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 모임득

면도기를 들어본다. 세월의 무게보다 더 묵직한 마음이 느껴진다. 단지 턱수염을 깎던 도구가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다듬어 온 시간의 흔적이다. 손잡이는 차갑지만, 그 속에서 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면도기를 발견했다. 담아두었던 두꺼운 곽은 헐고, 빛나던 날은 녹슨 지 오래되었다. 오래전 시골집을 정리할 때 아버지가 쓰시던 물품이라 버리지 못하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이 물건이 시골집에서 그리고 우리 집 서랍 속에서 몇 년을 잠자고 있었던가. 날마다 돋아나던 수염은 이제 더 이상 다듬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삼십여 년 되었으니까.

요즘처럼 전동면도기가 흔한 세상에 이런 수동은 골동품처럼 느껴진다. 뚜껑에 동화 77 문구가 있다. 날은 무뎌지고 녹슬었지만 폈다 접었다 하기는 잘 된다. 그래도 낡은 면도기를 보는 순간 나는 어린 시절의 새벽으로 돌아갔다.

해 뜨기 전부터 녹이 살짝 낀 면도기를 쥐고 가죽끈에 날을 문지르는 소리, 이어서 면도칼이 턱을 스치는 스삭스삭 소리가 집안을 깨웠다. 펌프식 우물가 옆 벽면에 거울이라고 하기 민망한 낡은 거울을 걸어 놓으시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면도를 하는 게 일상이셨다.

가죽끈에 날을 문지르다가 가끔은 우물가 한구석에 있는 숫돌에 낫 대신 날을 갈기도 하셨다. 잘 들지 않는 낫을 가는 건 그런가 보다 하는데 면도날을 가는 건 좀 생경했다.

비누를 손끝에 묻혀 얼굴에 거품을 낸 다음 꼼꼼하게 면도하실 때면 논과 밭을 가꾸는 농군이 아니라 삶을 단정히 세우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시는 아버지는 육 남매의 울타리였고 산이었다.

일체형은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지만, 사용자가 직접 숫돌로 날을 연마하여 날카롭게 만든 뒤 면도하는 형식이다. 비누칠한 얼굴을 면도하고 쓱싹 물에 한 번 헹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바쁜 농사철에 더 편하게 사용했을 수도 있다.

산골에서 농사지어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건 담배 농사와 고추 농사였다. 모종을 키울 때부터 까다롭다. 고추 딸 때면 손이 얼얼하고, 특히 담배는 땀에 젖은 옷이 아직도 기억난다. 누렇게 진득한 진이 옷이며 손에 밴다.

담배를 따서 건조실에 말렸다. 석탄을 물에 개어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불을 꺼뜨리면 안 되니 밤낮으로 때야 해서 잠이 부족할 텐데도 옥수수며 감자를 잔불에 구워주시곤 했다.

농사는 몸으로 부대끼는 일이다. 목돈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고춧값은 해마다 들쭉날쭉하고 담배는 계약량이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농사꾼은 밭을 놓을 수 없다. 해마다 흙을 일궈 농사지으며 살아냈다. 고추와 담배 농사는 그저 작물이 아니라 세월과 노동이 스며든 삶의 흔적이다.

바쁜 농사철이지만 수염을 거를 수 없는 건 수염이 많이 자라 더부룩해서이다. 내가 젊었을 적 털이 난 팔이며 다리가 왜 그렇게 싫던지. 매끈매끈하고 백옥같은 살결에다가 털도 별로 없는 어머니를 닮았으면 싶었다.

하루는 면도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 닮아서 내가 털이 많이 났다고 퉁명스럽게 툭 던졌다. 면도기를 얼굴에서 떼며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 허허 웃으시고는 다시 면도에 집중하셨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세월을 돌아 아버지의 하루와 만나고, 그 하루가 다시 내게 와 닿는 순간 아버지와 닮아있다는 사실조차 그리움이 되었다. 다시 면도기를 서랍 속에 조심스레 넣었다. 서랍 속에서 아버지의 아침을 품고 놓여 있으리라.

녹이 슬었지만, 이 쇠붙이 하나에 아버지의 삶이, 농사의 고달픈 시간이 그리고 단정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언젠가 내 얼굴에 삶의 찌든 주름이 새겨지면 이 면도기를 꺼내 수염을 다듬던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리라. 그러다 보면 내 마음도 다듬어질 테다.

오래 손때가 탄 낡은 면도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오랜 빛깔과 시간이 다듬어낸 안정적인 편안함이다. 어쩌면 먹빛에 가깝다고나 할까. 오래된 물건이 품은 시간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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