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사람들은 한 계절을 더 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과메기철이다.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이 싸늘해지면 겨울 채비하는 것은 제켜두고 입맛 먼저 다신다. 입맛은 시간으로 축적된 개개인의 정서이다. 변화 많은 세상 속을 헤매다가도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면 불씨처럼 간직해둔 입맛을 살려내는 것이다.
포항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과메기 개시'라고 써 붙여 놓은 식당들이 한발 앞서 겨울을 맞는다. 작은 슈퍼마켓이나 식당 입구마다 과메기를 걸어 놓으니 과히 축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지방화 시대를 맞아 때에 따라 각축을 벌이듯 지역마다 축제가 있지만 한 계절 내내 질펀한 먹거리판이 열리니 이만한 축제가 또 있을까?
원재료는 청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문헌으로만 남아 있을 뿐 일부러 찾아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1960년대 농가에서 청어를 부엌 살창에 걸어두고 연기에 그을려 훈제 된 것이 겨울 설한풍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말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꽁치를 구룡포 덕장에서 해풍에 말린 것을 최고로 친다. 백두대간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포효하는 호랑이 호미곶의 지심이 어우러지며 숙성되는 것이다.
꽁치를 통째로 짚으로 엮어 보름 정도 해풍에 말리면 먹기 좋게 꾸덕꾸덕해진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과메기에도 해당된다. 너무 덜 마른 것도 안 되지만 너무 바싹 마른 것은 오히려 질기고 비리다. 촉촉하기가 적당해야 한다. 숙성되는 것이 어디 먹거리에만 있겠는가! 사람 사이에도 처음 만났을 때의 데면데면한 어색함을 숙성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벼른 칼날같이 시퍼런 꽁치도 해풍과 시간 앞에 고분고분하게 숙성된다.
아름다운 질서는 곧 풍경이 된다. 깊은 겨울 구룡포 덕장에 가면 번쩍거리는 비늘 훈장을 달고 도열한 군병들의 풍경을 보게 된다. 머리와 내장을 덜어내고도 우월한 유전자를 감출 수 없다는 듯 붉은 살점에 주체할 수 없는 기름기를 뚝뚝 떨어뜨리며 열반에 오른 과메기의 군무를 볼 수 있다.
잘 마른 과메기를 내장을 잘라내고 조근조근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선뜻 광채가 인다. 바다 무지개가 뜬다. 반짝이는 것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붉은 살 한 점에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이슬같이 투명한 소주 한 잔 곁들이면 번잡한 머릿속까지 맑게 헹궈진다.
먹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길까? 사람 사이에 윤기 돌게 하는 것도 먹음에서 비롯된다. 어느 해 겨울 책 만드는 일에 가담했던 적이 있다. 몇몇 사람들이 둘러앉아 의견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회의는 자꾸 겉돌고 무거운 공기 속에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뒤늦게 오는 사람이 참 어울리지 않게 역거리 과메기 한 두릅 흔들며 나타났다. 잠깐 정지 버튼을 누른 듯 회의를 멈추고 와락 달려들어 과메기 껍질을 벗기고 미역과 배추에 싸여 슬펴시 한 쌈이 되고 말았다. 뒤돌아보면 가장 맛나게 먹었던 과메기 파티였다.
과메기는 모여서 먹어야 맛있다. 혼자 먹는 밥이 슬픈 것처럼 과메기도 혼자 먹으면 청승맞다. 과메기 속성이 조신하거나 우아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수더분함에 있다. 죽도시장에서 하루 종일 장화 속에 질척거리던 발을 꺼내놓고, 리어카 끌고 밀던 마디 굵은 손도 함께 어울려야 제맛이다. 미역에 쪽파와 마늘을 얹고 초고추장 듬뿍 찍어 한 입에 우물우물 먹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얼굴에 단풍이 든다. 퍽퍽한 마음에 기름기가 돈다.
포항 사람들은 뜨겁거나 차다. 꽁치가 혹한의 추위를 견딘 후에 과메기로 재탄생되는 원리는 포항 사람들의 기질을 닮았다. 쇳물을 녹이는 열정과 호미곶의 해풍에 담금질된 기질이 뭉그적대거나 미지근한 건 참아내지 못한다.
과메기는 누구와 어디서 먹든 느낌표이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아랫배가 묵직한 느낌이고, 추은 사람에게는 구들장 같이 뭉근하다. 경직된 사람에게 한 쌈 건네주면 스르르 무너질 것이고,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과는 과메기 엮이듯 한 두름으로 엮이고 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