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산(三峯山) / 왕신연 - 2026년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작
‘삼봉산’은 거실의 장식장 가운데 칸에 있던 수석 이름이다. 한탄강이 고향인 삼봉산은 수석이 취미셨던 아버지의 유품이다. 컴퓨터 키보드보다 작은 크기에 높이도 나지막한, 어정쩡한 회색의 매끄러운 이 돌은 움푹움푹 팬 곳이 많은 세 개의 봉우리를 갖고 있었다.
화려한 자개장이 유행이었던 무렵, 아버지는 한탄강 변에서 돌을 골라 집으로 가져오셨다. 점점 모아온 돌들이 쌓여 갔다. 집안에 뭔가 놓을 만한 곳은 이미 모두 돌이 차지했고, 계단도 모든 칸마다 오른쪽 모퉁이에는 돌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오르내릴 때 조심해야 했다. 안 그러면 아버지의 돌들이 도미노처럼 층계 아래로 굴러떨어질 테니까. 여러 종류의 돌을 설명해 주셨는데 그중에서 구멍이 있는 건 ‘관통석貫通石’, 까만 것은 ‘오석烏石’이라고 부르셨던 것만 기억난다. 아버지는 돌 받침이 될 좌대도 직접 만드셨다. 돌의 모양에 맞춰 나무를 깎고 칠해서 말리는 작업을 정성껏 하셨다. 작은 관통석들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거실 곳곳 매달 수 있는 모든 곳에 관통석을 달아 놓으셨다. 거실 탁자는 절구통 위에 수레바퀴를 눕혀놓고 그 위에 유리를 얹은 것이었는데, 바큇살마다 관통석을 주렁주렁 매다셨다. 그 많은 돌 중에서 부모님이 가장 아끼셨던 돌은 커다란 오석이었는데, 좌우로 긴 몸체 가운데 위로 솟아 있는 부분이 목을 길게 뺀 사람 같았다. 아버지는 그 모습이 소녀 얼굴의 옆모습 같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 돌을 식탁 옆 창가에 두었다. 아버지의 이 수석 취미는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멈추었고, 간혹 돌을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모님의 집을 정리했을 때, 집에 돌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좌대도 없는 그 돌을 내가 사는 곳으로 가져왔다. 거실 장 가운데 칸에 회 연두색 천을 깔고 그 돌을 올려놓고 ‘삼봉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는 달리는 까만 토끼 문양이 있는 하얀 에코백에 삼봉산을 넣었다. 여기저기서 받은 그 많은 에코백 중에서 삼봉산의 마지막을 같이할, 삼봉산의 관棺이 될 가방을 나는 신중하게 골랐다. 달리고 있는 까만 토끼는 좁은 장식장에서 벗어나 원래 삼봉산이 있었던 넓은 자연으로 힘차게 나아가라는 의미를 담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자기합리화이긴 했다. 돌이 어떻게 힘차게 나아갈 수 있나. 그래도 아버지의 유품과 같이하는 마지막 의식 하나하나에 나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봉산과 9년을 함께 살았지만, 이번 이삿짐에는 넣을 수 없었다.
아침 일곱 시. 창밖으로 보였던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정작 나가보니 우산 쓸 날씨는 아니었다. 장화까지 신고 나온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집 주변은 21세기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답게 조경이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6월은 이곳 화단의 화초들이 무성할 때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기에 좋은 시기였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와 풀들, 땅의 생긴 모습, 그리고 사람의 손을 많이 타는 곳인지 등등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평소에 항상 지나다니던 출퇴근길이었는데, 이런 눈으로 바라보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땅한 곳을 못 찾아 헤매던 차에 아파트와 초등학교 사이, 관리주체가 아파트인지 시청인지 알 수 없는 경계 부분에서 삼봉산이 들어앉을 자리를 찾아냈다. 나무와 풀은 많지만, 돌은 전혀 없는 다른 화단들과는 달리, 이곳은 나름 작은 이상향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했던 건지 약간 움푹한 공간에 주먹 크기의 반질반질한 돌들이 깔려 있고, 수박보다 큰 아홉 개의 현무암이 마치 섬처럼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물을 채우려고 만들었던 공간 같은데 한 번도 물을 채운 적 없는 듯, 깔린 돌 사이로 풀들이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낮은 관목 울타리 뒤쪽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썩 잘생긴, 아니 조금만 더 자라면 잘 생겨 질 소나무 한 그루도 꽤 믿음직했다. 잡초와 적당히 뒤섞인 잔디를 보니 돌 하나쯤 더 생겼다고 까탈스럽게 굴 관리자도 없을 듯했다. 나는 명당을 찾는 심정으로 이곳의 어느 곳이 삼봉산이 들어앉을 자리인지 숨을 죽이고 살펴보았다. 평평하고, 놓여 진 위치에서 이상향에 어울리는 의미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찾은 곳은 소나무에서 북쪽으로 뻗은 가지 아래에 있는 땅으로, 관목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곳이었다. 그 앞에 움푹 들어간 바닥은 둥근 돌들이 박혀 있었는데 마치 작은 연못 같았다. 관목을 덮고 내려온 담쟁이넝쿨 한줄기가 땅에 닿아 마치 비석처럼 위치표시를 해주었다. 아홉 개 현무암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이곳은 좁지만 높고 평평해서 마치 검은 장수들을 아우르는 왕좌가 들어설 자리로 보였다. 사실 왕좌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봐야 하겠지만, 이곳은 반대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의미를 찾았다. 왕좌는 아버지에게 바치고, 이 돌은 남쪽 불기운을 막아주는 수호장의 역할을 하는 걸로. 마치 서울의 관악산처럼, 오방신五方神 중 주작朱雀처럼 말이다.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삼봉산을 꺼냈다. 내려놓으며 숨을 멈추고, 어느 곳이 바로 그 위치인지 신중하게 살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마지막 낙관 지점을 찾아 붉은 인주를 묻힌 인장을 종이에 대는 순간처럼.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음에 드는 위치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삿짐을 싸며 흘깃흘깃 장식장을 바라봤다. 빈칸이, 자꾸 눈에 밟히고 울컥해졌다. 옛사람들이 모든 것들에 그렇게 이름을 지어 붙이고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건 그저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號와 자字와 명名과 더불어 관계에 따라 부르는 호칭도 다양한 ‘사람’처럼 문에도, 방에도, 집에도, 모든 사물에 의미를 가득 담은 이름을 붙였던 이유를 생각해 봤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그것에 대한 기억조차 다 사라지는 허무함이 바탕인 삶 속에서 찰나지만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지어서 의미를 부여하고, 마땅한 위치를 찾아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문득 다시 삼봉산을 집으로 가져오고 싶다가도, 어차피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는다. 대신, 삼봉산 이야기를 쓴다. 이야기는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고, 알 수 없지만 가지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면 궁금해하실 수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