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에어포켓 / 조미정

빗물이 샌다. 지난밤, 폭우가 아버지 방 천장에 얼룩덜룩한 수묵화를 그려 놓았다.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바닥 여기저기 시한폭탄이 터졌다. 발을 동동 구른다. 누수되는 줄 모르는지 비가 다시 쏟아지며 찢어진 에어포켓 속으로 흘러들고 있다.

에어포켓은 바닥 방수 후 잘못 만들어진 공기주머니이다. 미처 마르지 못한 습기가 시멘트 금 속에 갇혔다가 땡볕이 내리쬘 때 부풀어 오른다. 저녁에는 푹 꺼져 납작해진다. 딱딱한 시멘트가 숨 쉬는 현상이다. 우레탄 페인트는 탄성이 있으나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탈 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하자 부분을 동그랗게 도려낸다. 그런 다음 처음부터 다시 하도, 중도, 상도 순으로 페인트칠했다. 꼼꼼히 보수했으니 십 년은 거뜬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듬해 여름이면 때웠던 자리가 또다시 빵빵해졌고, 지난밤 기어코 사달 나 버렸다.

한두 개가 아니다. 골프공에서부터 핸드볼 공만 한 크기까지 수십 개가 넘는다. 사시사철 비와 바람과 햇볕에 시달리는 옥상으로서는 자구책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부담을 안은 채 땜빵만 계속할 수는 없다. 수백만 원 들여 공사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벌써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린 반구 모양을 어떻게 손봐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수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집 근처에서였다. 엄마처럼 뇌졸중으로 쓰러진 줄 착각했다. 설거지하다 말고 뛰어가서는 허둥지둥 MRA를 찍었다. 의사는 해마가 쪼그라든 뇌 사진을 들여다보며 알츠하이머성 치매라고 진단 내렸다.

아버지는 늘 시멘트처럼 단단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부터 금 가 있었나 보디. 늘 다니던 길에서 헤매다가 탈진했던 아버지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비릿한 막걸리 냄새가 풍겨왔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뺨에는 잠결에 긁어댄 손톱 고랑이 팼고, 버석해진 몸은 한여름인 데도 솜바지를 고집했다. 티셔츠는 앙상한 갈비뼈 사이로 쪽배처럼 떠다녔다. 추레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합가(合家)를 결정했다.

방수공사라도 한 듯 처음에는 안도했다. 병이 깊어질수록 후회가 몰려왔다. 볼일 후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얼굴이 달아올랐고, 한밤중에 팬티 바람으로 골목을 서성거리면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새벽에 벽을 마주하고 서서는 방문이 잠겼다고 고래고래 고함 지를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빈정거리는 동네 어르신을 돌멩이로 내리치려 한 순간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날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무렵이었다.

기침과 가래는 잘못된 호흡의 반작용이다. 콧속으로 들어간 이물질과 먼지는 빽빽하게 돋아난 섬모들에 의해 일차적인 통과 의례를 거친다. 제때 거르지 못하면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어 목구멍을 간질인다. “진지 한술 만 더 드세요, 목욕합시다.” 등 위하는 내 말들이 아버지에게는 잔소리일 뿐이었다. 밥그릇이고 공공장소이건 간에 아무 곳에나 퉤퉤 가래 뱉는 날이 잦아졌다. 꾹꾹 눌러 참고만 있으려니 내 숨도 턱턱 막혀 왔다.

마침내 숨의 부하가 걸렸다. 딸꾹질이 멎지 않았다. 냉장고의 막걸리를 숨겨놓자 아버지는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렸다. 온갖 잡동사니들을 화장실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고는 부서질 듯 쾅쾅 방문을 여닫았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얼굴에 침을 탁 뱉었다. 순간 서러움이 북받쳤다. 나도 지긋하다며 대문을 쾅 닫았다. 고작 일이 년 만에 늘어날 대로 늘어난 에어포켓이 견디지 못하고 팡 터져버린 것이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니 날아갈 듯했다. 닷새가 넘어가자 안절부절못했다. 마침 혼자서 아버지를 수발하던 남편이 카카오톡으로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화장대 위에 저금통장과 결혼반지, 빛바랜 영수증과 동전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한 편의 무성영화 보는 듯했다. 가진 것을 다 주고서라도 틀어진 딸아이를 달래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본가로 돌아가자마자 말없이 소파에 앉아 손발톱을 깎아드렸다. 팔순 넘은 노인은 흘깃흘깃 눈치를 보았다. 모른 척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어요?”질문을 던졌다. 어머니 얼굴조차 잊어버리신 아버지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연탄 배달하면서 우리 네 남매 모두 공부시킬 때였다며 비로소 환하게 웃으셨다. 특별한 순간이 더욱 많았을 터이다. 그런데도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내리사랑만 떠오른 것을 보면 아버지에게 자식은 숨이었던가 싶었다.

숨은 살아있음의 보증수표이다. 희로애락이 풀무질하는 동안 무조건으로 지속된다. 숨 쉬는 방법은 다양하다. 다이빙 벨 거미는 다리털에 묻힌 공기 방울로 물속에 둥지 지어 호흡하고, 개미는 옆구리에 있는 열 쌍의 숨구멍으로 호흡한다. 뱀은 두 개의 폐를 가지고 있어 퇴화한 주머니에 공기를 저장해둔다. 나도 자식이라는 이름표 밑에 커다란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본다.

들숨 날숨을 쉰다. 평생 소처럼 일한 아버지에게 에어포켓은 산소방 아니었을까. 둥글게 부풀며 지난날 따스했던 기억 한 토막 되살린다. 피돌기 하며 수심과 걱정, 짜증과 권태, 한숨과 눈물 같은 찌꺼기들을 걷어간다. 팍팍하던 삶에 어쩌다 잘못 만들어졌다 해도 오히려 기회다 싶다. 지난 세월 못다 한 자식의 도리를 행하는 동안 잠시나마 아버지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이상 터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설사 어젯밤처럼 또다시 찢어진다 해도 몇 번이고 정성드려 보수하면 되지 않을까.

해가 중천으로 떠오른다. 비 그친 후에야 아버지가 잠들었다. 잃어버린 기억의 갈래에서 헤매느라 고단했던지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곤다. 이제 내가 아버지의 에어포켓이 되어줄 차례다. 민둥산을 쓸어 올리자 단단한 바닥이 공기주머니를 부풀린다.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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