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힘 / 차윤옥
며칠 전에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하철과 버스 이용에 대한 때 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누구는 지하철을, 다른 이들은 버스를 옹호했다. 옹호라기보다는 저마다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에 대해 애정 어린 변론을 주장했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나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비교적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 애호가들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는 이점을 선호하는 까닭으로 꼽았다. 그러다가 익숙한 장소가 눈에 들어오면 내릴 곳에 다다랐음을 저절로 알고 내릴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하를 달리는 기차다. 특별히 구경할 풍경이랄 게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강을 건너고, 가끔 지상을 달릴 때 느끼는 시원함은 그러한 기본 속성 때문에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다. 지하철의 매력은 그뿐이 아니다. 버스를 타는 맛이 세상 구경에 있다면 지하철을 타는 맛은 사람 구경에서 비롯된다. 바깥은 온통 캄캄하고, 밝은 열차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아주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지하철은 정차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밀폐된 공간인 셈이다. 이것은 무언가에 집중하기 아주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준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주로 하는 행동이 대부분 음악 감상, 독서 등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임을 생각하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안과 밖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지하철이든 버스든 ‘생각의 찰나’를 주는 것은 분명 대중교통 수단이 가진 장점 중의 장점이다.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 때로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참 신기한 것이 느껴진다.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서로 얼굴이 다르고, 개성에 맞는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하나같이 딱딱한 무표정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일행이 있지 않은 이상 혼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에 그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모두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번은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 앉은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해서 그냥 시선을 돌릴까 하다가 미소를 지어 보낸 순간, 그 학생은 ‘아줌마, 나를 알아요?’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무안한 마음에 다시 책으로 눈길을 옮겼지만 영 읽히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이 혼자이고, 낯선 이들과 함께 몸을 부딪치며 가는 일이 불편하므로 좋은 표정이 나오지 않을 수는 있다. 그 와중에도 눈이 마주쳤을 때 살짝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을 만난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감사한 마음에 저절로 정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미소는 그렇듯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일소일소 일로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며 얼굴을 붉힐 때마다 해주던 말이기도 하다. 웃으면 젊어지고, 화내면 늙는다는 뜻인데 간단명료하게 웃음의 힘을 설명해 준다. 이 구절을 보면 웃으면 주름이 생긴다고 잘 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있다. 보톡스 주사 한 방보다 시원한 웃음 한 방이 더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새겨 두어야겠다. 실제로 웃음은 의학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알려졌다. 외국의 몇몇 연구팀이 웃음은 백혈구를 튼튼하게 만들어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혈압을 조절하거나 소화 능력을 향상시키는 등 웃음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마이애미 주에서 무료병원을 운영하는 헌터 아담스라는 의사가주인공이다. 그는 환자들에게 웃음으로 의술을 펼쳤다. 코는 빨갛게, 광대 분장을 하고 병으로 시달리는 환자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게 했다. 아무리 전문적이고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있다고 해도 수술이나 약만으로 치유되지 않는 병이 우리 주변에는 참 많다.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고 환자 스스로가 나을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잃지 않아야 의술의 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의사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낮은 자세로 환자들에게 다가가 광대 흉내를 내다니, 환자들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특히 난치병을 앓는 어린 환자들은 몸만큼이나 마음을 다치기 쉽다. 그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 놀이와 웃음을 선택한 것은 웃음이 갖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증명하는 셈이다.
우리는 흔히 웃고 살자는 말을 들으면 웃을 일이 없다고 되받아 치거나 잘 웃는 사람에게 실없어 보인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러 만들어 웃는 웃음에도 엔도르핀이 생성된다고 한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웃는다’는 사실은 인지하지만 그것이 가짜 웃음인지 진짜 웃음인지는 구분하지 못한단다. 즉 웃을 일을 만들어서 웃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웃을 때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웃음의 실마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늘이 맑고 청량하니 기쁘고, 엄마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의 종종걸음이 예쁘고, 또 타는 목마름에 들이켠 물 한 잔이 갈증을 해소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그럴 때마다 한번쯤 깔깔거리며 크게 웃으면 어떨까.
넝쿨 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반칠환 시인의 ‘웃음의 힘’이라는 시다. 이 짧은 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장미 넝쿨처럼 이웃의 담을 뛰어넘으면서 우리 모두 가슴을 열고 마음껏 웃어보자. 모르긴 해도 우리 이웃도 웃음의 ‘현행범’ 앞에서 가슴을 열고 크게 웃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