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의 노인에게서는 퀴퀴한 썩는 냄새가 난다. 냄새에 한 방 얻어맞은 듯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냄새로 자리를 독차지한 노인은 스컹크였는지도 모른다.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하철 노인석을 독차지한 천하태평은 그지없이 편안해 보인다. 자리를 피하는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까. 험한 냄새를 풍길만한 차림은 물론 아니다. 속 다르고 겉 다르다더니 그 노인의 경우가 하필이면 그랬다.
트림을 하는 냄새와는 전혀 다르다. 좀 복잡한 냄새라며 냄새를 어림짐작으로 분석하기로 한다.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냄새는 몸의 구조처럼 다양한 데가 있지 않겠느냐.
아침에 먹은 김치와 그 김치가 된장국물과 섞여 나오는 냄새는 어떤 것일까. 반주로 들이킨 시큼한 막걸리와 속옷에 갈겼을지도 모르는 지린내. 복잡하다. 머리에서 듬성듬성 떨어지는 비듬과 입김에서 새어 나오는 입내와 콧수염 틈새로 뿜어대는 공기는 좌석 주위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 같다. 신발 속에 감추고 있는 양말 썩는 냄새가 난다. 냄새를 모르고 노인의 옆자리에 앉으려던 사람이 노인을 힐끗 보더니 자리를 피한다.
냄새는 어쩌면 그도 모르게 쏟아내는 몸의 냄새 아니겠나. 노인을 보고 있는 내 몸에서 나오는 냄새가 노인에게서 반사되어 내 후각을 때리는 것인지도 혹 모른다. 그렇게 보면 내가 노인이 앉았던 자리를 피한 것이 아니라 노인이 나를 피한 셈이다. 그걸 깨달아야 했었는데 무례하게도 일방적으로 노인에게서 나오는 냄새에 마음으로 코를 된통 막는다.
세상에는 권력이면 권력, 돈이면 돈이라는 냄새도 있다. 권력자가 어쩌다 하는 짓이란 주위를 달달 볶아 못살게 군다. 아랫사람은 진작 볶이는 뜨거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눈치 빠른 처신을 한다. 돈이며 권력이란 시쳇말로 돌고 도는 것이다. 그 도는 방향을 잘못 짚어 인 마이 포겟in my pocket으로 삼을 경우 자칫 사달이 난다. 어쩌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우물을 흐리게 하는 세상이다. 돈을 차지하고자 권력 냄새에 눈이 멀어 순조롭게 잘 나가던 자리마저 박탈당한다. 싸늘한 쇠고랑을 찬다.
내 몸의 냄새를 맡은 아내는 남들 앞에 나설 때의 주의사항을 조목조목 어린애에게 하듯 타이른다. 샤워는 아침마다 할 것, 식사 뒤에는 양치질을 철저히 할 것, 옷은 남 보기에 흉하지 않게 깨끗이 갈아입을 것, 입내를 방지할 수 있는 껌이나 구취방지제를 사용할 것을 타이른다. 그런데 나는 게으르다. 특히 아침마다 샤워를 한다는 것도 성가신 일이다.
남을 편안하게 하려면 나 자신부터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쯤은 달달 외우듯이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하철 객실 안에서 거울을 보면서 얼굴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을 자주 볼 수 있다. 대단한 부지런함이다.
냄새는 좌석을 독차지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권력이든 뭐든 좌석을 독차지하는 냄새는 독재 군주나 다름없는 배짱이다. 노인은 냄새라는 배짱으로 느긋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독재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몸의 냄새를 본인은 미처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느 피의자는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여 죄의 냄새에서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는 말도 들렸다. 냄새가 구세주다.
내 글에서 이런저런 독특한 냄새를 혹 지닐 수 있다면 하고 나는 바란다. 냄새는 개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글의 밑바닥에 킁킁 코를 박는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난감하다. 독특한 개성이 없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나는 남의 글에 몸을 기대고 있지 않는가. 지금까지 나는 홀로서기가 아닌 기대서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남들이 이쪽으로 가면 이쪽, 저쪽으로 가면 저쪽으로 쏠리는 글쓰기는 하나 마나 한 노릇이다. 내 깃발이 없다는 것은 내 글의 영토가 없다는 뜻이다.
작품에서만은 적어도 내 영토를 지켜 발전하고자 하는 것이 글 쓰는 자의 희망이며 욕구다. 그런데 나는 독자의 눈치를 보고 그 구미에 알맞은 글쓰기를 하고자 했다. 이렇게 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없지는 않다. 독자가 없는 글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등의 말이 귀에 꽂힐 때 어떻게든 독자의 입맛에 맞는 글쓰기 방향으로 머리를 굴렀지 싶다.
그런데 떠오르는 것이 있다. 독자에 끌려가기보다는 독자를 내 편으로 끌어오는 글쓰기가 참다운 글쓰기 아니겠느냐는 생각이다.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그런 면이지 싶다. 인기는 우연히 풍기는 글의 냄새에서 온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낙엽 더미를 밟으며 산을 탄 적이 있다.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없는 은근한 냄새가 낙엽 더미에서 올라왔다. 썩어가는 냄새 같다. 고개를 드니 키가 훤칠한 상수리나무가 하늘을 향하여 서 있다. 가진 것을 다 내려놓은 서늘한 몸을 눈으로 어루만졌다.
글은 이렇게 썩어야 하느니라. 정곡을 찌르는 듯한 상수리나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