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한 그릇 / 김순이
2인실 병실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계속되는 장마에 환자가 덮는 이불도 눅눅해 보였다. 가라앉은 공기를 깨우기라도 하듯 갑자기 새 올케와 나 사이에 높은 소리가 오갔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호통이 날아왔다.
“거, 조용히들 하시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조금 전까지 꼼짝도 않고 있던 노인의 느닷없는 출현이 당황스러웠다. 얼마 전에 병실로 들어왔지만, 그동안 말은커녕 미동도 없었기에 그의 존재를 깜박 잊고 있었다.
노인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의식이 없는 동생 옆에서 재혼한 새 올케와 불편한 시간을 보내다 상속 문제를 의논한다는 것이 다툼이 되고 만 뒤였다. 상황을 알아채고 얼른 노인에게 사과드렸다. 그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오 분쯤 지났을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누가 또 있겠소? 다 같은 혈육 아니오?”
노인은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긴 연설을 이어갔다. 노인의 얼굴에 생기가 돋아난 것 같았다.
“우리 세대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경험한 세대요. 그 시절 이복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구 남매의 맏이로 살았소. 6․25 전쟁 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았을 것 같소? 재물은 있다가도 흩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요.”
노인의 생이 빠르게 스쳐갔다. 변명하고 싶었지만, 병실에서 소란을 피운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감정이 앞서 환자가 계신 걸 깜박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우리는 정중하게 사과드렸다.
노인은 위암이라고 했다. 팔순이 가까운 노인은 입을 닫은 채 종일 말 한마디 없었고 필요할 땐 손짓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간병인이 노인의 수발을 들었고, 가끔 가족으로 보이는 육십 대 후반의 여자가 와서 간병인과 수다를 떨다 갔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부인이라고 하기엔 드물게 얼굴을 내밀었고, 남매라고 하기엔 그리 애틋해 보이지 않았다. 형식적인 방문객처럼 노인에게 정이라곤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인은 올 때마다 병원의 눅진한 공기를 한 번씩 뒤집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럴 때면 질식할 것 같던 분위기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그런 날이 아니면 병실의 분위기는 늘 무겁게 가라앉았다.
처음에 노인은 사흘도 못 살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가 병실을 들를 때마다 노인의 몸이 점점 호전되는 것 같았다. 다음에 갔을 때는 전보다도 훨씬 좋아 보였다. 그러나 코로 연결된 호스를 통해 영양공급을 받고 있어 밥을 못 먹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쯤 후엔 호스 줄마저 치워졌다. 대신 수액이 침대 옆에 매달려 있었다. 그날 노인 옆엔 주말을 맞아 문병을 온 젊은 남자가 있었다. 처음 보는 방문객이었는데 손자나 조카쯤으로 보였다. 노인은 그날따라 몸 상태가 좋았는지 오랜만에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복도에서는 식사를 마친 환자 가족들이 식판을 정리하는 소리가 났다. 아침을 늦게 먹었는데도 시장기가 느껴졌다. 노인이 식사하는 걸 못 보았기에 말을 걸었다.
“어르신, 뭐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제가 사다 드릴게요.”
뜻밖에도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재차 물으니, 힘이라고는 없는 사그라드는 목소리로 따뜻한 칼국수 국물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조카를 시켜 칼국수 한 그릇을 사 오게 했다. 그때 말없이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조카를 따라 나갔다.
남자가 포장된 음식을 들고 왔다. 그는 침대 탁자 위에 그것을 펼쳐 놓고 그릇 뚜껑을 열었다. 구수한 해물칼국수 냄새가 온 병실에 퍼졌다. 노인은 조심스럽게 국물 한술을 떠서 맛을 보더니 칼국수를 몇 점 건져서 천천히 삼켰다. 다음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연거푸 후루룩하며 입으로 넣었다. 바지락을 건져서는 조갯살을 까느라 얼굴에 땀까지 맺혔다. 오래 누워 있던 환자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칼국수 한 그릇에 노인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 것 같았다. 그 상태라면 노인은 며칠 안에 퇴원해도 될 것 같았다.
칼국수를 좋아하던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입맛이 없을 때면 칼국수를 자주 해 드셨다. 엄마도 위암이었는데 병원 치료가 가망이 없자 마지막 시간을 언니 집에서 보냈다. 주말을 맞아 뵈러 갔을 때, 부엌에선 마침 압력밥솥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팠는지 엄마가 머뭇머뭇하다가 간신히 입을 떼셨다.
“밥 냄새가 솔솔 나는구나.”
하지만 엄마는 그 솥의 밥을 한술도 뜨지 못했다. 음식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날도 구급차에 실려 가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기에 링거 주사를 맞는 것 외엔 아무것도 들지 못하고 누워만 있다 세상을 뜨셨다.
다음 주말에 병원에 들렀더니 옆 침대가 비어 있었다. 침구도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기에 할아버지는 퇴원하셨느냐고 물었다. 내가 다녀가고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날 식사한 게 탈이 났던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한편으론, 먹고 싶던 칼국수로 마지막 식사를 하고 가셨으니, 다행이라고도 생각되었다. 노인이 살아 있을 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당당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어쩌면 많이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을 그의 생도 연민으로 다가왔다.
비 오는 날 칼국숫집 앞을 지날 때면, 노인의 말이 유언처럼 떠올라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게 된다.
“누가 또 있겠소? 다 같은 혈육 아니오?”
올케와 헤어진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이 봄이 가기 전 올케를 불러 칼국수 한 그릇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