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의 세월 / 목성균

 

 

여름이 다 간 어느 날 동생들이 어머니를 뵈러 왔다. 어머니를 모시고 달빛이 교교(皎皎)한 베란다에 둘러앉아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그날 밤도 오늘 밤처럼 달이 째지게 밝았다.

오랜만에 아버지가 읍내서 집에 돌아오셨다. 빈손으로 집에 들어오시기가 미안하셨던 것일까. 웬 돼지다리를 하나 들고 오셨다. 앞다리인지 돼지다리가 작았다. 어머니와 우리 삼 남매가 툇마루의 철렁한 달빛 아래 삶은 돼지 다리가 담긴 함지박을 놓고 둘러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들고 오신 돼지다리를 삶아다 놓고 야행성 맹금류처럼 뜯어먹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뜯어 놓는 고기 첨을 삼 남매는 정신없이 주워먹고 있었다.

그 때 안방에서 할머니가 담뱃대로 놋재떨이를 탕탕 치며 역정을 내셨다. 깜박 드신 잠이 우리들의 돼지다리 뜯어먹는 기척에 깨신 것이다.

못된 것들-, 사랑에 애비도 깨워서 같이 먹으면 조왕신(竈王神)이 덧난다더냐-.”

할머니의 역정은 당연하신 것이었다. 집안 어른과 대주를 제쳐두고 제 새끼만, 밤중에 어미 소쩍새가 새끼 먹이 물어다 먹이듯 하는 꼴이 못마땅하셨던 것이다. 콩 한 알도 나누어 먹는 가족애가 각별히 요구되던 전후의 궁핍한 시대였다. 아버지나 노모(老母)가 계신 집에 오랜만에 들어오면서 들고 온 돼지다리 아닌가. 할머니는 며느리의 소행이 괘씸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의 역정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데 오불관언(吾不關焉)이셨다.

애비는 읍내서 배가 터지게 먹을 텐데 무슨 걱정이셔요. 안 주무시면 어머님이나 나와 잡수셔요.”

안 먹어. 느덜이나 배 터지게 먹어-.”

어머니는 할머니의 역정에 개의치 않고 어미 소쩍새처럼 꾸준히 삶은 돼지다리를 뜯어서 우리에게 먹이고 당신도 잡수셨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역정 소리를 듣고 돼지고기 맛을 잃고 말았다. 금방 바깥사랑 방문이 벌컥 열리고 아버지가 노기충천해서 달려 나오실 것만 같아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미 깊은 잠에 들어 계신 듯싶었다.

내가 그날 밤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쇠잔한 웃음소리를 내시며

난 몰라 생각 않나-.”

하신다. 그날 밤 자리에 안 계시듯 오늘 밤도 어버지는 자리에 안 계신다. 아버지는 고향 선산발치에 마련해 드린 유택에 홀로 그날 밤처럼 달빛을 덮고 깊이 잠들어 계신다. 아버지도 이 자리에 앉아 계셨으면 싶다. 그리고 부부간에 맺힌 미움의 매듭이 자식들과 더불어 오순도순 풀어 보았으면 싶다.

모성애는 어머니나 할머니나 다 가지고 있다. 사람이면 다 가지고 있다. 사람뿐이랴. 금수(禽獸)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모성애는 유별났다. 어머니의 남다른 모성애는 퇴화된 부부애에 대한 손실보상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날 밤 시어머니의 모성애를 어머니가 읍내서 배가 터지게 먹는다며 일축해 버린 것은, 어머니의 강렬한 모성애가 고의적으로 저지른 일종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도셨다. 그 원인이 나변(那邊)에 있다느니 하며 자식이 분석을 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짓이므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이따금 아버지가 귀가를 하시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란을 일으키셨다. 나는 철이 빤한 시절 전운(戰雲)이 감도는 가정에서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다. 수시로 밥상이 어머니의 치마폭으로 날아왔다. 그 한판 접전은 어머니의 선공으로 시작되어 아버지의 막강한 전세(戰勢)에 짓밟히고 말았다. 일방적으로 당하신 어머니는 한나절쯤 낭자한 곡성으로 지내신 연후, 이제 속이 좀 트인다며 다음 공격 채비를 하시듯 털고 일어 나셨다.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아버지는 읍내로 나가시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읍내에서 또 무슨 행실을 하나 싶어 미움을 키우셨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면 부부싸움이 촉발되고, 악순환의 세월이었다. 그만치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악성종양처럼 자랐다. 어머니의 미움은 비단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남자에게 적용되었다. 어머니는 구십객이신 지금도 아파트단지 여자경로당에 나가셨다가 남자 노인네들이 기웃거리면 사내들 꼴 보기 싫다며 집으로 돌아오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 여자의 감수성을 상실한 세월의 덧없음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신 남자는 내 증조부와 단신의 아들들뿐이다. 증조부를 좋아하시는 이유는 새 새댁 때, 그 어른을 따라서 첫애를 업고 근친을 가셨기 때문이다. 지름고개를 넘어서, 유주막 거리를 지나서, 노루목 강벼루를 돌아서, 가주나루를 건너서 온종일 충주길 칠십 리를 저만치 가을 햇볕 속으로 구름처럼 휘적휘적 가시는 시조부의 뒤를 따라가셨다. 가다가 고갯마루에서 쉬고, 동구나무 아래서도 쉬고, 나루터에서도 쉬었는데 그 때마다 증조부께서 괴나리봇짐에서 절편과 갱엿을 꺼내 주며 아가, 다리 아프지-?” 하고 다감하게 물으시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증조부의 그 우렁우렁하신 목소리를 못 잊어 하신다. 가끔 그 이야기를 하실 때의 어머니의 표정은 아득하셨다. 어머니는 증조부를 시조부로 그리워하시는 것이 아니고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기리신 듯하다. 아버지가 시조부만 같았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披瀝)하신 것이리라 우리 형제를 좋아하시는 것은 물론 맹목적인 자식사랑일 뿐이고…….

글세, 부싯돌만한 신랑이 가마 휘장을 들치시더니 얼굴을 들이밀고 가마멀미가 얼마나 심하냐고 묻더라니까. 하도 같잖아서.”

고갯마루에 신행 가마가 멈추었을 때 열다섯 먹은 신랑이 열일곱 먹은 신부에게 신행길의 노고를 치하하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씀을 베 매면서 동네 여자들에게 했다. 동네 여자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좋았겠다고 부러워하면 일언지하에 못된 싹수를 비벼 밟듯 잘라 말하셨다.

좋기는 머시 좋아-. 열다섯 먹은 게 뭘 안다고 기방출입깨나 한 한령처럼 수작을 하드라니까. 내가 그 때 벌써 싹수를 알아봤어-.”

당연히 어머니의 소중한 평생 추억으로 남을 어린 신랑의 애틋한 모습이 혐오의 모습으로 변질된 경위는, 아버지의 부부금실에 대한 관리 부족이다. 물론 포괄적인 말이다. 어머니의 말처럼 계집질이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확증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어머니에 대한 불효일까. 양대(兩大) 세력의 틈바구니에 낀 자식의 처지도 불행이다.

된서리 내린 밤처럼 실고 어둡던 어머니의 얼굴, 그 때 어머니는 서릿발처럼 기가 살아 계셨다. 남자의 독선에 항거하시던 독립투사 같은 얼굴이었다. 키 백오십 센티미터 남짓, 체중 사십오 킬로그램 남짓-, 그 작은 여인이 발산하는 미움이 베 매는 봄 마당을 압도했다.

달 밝은 툇마루에서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그랬듯이 나는 달 밝은 베란다에서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어머니 입에 넣어 드렸다. 돌이킬 수 없이 사그라진 잿불 같은 여자의 세월을 만들어 준 남편의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처럼 정중하게-. 그러나 어머니는 별 맛 없다고 하셨다. 그 말이 허무하고 슬프게 들렸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존경은 한다. 작은 산읍의 온갖 일에 참섭(參涉)하신 향리(鄕里) 유지(有志)의 한평생, 고향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열정 없이는 그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또한 어머니의 애정 결핍을 매우기 위한 삶의 일환은 아니었을까? 자식이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아버지도 자식의 존경을 받으면 되었지 간지럽게 사랑까지 바라지는 않으실 것이다.

아버지 시신을 염습할 때, 염습사(殮襲士)가 맏상제인 내게 아버지 머리맡에 와서 시신이 움직이지 않게 얼굴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으라고 해서 그리했다. 두 손으로 싸잡은 차가운 두 볼의 피부가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평소 아버지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머니께 불같이 화를 내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무서워서 운, 유년의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지척에서 자세히 내려다본 아버지의 얼굴은 한없이 평안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살아서 무섭던 얼굴이 둑어서 이렇게 평안하다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삶이란 업보를 치르는 것인가. 연민의 눈물이 차가운 아버지의 미간에 떨어졌다. 그 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조만간 어머니도 돌아가실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의 얼굴도 미움을 다 지우고 아버지처럼 평안하실까. 아버지와 어머니 한 평생 도대체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

어머니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몇 첨 잡수시더니 머리를 저으신다. 오십여 년 전 그 밤, 달빛 아래서 맹금류같이 삶은 돼지고기를 뜯어서 우리에게 먹이며 잘도 잡숫던 어머니의 왕성한 식욕, 이제 없다. 그럼 어머니의 미움도 없어지신 것일까. 두둥실 맑은 달이 베란다에 앉아 있는 구십 노인의 애잔한 얼굴에 남은 미움의 세월을 지우려는 듯 째지게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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