의 앓는 소리가 비문증처럼 허공을 떠다녔다.
간병인은 24시간 한결같았다. 한시도 한눈팔 수 없는 일이기에 환자의 동태를 살피며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밥줄이고 직업이라 할지라도 남의 수족이 되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당사자인 자식도 부모 봉양이 어려워 간병인이나 요양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 간의 정서와 감정만큼 예민한 것도 없을 터, 돈벌이 이전에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환자에게는 편한 잠을 주문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바닥 침대에서 몸을 웅크린 채 새우잠을 청하는 모습이 안타깝게도 보였다.
밥벌이로 간병인의 힘든 길을 택한 것을 보면 그녀의 삶에도 곡절과 애환이 있었을 테다. 험한 세상 막바지까지 쫓기다 보면 쉽고 편한 일을 골라 선택할 여유마저 없었을지도 모른다. 먹고산다는 날것의 준엄함 앞에 위신이나 편리를 이유로 망설이거나 주저함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손을 놓고 있으면 주변의 눈총이라도 받을까 봐 그냥 몸이 앞서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生)의 논리로 이 길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손이 되고 발이 되어준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내가 우선이고, 나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는 주변에 대한 희생과 사랑과는 먼 거리의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조금만 환영받지 못하면 금방 서운한 마음에 상처받기도 하고, 조금만 손해 보는 것 같으면 지지 않으려고 용쓰던 모습들이 저 간병인 앞에서 사뭇 부끄러움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술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물어갔다. 혼자서도 거동이나 치료에 크게 지장이 없어 일반 병실로 옮기면서 간병인의 도움도 끝을 맺었다. 그녀에게도 일상의 삶과 꿈이 있을 터, 집에 돌아가면 파병을 갔다 돌아온 장병처럼 먼저 편안한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작은 몸이지만 힘이 센 여자니까 앞으로의 삶도 당당하고 든든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