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 최윤정
나는 형제가 없다. 간혹 동네 아이들과 다툼이 있을 때는 쪼르르 달려가 일러줄 오빠나 언니가 없어 아쉽기도 했지만 대체로 나는 조용한 아이였으므로 괜찮았다.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집에서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이사를 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누구를 사귈 틈이 없었다.
나미의 ‘빙글빙글’을 즐겨 부르던 8살의 나는 거울 앞에서 혼자 춤을 추거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최신 트로트를 목청껏 불러제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부모님이 사 주신 위인전집이나 동화책은 내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서 턱없이 얇았다. 혼자 노는 것이 지겨워지면 엄마가 급히 나가느라 미처 못 한 설거지를 하거나 걸레로 방을 닦기도 했다.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다 하고서도 창밖이 어두워지지 않았을 때는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다.
안테나가 시원찮아서 KBS1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나오는 채널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붕에 메달아 놓은 안테나를 장대로 툭툭 쳐 보기도 했는데 별 소용이 없는 적이 많았다. 그래도 뉴스나 국악 하는 할아버지를 보는 것보단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려도 다른 채널을 보는 것이 더 나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만화를 할 시간이 되어 텔레비전을 켜 놓고 이불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빨강머리의 못생긴 여자아이가 벚꽃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터널 안에서 양팔을 뻗고 빙글빙글 도는 장면이 나왔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만화 주제가가 나왔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다고 했다. 가슴엔 아름다운 꿈도 솟아나고 뭉게구름도 피어난다고 했다. 잿빛 원피스를 입은 그 여자아이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고아인 그 아이의 이름은 앤 셜리였다. 앤은 일손이 필요한 시골의 한 집으로 입양이 되었는데 남자아이를 원했던 그 집에서 앤을 처음 보고선 난색을 표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하는 엄마가 나를 낳고선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나 아버지의 집안 어른들의 표정도 저랬을까? 궁금해졌다. 앤은 나처럼 빨래도 하고 요리도 했다. 건초더미를 나르던 앤처럼 나도 가끔 부모님이 일하던 벽돌공장까지 나가 삽질을 해 보거나 볕에 단단하게 말리던 벽돌에 호수로 물을 주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공상을 잘하던 앤은 나처럼 수다쟁이이기도 했다. 나는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시던 부모님 옆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라디오에서 들었던 사연 이야기, 책에서 읽은 이야기까지 아버지가 “이제 고마 자자”라고 할 때까지 내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나선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 술에 취한 아버지가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목석 같아서 키우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내가 예전에 얼마나 수다스럽고 애교를 잘 피웠던가를 다 잊고서 하는 말이었다.
엉뚱한 생각에 빠지거나 덜렁거리다가 사고를 치는 앤처럼 나도 종종 그럴 때가 있었다. 너무 많이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이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촌스러운 옷을 고쳐준다며 단벌 외출복의 어깨를 뜯어놓는가 하면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요리를 만든다고 설치다가 냄비를 홀라당 태워 먹기도 했다. 엄마가 없어진 냄비를 찾아 부엌 찬장을 죄다 뒤집어엎을 때도 나는 그 냄비가 집 뒷마당에 묻혀 있음을 말하지 않았다.
앤은 자기가 원하던 어깨가 봉긋한 핑크빛 드레스를 입지는 못했지만, 항상 밝은 아이였다. 언제나 솔직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단칸방에서 홀로 무서움을 잊으려 텔레비전에 의지하던 한 어린 여자아이에게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내가 아직도 쓸데없는 공상에 빠지는 일이 잦고 엉뚱한 말로 식구들을 웃기게 하는 것은 다 어릴 적 내 단짝 친구의 영향일 터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만화영화를 보지 않는 나이가 될 때까지 시골소녀 폴리아나와 나디아, 소공녀 세라도 사귀었다. 모래요정 바람돌이와 캡틴 플래닛도 만났다. 폴리아나는 어려서 대화가 잘 안되었고 세라는 마지막까지 슬프기 만한 아이여서 가슴이 아팠다. 지구를 구해야 하는 나디아와 캡틴 플래닛은 너무 바빴고 바람돌이는 한 번도 내 소원은 들어주질 않아서 믿음이 가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앤이 가장 좋았다.
요즘 방학을 맞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아이가 만화영화를 보고 있다. 청개구리 같은 짓만 골라 하는 짱구가 내 아이와 친해지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리모컨을 쥐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지만 마땅한 게 없다. 살인 사건을 쫓느라 애어른이 다 된 명탐정 코난도 맘에 들지 않는다. 문득 내가 일 때문에 외출한 사이 집에 있는 아이가 괜찮은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 인터넷, 게임, 영화……. 내가 자랄 때보다 놀 거리가 많아지긴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나를 대신해 아이를 보듬어 줄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현관을 나서는 내 마음을 자꾸만 붙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