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채운 영혼, 캐노시스

 

                                                                                                                                                                                                                                                                      배 헬레나

 

오늘은 20여 년 전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그즈음 나는 성 프란치스 성인의 영성에 심취하여 '재속 프란치스코회 (Secular Franciscan Order)'에 가입되어 있었다. 평신도로서 성인의 영성을 본받아 세상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임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 일요일, 미사를 마친  후,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을 위한 특별 피정이 열린다는 소식에, 별 기대 없이 자리에 남았다.  

 

당시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 정도로 보이던  민성기 신부님은, 훤칠한 큰 키에 깨끗하고 이지적인 용모를 지니신 분이었다. 안경 너머의 지적인 눈매와 약간 곱슬진 머리, 그리고  갈색 프란치스칸 제복이 참 잘 어울렸다.  우리는  다함께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의 기도’를 바치고 ‘태양의 노래(The Canticle of the Sun)’를 부른 뒤 신부님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

주님,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명을 실행하도록 

저에게 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벽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깨달음을 주소서. 

처음에는 무심히 앉아 있었으나,  강의가 전개될수록  신부님의  권위있고, 확신에 찬 어조에 점차 매료되어 갔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듯했다. 사막의 낙타처럼 고되고 목말랐던 나의 영혼에,  그 강의는 시원한 냉수 한 사발 같았고, 나는 어느덧  환상적인 시공간에 초대되어 있었다. 

세세한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신부님은 태초의  근원적인  모습부터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회개를 통한 ‘정화’,  빛을 받는 ‘조명’, 그리고 마침내 신과 하나 되는  ‘일치’의 과정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심도 있게  피력하셨다.  그때 처음 ‘캐노시스(Kenosis)라는 단어를 접했다.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비워내고  신적 의지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를 뜻하는 신학 용어였다. 

그분의  해박한 신학적 지식과 예술 작품에 대한  견해, 수많은 여행담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메마른 이민 생활을 하던 내게 커다란  위로와 지적 자극이 되었다. 당시  나는  직장과 가사, 아이들 뒷바라지에 쫓기던  ‘젊은 엄마’였기에  개인적인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고갈된 상태였다. 그런 내게, 신부님의 강론은 잊고 지냈던, 철학적, 영적 그리고 예술적 사유의 세계를 다시 열어주었다. 

강론이  끝났을 때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과 감동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그날 나는 신부님이 쓰신 문고판 책 네 권을 샀다. 참으로 아름다운 책들이었다.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 책들을 볼 때마다, 그날 그 강의를  경청할 수 있게 해준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엄마가 아닌, 전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생긴  중년이 되었다. 문득 그날의 감동이 떠올라 신부님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더  훌륭한 책들을 많이 쓰셨으리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뜻밖에도 마주한 것은 그분의 부고 기사였다. 사진 속 신부님은  예전보다 수척해 보였으나  신앙은 더욱 깊고  확고해 보였다. 너무 서운하고 믿기지 않았다.  그 정열적인 강론과 예지 넘치는  글들을 더는 접할 수 없다니.

다행히 누군가 신부님의  생전 글과 강의를  모아둔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동안 출간된 <하늘로부터 키 재기>, <일상의 신화를 찾아서>와 같은 묵상 여행집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살피는 혜안을 가진 그분의 마음은  죽음을 넘어 여전히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날마다 아름다움과 함께 걸어가고 있으며, 모든 치유 작업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라던 말씀, 그리고 “우리가 죄안에서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것처럼,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은총 안에서 우리와 화해시킨다 “ 던  그 주옥같은  명언들을 소중히 되새겨 본다.  

 가난한 프란시스칸으로서, 진정한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했던 분,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삶을 사셨던 그분을,  오늘 고요히 회상해 본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마태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