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것 / 신효심 -
2026 제11회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 당선작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허리춤을 쥔 두 손에 힘이 풀리는 걸 알아차린 아빠가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지나가는 차 잡아줄 테니 타고 가. 아빠는 오토바이로 곧장 뒤따라갈게."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빠 오토바이 뒤에 타고 읍내에 있는 한국전력공사에 가는 길이었다. 전기 절약을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탔다. 장려상이었는지 우수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 등에 내가 기대고 내 등에 봄볕이 기대고 있었다. 가끔 그날의 졸음이 생각난다. 등은 따뜻했고 얼굴에 와닿는 바람이 기분 좋았다.
"다시는 안 졸게. 아빠하고 같이 갈래."
나는 아빠의 허리춤을 꽉 잡았다.
시상식 단상에 어떻게 올라갔는지, 얼마만큼의 박수를 받았는지, 소감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는 나를 낯선 차에 태워 보내겠다는 아빠의 말에 서러움이 밀려오던 기억만 난다.
아빠의 오토바이를 처음 탄 건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빠 뒤에 내가 타고 내 뒤에 오빠가 탔다. 겁이 나긴 했지만, 아빠와 오빠 사이에 주판알처럼 끼어 있는 안도감이 기분 좋았다. 아빠 등에 왼뺨을 기대고 비스듬히 올려다본 주황빛 하늘이 너무 예뻐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어둠이 하늘을 밀어낼 것 같아 초조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우리 남매를 오토바이에 앉히던 때 기운 없어 보이던 아빠의 얼굴 때문인지 나는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집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점방 앞에 오토바이가 멈춰섰다. 아빠는 막걸리 한 병을, 나와 오빠는 밀크카라멜을 하나씩 집어들었다. 아빠는 막걸릿잔을 단숨에 비우시고는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과 우리를 번갈아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점방에 가는 저녁을 손꼽아 기다렸다. 직장에 들어가서야, 해 질 녘 우리 남매를 태우고 달려가 막걸리 한 잔에 하루 고됨을 씻었을 아빠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입학 전날 하숙집 작은 방에 조그만 내 짐을 내려놓고 돌아서 가는 부모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가족과 떨어져 낯선 사람들뿐인 하숙집에 살면서 학교생활에 온전히 적응하기는 힘들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길보다 더 깜깜하게 느껴졌던 하숙집 방에 웅크린 채 엄마에게 전화해서 집 근처 학교로 전학하면 안 되냐고 울먹였다. 예상치 못했던 첫 중간고사 성적과 우려 섞인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아빠는 매일 하숙집으로 전화해 하루 일과를 물어봐 주시고, 떨어져 지내는 어린 딸을 향한 사랑과 응원의 마음을 담은 편지도 자주 보내주셨다. 괜한 투정으로 멀리 계신 부모님을 걱정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아빠의 허리춤을 더는 잡지 않게 되면서부터일까, 나는 자라고 아빠는 나이가 드셨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부모님과 지내는 날은 더 줄어들었다.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가 플랫폼에 멈춰 서면 시골에서 보내는 시간도 같이 멈추기를 바랐다. 기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아빠가 보였다. 승하차 승객이 엇갈리는 개찰구 앞에서 상반신을 플랫폼 쪽으로 최대한 내민 모습으로 서 계셨다. 대합실에는 오래도록 품어온 사랑이 풍경처럼 머물러 있었다.
딸이 내려오는 날이면 아빠는 막걸리 두 병을 사셨다. 내 주량은 진작에 한 병을 넘어섰지만, 홀로 지내는 딸을 염려하실까 봐 나는 반병만 아껴가며 마셨다. 아빠가 우탁의 「탄로가」를 읊으셨다.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아빠의 얼굴에서 탄식이 아닌 여유와 달관을 느꼈다. 아빠의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에 내려앉는 석양빛에 나는 가슴 언저리가 뻐근해졌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을 했다. 이때가 아니면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두어 달 지낼 요량으로 시골집에 내려갔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새하얀 아기 내복이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 첫 손주를 향한 아빠의 사랑이 마당 잔디에 맺힌 아침이슬보다 더 빛났다.
울음이 길지 않은 순한 아기를 보며 “풀 많단다”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손주가 음력 6월생 소띠라고 했더니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친구분이 풀이 가장 무성한 여름에 소가 태어났으니 먹고사는 걱정 없는 좋은 사주라는 말을 덕담처럼 건네주셨다고 한다.
시골에 내려간 지 2주가 채 안 되던 날 저녁, 평소처럼 뉴스를 보시던 아빠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심장마비였다. 구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는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지셨다. 오래전 봄날 잠들지 않으려고 아빠의 허리춤을 꼭 붙잡고 가던 그 길을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렸다. 그 뒤를 택시로 뒤따라가면서 아빠 등에 기대 졸음을 쫓던 생각이나 서럽게 울었다. 갓 백일을 넘긴 아기가 내 옷자락을 온 힘으로 붙들고 있었다.
그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교복을 맞추고 새 학년 용품을 준비하는 내내 얼굴이 어둡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신학기 공포증으로 많이 아파한다. 점심시간에 급식실도 가지 않고 빈 교실에 홀로 있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을 들어서는데 메마른 얼굴 위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 눈물이 바윗덩이가 되어 내 가슴을 누른다.
제때 찾아와준 봄비에 아파트단지 안이 연녹색으로 물들었다. 겨울을 견뎌낸 가지마다 여린 잎사귀가 야무지게 돋아나는데 아이는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겨울 속에 갇혀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왔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지내던 딸의 울음 섞인 전화를 받았을 때 아빠의 마음도 이러했을까. 지금 내가 꼭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이끌어낸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오애순은 말한다.
“부모는 모른다. 자식의 가슴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을. 자식의 옹이가 아비 가슴에는 구멍이 될 걸 알아서 쉬쉬하게 한다.”
아빠의 가슴에 구멍을 만들고 싶지 않아 일찍 허리춤을 놓았지만 아이는 내 허리춤을 오래도록 잡아주면 좋겠다. 깜깜한 어둠 속에 혼자라고 느낄 때면 내 등에 기대어 자울자울 졸았으면 좋겠다. 그 졸음 위로 쏟아지는 햇살 한 줌이 내 옹이에도 스며들기를 바란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 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이면우 시인의 시 「오늘, 쉰이 되었다」의 한 구절이다. 건너온 절반의 삶을 녹여 남아 있는 절반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깨어나려는 나와, 막 눈뜨기 시작한 아이가 더 큰 호흡으로 함께 걷는 길이다. 아이로 인해 내가 조금 더 깊어지고, 아이는 내 곁에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아빠 등에 기대어 졸던 그 봄날이 떠오른다. 오늘도 아빠는 내 눈썹 끝 물방울로 내려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