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고통이 감사가 된 순례길

 댓글 2026-05-12 (화) 12:00:00 김영화 수필가
 
생장(Saint-Jean-Pied-de-Port)에서 까미노(Camino) 순례 여권을 만들고 시작한 순례길 첫날, 오리손 산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이다. 산 중턱에 내려앉은 운무는 마치 신선이 내려올 듯 신비롭고 한 폭의 그림 같다. 소와 말들이 거니는 산을 오르는 길이라 숨이 턱까지 걸린다. 깁스 안에 갇힌 손목의 통증은 걸음마다 작은 종처럼 울리지만, 순례길은 멈출 수 없었다. 내 짐까지 진 남편은 무거운 배낭이 왼쪽 가슴의 페이스메이커 자리를 짓눌러 끈을 두 손으로 붙잡고 두 사람의 삶을 지고 걷는다. 하늘에 흰 구름 흘러가듯 천천히 세상을 앞으로 밀어내지 않고 세상이 나에게 다가오게 걷다 보니 팀에서 점점 뒤로 처진다.


앞만 보고 쉼 없이 경주하듯 살아온 우리의 삶,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우리의 순례길은 두 부상병이 서로 밀어주고 붙들어주며 걸었다. 급한 성격에 오래 기다리지 못하는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세며 뒤따라오는 남편을 격려의 전파로 엮어 끌었다. 걷다가 기다리기를 수 없이 반복하며 인내로 호흡을 맞추었다. 우리의 느린 걸음은 파란 산등성에서 풀을 뜯는 소와 말의 천진한 눈짓, 하늘을 가로지르는 솜털 구름의 그림자, 검붉은 낙엽에 쌓인 길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 마을의 술 익는 냄새, 등을 만끽하게 했다. 나를 스쳐 지나는 순례자들과의 “부엔 까미노” 따뜻한 격려의 인사, 친절한 카페 주인들과 순례 도장을 오래 간직할 것 같다.

순례길 동안 우리 짐을 들어준 팀원, 화장실에 쫓아와 내 바지를 올려주었던 팀원과 시애틀에서 왔다는 60대 여인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 인생은 혼자서 완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도우며 사는 존재라는 말이 맞다. 손목을 다치지 않았다면 보지도, 느낄 수도, 깨닫지도 못했을 것들이다.

종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대 성당 광장에 왔다. 온몸과 마음을 쏟아 낸 듯,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섰다. 지금까지 모든 역경을 견디고 걸어온 길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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