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의 기억 / 김희숙

뚫고 나오는 것은 나아갈 힘을 가졌다. 바싹 마른 가지에서 돋아난 두릅순과 서릿발 녹이며 피어난 노루귀꽃은 안으로 강인한 생동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은 순해 보이나 솟구치는 물기둥은 흙 속의 것들까지 거침없이 쏟아낸다. 사람들은 그 힘을 끌어 모아 생명수로 사용한다.

 

담쟁이 잎이 점령한 돌담과 반듯하게 열을 맞춘 벽돌담을 지나 빗물 자국이 덕지덕지 새겨진 흙담이 연이은 고샅길이다. 구불거린다지만 편평하게 단장된 골목인데 자동차는 다소곳이 속도를 줄이고 보행보조기를 미는 노인들은 에둘러 다닌다. 주춤거리게 하는 주범은 과속 방지턱이 아니라 사각 우물이다. 그것도 이쪽에서 소리치면 저쪽에서 선명하게 들릴 곳에 하나 더 놓였다. 줄 지은 두 우물이 갈림길마다 턱하니 버티고 섰다. 검불도 들어가지 말라는 듯 애지중지 철재 뚜껑까지 덮어두었다. 비뚤배뚤 쓰인 ‘쓰레기투입금지’라는 붉은 글씨가 눈길을 잡아 끈다.

 

우물은 마을의 중심이었다. 물 따라 인연이 모이고 발길이 흩어졌다. 비록 지금은 정오의 햇살이나 엿보고 지나던 실바람이 쉬어갈 뿐 찾는 이조차 없으나 누천년에 걸쳐 숨 쉬는 것들을 살렸다. 들여다보는 눈동자를 물빛이 받아 되쏘아 올린다. 이마로 내리쬐는 볕살은 눈부시나 정작 안은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켜켜이 내려간 어둠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아 정신이 아득해진다. 정수리를 짓누르던 양철 물동이 무게와 푸성귀를 씻으며 주고받던 수다들이 소쿠리 가득 전해주던 찬거리 정과 뒤섞인다. 손을 내밀어 깊숙이 잠겨 있던 우물의 기억을 건져 올린다.

 

백수읍 대전리가 공식 지명이고 한밭뜰이라고 부른다. 땅덩이가 넓어서인지 한때는 의식주가 넉넉한 부촌이었다. 오유당 고택이 남아 있어 마을의 옛 영화를 전한다. 동쪽 샘에서 뻗어나간 골목 끝집에 지암동댁이 살았고 서쪽 샘 줄기 막바지가 금순씨의 양옥집이었다. 금순씨는 지암동댁의 막내딸이다. 동서 우물이 어깨를 겯듯이 모녀는 텃밭을 사이에 두고 저마다의 살림을 꾸렸다. 된장에 버무린 냉이나물이 밭둑을 타고 건너가면 어슷하게 썬 무를 깐 조기가 뻘건 양념장을 뒤집어쓴 채 담겨왔다. 비틀린 콩대를 도리깨질할 때나 툇마루에 부려놓은 태양초 꼭지를 딸 적엔 나직한 말소리가 장단을 맞췄다.

 

물골이 통해서인지 물맛이 닮았다. 이어진 것은 서로를 지켜야 공존한다. 한쪽 우물이 병 들면 다른 편 물도 마실 수가 없다. 금순씨는 휘청거리는 노모의 발걸음을 살폈고 지암동댁은 딸의 어두운 얼굴빛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집안 몽둥이도 일한다는 농사철에는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지암동댁이 나서 손맛 버무린 찬을 날랐고 풋고추가 물들어가는 계절에는 이파리 우거진 고춧대 사이로 굽은 허리를 더욱 구부렸다. 일손을 덜어보겠다는 심사였으나 어느 순간 금순씨의 만류하는 몸짓이 한가롭던 밭가 수숫대를 흔들었다.

 

물은 흘러 시간을 잇는다. 몇 해 전, 바닷가 동백마을 윗샘 물을 먹고 자란 금순씨는 아랫샘 옆집 박씨에게 시집갔다. 과수댁에겐 한동네 사돈댁이 보이지 않는 초병이지 않았을까. 나서기보다 뒤로 물러섰고 듣고 보았지만 입을 닫았다. 우물가로 풍문이라도 떠돌까 염려하여 아랫샘 근처로 내려가는 숨길조차 삼갔다. 아래로 흐르는 것이 물의 순리라 했던가. 금순씨는 시어른 봉양하고 아이들 건사하느라 윗샘으로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동기간이 왔다는 소식을 들어도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했다. 아랫샘 터에서 윗샘이 머문 능선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지척에 있어도 우물마다 간직한 내막이 다르다. 천성이 부지런한 금순씨는 밭을 늘리고 논을 사들였다. 그녀는 새 터전인 한밭뜰 양옥집으로 이사하였고 어머니도 가풀막진 골목에서 정갈한 기와집으로 모셔왔다. 가깝다고 좋기만 할까. 모녀는 허물없이 지내는가 싶으면서도 턱밑 거리만큼 수시로 부딪쳤고 서운함을 내비치지 못해 앙금을 남겼다. 금순씨는 농사지은 잡곡과 양념이 도시 사는 언니나 조카에게 쥐여지는 것을 알기에 속앓이를 했다. 주는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금순씨 집에는 신발 벗어 들어오지도 식탁에 앉아 밥숟가락 뜨지도 않으면서 어쩌다 언니들이 온다는 기별을 받으면 읍내 장까지 다녀오는 어머니의 속내가 내심 불편했다. 한 우물에서 퍼져 나갔으나 자신에게 오는 물고랑만 유독 얕아보였다.

 

물길을 바꿨더라면 나았을까. 지암동댁 방문에는 그림자가 홀로 일렁였다. 헛헛한 가슴을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긁어대는 호미질과 살 에는 갯바람 맞서는 조새의 날갯짓으로 채웠다. 자식에게만은 억척스럽게 밭고랑 갈아엎는 고단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농사일에 파묻혀 사는 딸의 살결이 부지깽이처럼 그을리고 볼살이 몰라보게 야위어 갈 때는 다독이지 못한 속이 타들어 갔다. 가난을 물려주고 질긴 연줄로 이어놓은 것이 당신 탓처럼 여겨졌다. 부모자식이라는 숙명은 피할 수 없다지만 삶이라도 떨어진다면 어미 닮은 운명이 방향이라도 틀어줄까. 모진 결심으로 딸을 품에서 밀쳐내었고 딸네 마당은 서성여도 문턱을 넘진 않았다. 그런 날에는 불 꺼진 문틈으로 시린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가는 발길이 끊긴 밭둑은 한동안 키 큰 쑥부쟁이로 뒤덮였다.

 

낡은 울이 폭우로 무너졌다. 마을 사람들이 울력을 나서 허물어진 벽체를 다시 조각돌로 끼워 맞췄다. 이끼를 걷어내고 가라앉은 흙덩이며 돌멩이도 치웠다. 앓아 누운 금순씨 안방으로 절뚝걸음이 백합죽 그릇을 받치고 들어섰다. 뜨거운 죽을 식히는 주름진 입김이 뭉친 응어리를 풀어헤쳤다. 담장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 연두 움이 트고 마당가로 보라색 꽃눈이 땅거죽을 밀어내는 봄날, 우물 옆 공터에 주차된 관광버스가 우르릉거리며 대문 나서기를 재촉했다. 버스에 오르려는 금순씨 잠바 주머니에 흰 봉투를 찔러주고 돌아서는 굵은 주름이 그제야 가늘게 펴졌다.

 

물의 서사를 이을 우물이 메말라간다. 젊은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젖몸살도 옛말이 되어간다. 무너진 기와집은 쑥과 냉이에게 터를 내주었고 갈 곳 잃은 골목길은 퀭하니 웅크렸다. 마중물 덮어쓰던 작두샘 자루에 시뻘건 녹만 더께를 더한다. 바람결에 오래된 우물이 묻는 듯하다. 언제든지 손잡이만 돌리면 맑은 물 쏟아지는 수도꼭지 세상은 막힘없이 흐르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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