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을 낀 길로 접어든다. 산길로 통하는 골목이다. 오늘따라 한적한 길보다는 수척한 등에 더 눈길이 쏠린다. 늦가을, 담쟁이 줄기들이 담벼락에 앙상하게 말라붙어 있다. 한철 무성하던 담쟁이 잎들은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고 담벼락의 등엔 찬바람만 스산하게 스친다. 푸른 추억을 되작이며 함묵하고 있는 걸까. 담벼락은 잎들을 제 등 너머로 보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는지 몸 푼 산모처럼 할끔하다.
담쟁이 어린잎들이 처음 고개 들어 올려다보았을 때 담벼락은 절벽이었겠지. 그런 잎들에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벽은 돌아섰을 테고, 그리고 스스로 등背이 돼 거칠어졌으리라. 제 등이 거칠어질수록 어린잎들이 타고 오르기 쉬웠을 테니까. 그래도 잎들은 어찌 절벽 같은 등을 타고 오를 엄두를 낼 수 있었으랴. 벽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겠지. 저 거친 등이 아니었던들 담쟁이 잎들은 담장 너머를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는가.
하여 담쟁이 잎들은 제힘으로 벽을 기어올랐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애오라지 자신들을 키운 것은 거친 저 등이라는 것을, 등을 흔쾌히 내어주었기에 벽을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오르다 힘에 부쳐 쩔쩔맬 때는 등불을 켜들고 손뼉을 치며 다독이던 담벼락의 다순 손길과 눈길을 망각하지 않는다.
이럴진대 유정한 인간임에랴.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가를 걷다 만난 그 등이 아직도 눈에 솜솜하다. 신축 중인 공사장 앞, 서너 명의 일꾼들이 골조만 세운 계단 밑에서 새참을 먹는 중이었다. 먹을거리라야 김치와 두부 몇 모에 막걸리 서너 병이 전부였다. 쭈그려 앉은 한 뒷모습, 길가를 등진 늙수그레한 사내의 구부정한 등이 유독 눈에 파고들었다.
숭숭 구멍이 나고 구중중한 러닝셔츠 사이로 등이 보였다. 검붉게 탄 거친 등이 그 구멍 사이로 드러난 것이었다. 저 등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질통을 짊어지고 휘청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렸을까. 그래도 등은 그에게 곤고한 생을 떠받드는 유일한 도구였으리라. 누구를 위하여 저 등은 무량한 짐을 져야 했을까. 등판에 낙인처럼 찍힌 질통의 어깨끈 자국, 그래도 등은 그에게 결곡한 생의 지렛대였으리라. 그동안 등 앞쪽 가슴에는 어떤 생각들이 헤집고 스쳐 지나갔을까. 어쩌면 등이 이편저편 모두 쓰리고 뜨겁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저 등을 밟고 오른 이들은 등 너머에 있는 밝은 세상을 만났을까. 좀체 발길을 뗄 수도 눈길을 거둘 수도 없었다.
골목을 벗어나 산비탈을 오르며 담벼락과 그 사내의 등이 갈마든다. 그 살피로 아버지의 등이 파고든다. 아버지의 등에 업혀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유년 적, 동무들과 돌팔매질을 하며 놀다가 그만 동무가 던진 돌멩이에 맞고 말았다. 이마가 터져 피가 흐르는데 어찌 알고 달려온 아버지는 동네를 급히 나섰다. 아버지는 피를 흘리는 자식을 등에 둘러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읍내 병원을 향해 뛰고 뛰었다. 다행히 상처는 눈을 피해 큰 화는 면했지만 마냥 피를 흘렸다면, 바늘로 꿰매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마에 큰 상처를 지닌 채 살았을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마에 난 희미한 상처를 볼 때마다 달리며 몰아쉬던 아버지의 숨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아니 그보다 더 뜨겁던 아버지의 등이 생각나 그곳에 맞닿았던 가슴이 이내 더워 온다. 그날, 아버지는 어린 자식의 몸뚬이뿐만 아니라 푸른 꿈까지도 짊어지고 한껏 뛰었으리라.
이젠 그 아버지의 등을 볼 수가 없다. 그래, 그렇다. 등은 흔히 눈에 띄지도 않고, 쉽사리 바라볼 수가 없으며, 언젠가는 사라진다. 얼굴처럼 매만질 수도 가꿀 수도 없어 내버려두다시피 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잊히기 쉽고 푸대접 받기 일쑤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이 주변의 방패막이가 되고, 제 뼈를 감싸며 요긴하게 버팀목 구실을 한다. 눈길을 받지 못해도 제 소임을 톡톡히 하는 곳이 등이지 않은가.
산마루를 향해 오른다. 산 또한 돌아서서 묵묵히 등을 내주었기에 기꺼이 오르고 있다. 깎이고 파인 산의 거친 등이지만 제 소임을 톡톡히 하고 있다. 넘어지거나 무릎이 꺾이지 않도록 발목을 받치고 붙들어 준다. 담벼락과 산, 사내와 아버지의 등은 같은 이름이다. 마땅히 경배해야 할 숭고한 이름이 아닌가.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발길을 멈춘다. 저 편에 서 있는 어린 굴참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시 눈길을 돌려 올라온 길을 바라보니 이제야 비로소 보인다. 앳된 굴참나무에 버팀목이 되어준 거친 등이 도렷하게 보인다. 한데 웬일인가. 산의 등을 오르는데 내 등이 새삼 따가워지니 말이다. 시방 나는 어느 누구에게 어떤 등이 되어주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