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와 뿌리 / 청랑

무더위를 헤치고 여백서원에 계신 전영애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 평생을 독문학자로 괴테에 몰두해 ‘괴테 할머니’로 불리셨다.

“저는 웃어도 안 예쁩니다. 꽃은 예쁩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웃음은 더없이 맑고 밝게 피어난 함박꽃이었다. 강의 중에 괴테의 부모님이 괴테에게 주었다는 두 가지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두 가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날개와 뿌리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것. 자식이 날아갈 수 있는 꿈을 줘야 한다. 붙들어 매지 말고 자기가 살 수 있게끔 뿌리내리는 힘을 줘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날개가 돋아나기를, 꿈과 뜻이 자라기를 기다려주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했다.

나는 어린 시절 두메산골에서 자랐다.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그곳. 무공해인 자연 속에서 먹고 뛰고 일손 돕는 게 일상이었다. 어릴 때 받았던 부모와 형제의 절대적인 사랑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큰 힘이 되었다. 사람이 마지막 실족失足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즉 유혹이나 잘못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은 유년 시절에 받은 사랑의 기억이라고 한다.

내 아이들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아파트에 이웃해서 살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또래들의 온갖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부모들끼리 힘겨루기했다. 각박한 곳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메마른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택한 게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동네 근처에서 시작된 산행은 북한산 백운봉과 관악산 연주대까지로 이어졌다. 또 고궁이나 미술관, 영화관, 놀이공원 등을 아이들과 함께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너른 품을 가진 아이들로 자랐으면 해서였다. 세상은 생각만큼 삭막하거나 인색하지 않고, 또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학군이 괜찮다는 동네로 이사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모든 게 낯선 곳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거라 자부심도 품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과 길에서 맞닥트렸다. 아이의 같은 반 짝도 보였고 빨강머리 노랑머리를 한 아이들도 있었다. 짝은 중학교 때 일진회라는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그 조직에 속한 아이들일 거였다. 항상 ‘모범생이다 의젓하다.’라는 말을 이름처럼 달고 다녔던 아들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 이해도 되었지만, 그 아이들과 다시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아들은 친구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을 받았고 고립과 따돌림으로 한동안 아파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다 정리된다.’라며 아이 등을 다독거렸다. 아이는 그 일로 한 뼘 더 컸으리라. 그때 만약 아들에게 상처 주며 닦달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아들이 고3 수험생이 되었다. 오롯이 아이한테 안테나를 세우다 보면 숨 막힐 거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아이는 짬짬이 농구시합을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가끔은 딸한테 원망도 듣는다. 왜 공부하라고 채근하지 않았느냐? 고. 그 말에 가만히 아팠다. 우매해서 부모 역할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없어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이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믿었듯이 나 또한 공부로만 채근하고 싶지 않았다. 품 안에 있을 때 이것저것 경험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둘째인 딸은 공부보다 예체능 쪽으로 더 정성을 쏟았고 그러다 제 길을 찾기 바랐다. 주변을 보면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미리 정해두고 앞에서 잡아끌고 뒤에서 밀다가 가족 간의 관계가 파탄 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이 대학에 다닐 때도 취업해서 일할 때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국내든 해외든 세상을 보라고 등 떠밀었다. 삶이란 장대 높이를 거뜬히 뛰어넘고 또 못 넘더라도 좌절해서 주저앉아 있지 않았으면 해서다.

며칠 전 바닷가 모래밭에 피어나는 갯메꽃을 보러 갔다. 바닷가란 혹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워내는 갯메꽃을 쭈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덩굴로 모래땅을 기면서 길게 뻗어 줄기 마디마디에 뿌리를 내린다. 새로운 개체를 계속 만들기 위해서다. 커다란 군락을 이뤄 피어난 갯메꽃이 뿌리로 모래를 단단히 붙잡아 종자를 품는다. 씨앗은 바람을 바닷물을 타고 가다 새로운 터전에 뿌리를 내린다. 식물도 종족 번식을 위해 이토록 애쓰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나에게 새싹이 찾아왔다. 수시로 핸드폰을 열어 손녀를 본다. 작은 생명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웃음을 웃게 한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게 어디에 있을까. 저토록 맑은 영혼에 소중한 것, 참다운 것만 와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뿌리와 날개는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 안에 순순順順한 뿌리를 내려 살고 싶은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 그게 날개와 뿌리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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