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강윤수

문이 잠겼다. 안에서 잠근 것도 아니고 밖에서 자물쇠를 채운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드나들며 무심결에 방문 안쪽 손잡이 꼭지를 누른 모양이었다. 그걸 모르고 문을 닫는 순간, 그대로 잠겨 버린 것이다. 문은 앙다문 대문니가 되어 있다.

얼른 열쇠를 찾았다. 어디에 뒀던가? 봄에 정신없이 이사를 오고, 가을이 되었는데 아직 짐 보따리도 다 풀지 못한 살림이다. 애초에 열쇠가 있기나 했는지조차 모르겠다. 화장대, 싱크대, 신발장, 서랍들을 차례로 뒤졌다. 열쇠는 보이지 않는다. 안으로 잠겨버린 문과 찾을 수 없는 열쇠가, 늦은 밤에 지친 몸으로 퇴근한 나를 방으로 들이지 않으려고 작당이라도 한 것만 같다.

두드리지 않고도 열면 언제나 열리던 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거절당하니 뭔가 심한 소외와 고립의 느낌이 밀려든다. 수문장이 버티는 성문처럼 문의 저 완강한 거부는 한편,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야멸치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던 내 모습이기도 하다. 닫힌 문 앞에 서 있던 상대방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문이 잠겼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손잡이를 잡고 다시 달래듯 부드럽게 돌려본다.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 좀 더 거칠게 왈칵왈칵 돌려본다. 어림없다. 그만 문이 원망스럽고 화가 난다. 이번엔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쾅쾅 두들겨본다. 이쁨에서 애꿎게 걷어차인 세상의 문이 허다하리라. 하지만 문은 끝내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

문과 불화한 게 아니건만, 이 느닷없는 단절이라니! 내일 아침에 열쇠수리공을 부르면 문은 간단히 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돌아가지 않는 불청객의 넋두리처럼 이런 기다림은 길고 지루한 법이다. 나는 할 수 없이 거실에 웅크리고 눕는다. 가을 풀벌레 소리가 저만치서 밀려온다.

부부가 되어 살다 보면, 마음의 문고리에 녹이 슬기 마련이다. 문은 곧잘 닫혀버리거나 삐거덕거리는 때가 잦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해가 떠 있어도 어둡고, 걸어 다녀도 어디에 묶인 듯 갑갑하다.

남편은 그 까닭이 시시하기 짝이 없는 부부 싸움으로 내게 마음의 문을 닫으면 좀처럼 먼저 열어주지 않는다. 자기가 잘못한 게 없다는 시위요, 네 죄를 네가 알라는 경고인 셈이다. 남편이 설사 조금 잘못했다 하더라도, 아내가 되어 그 정도는 너그러이 봐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무언의 항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양보하고 내 탓으로 돌려봐도 도무지 억울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처럼 답이 분명하건만, 울가망한 내 심정은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한다. 몇 날 며칠 잠이 오지 않는다. 작은 총알이 원심력으로 큰 구멍을 뚫어버리듯 분노는 급기야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막다른 곳까지 나를 끌고 간다.

모진 마음으로 가방을 챙긴다. 이번엔 뭔가를 보여주고 말겠다. 미련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발길 닿는 대로 떠날 참이다. 이제 저 문만 나가면 모든 게 끝이겠지. 나는 마지막 의식을 치르듯 조용히 현관 앞에 선다. 그때, 갑자기 문이 한없이 무겁고 슬픈 표정으로 나를 가로막는다. 마치 덩치 큰 듬쑥한 머슴이 "마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하며 말리기라도 하듯이. 문득, 손바닥에 느껴지는 문의 표면이 머슴의 가슴팍인 양 넓고 부드럽다.

마음의 문은 실제의 문을 잠그기도 한다. 마음 문을 닫으면 대문이나 방문이 열려 있어도 열린 게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해서 생각만큼 치명적이거나 절망적이지는 않다. 실제의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마음은 반쯤 열려 있는 셈이다. 잠그지 않은 문은 개방의 가능성이며 평화가 그리 멀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남편은 나와 아무리 심하게 싸우고 마음을 닫아도 방문은 잠그지 않는다. 어쩌랴, 어찌하랴! 나는 삐죽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구국을 위해 적장의 침소로 향하는 여인의 심정이 이러할까마는, 그는 오래전 자유의 국경에서 내게 포로로 잡혀 온 적장이 아니던가. 이불 속에는 문도 없으니 진격하기가 더욱 쉽다. 남편은 "어허, 왜 이래!" 해보지만 때는 늦었다. 들어오면서 내가 방문을 안으로 딸각 잠갔기 때문이다. 그는 딸각! 소리만 들으면 속수무책으로 항복하는 습성이 있다. 서로의 문들이 환하게 열리며 적과 아군이 어우렁더우렁 환영한다. 나는 천천히 적장을 함락시킨다.

마음의 문은 춘삼월 간장 항아리 뚜껑처럼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그 항아리 속에 금빛 햇살 가루가 듬뿍 빠져들고 웅숭깊은 바람도 쉬어가노라면, 장맛은 단연 일품이 될 게다. 마음 문을 활짝 열어젖혀 두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드나들기가 편해지는 것을, 언제쯤 나는 빈 마음이 되어 오롯이 누구를 맞이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잠긴 문 앞에서는 여전히 그 시간이 낯설고 뭔가를 하기가 어렵다. 비로소 방과 방 안의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기껏 방문 한 짝을 사이에 두었건만 내 손때가 묻은 컴퓨터와, 읽다가 덮어둔 책과, 너저분하나마 푸근한 이부자리가 새삼 아쉽다. 돌이켜보면, 문이 위태로울 때마다 방 안의 남편도 창가에 어린 달빛을 바라보듯 문밖의 나를 그리워했음이 분명하다.

귀뚜라미의 소야곡이 쉼 없는 밤물결처럼 창가에 흐른다. 몇 소절 무형의 초가가 대군을 무찌르듯, 저 나지막한 풀벌레의 노래는 굳게 닫힌 문들을 다 허물어뜨릴 것만 같다. 마음의 문을 열면 비록 세상의 어떤 잠긴 문 앞에 서 있을지라도 그 너머의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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