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곤충기 / 배혜숙

 

 

'반짝'하고 빛이 났다. 그녀가 떨어진 볼펜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다. 블라우스가 쏠리면서 드러난 어깨에 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그것도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것이었다.

"반딧불이 아닌가요"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뽀얀 어깨살에 내려앉은 놈은 얼마 전 저녁 시간에 신불산을 내려오다 본, 수풀 군데군데서 황록색 빛을 내던 반딧불이 같았다.

'비-단-벌-레-입니다"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고 마치 노래하듯 말했다. 비단벌레의 화려한 날개 딱지를 본 적이 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꽃도 아니고 벌레를 앉힌 그녀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느라 조금 긴장이 되었다. 첫눈에 심상찮은 기운을 뿜어내던 몸짓이 비단벌레 때문이었던가. 머릿속이 뒤엉켰다.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잡지나 사보에 글을 싣는 그녀가 여러 차례 연락을 해왔다. 생면부지인 나를 인터뷰하고 싶어 했다. 나 같은 사람을 취재해서 뭐하냐고 매번 거절했다. 그날은 얼굴도 볼 겸 함께 차를 마시는 게 어떻겠냐고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물기가 스민 듯 나긋나긋하여 그러마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매끄러운 어깨 위에 숨죽이고 있던 비단벌레를 보고 말았다. 눈길이 자꾸 그녀의 왼쪽 어깨로 향했다. 비밀스러운 곳을 훔쳐보는 것이 멋쩍어 어색하게 웃었다.

"안 보이는 곳에 수컷 한 마리가 더 있어요"

침묵을 깨고 낭랑하게 말했다. 좀 더 은밀한 곳에 있을 비단벌레를 상상하며 눈빛이 흔들리자 내 귀에 뽀얀 얼굴을 가까이 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엉덩이예요"

아,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비단벌레 암수 한 쌍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마음먹은 사람이 끌려온다고. 즉 사랑의 묘약이라는 뜻이다. 깊은 눈을 가진 이 여인은 벌레 한 쌍을 몸에 아로새긴 채 누굴 그토록 기다리는 것일까. 보일락 말락 녹색의 빛을 내는 한 마리와 저 아래쪽에서 언제든 어깨까지 날아오를 준비가 된 수놈은 그녀에게 어떤 꿈을 품게 한 것일까.

그녀는 곤충학자가 꿈이었단다. 지금도 '파브르 곤충기' 10권을 옆에 두고 닳도록 들여다본다며 얼굴이 상기되었다. 대학 때는 논문을 쓰기 위해 비단벌레를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단다. 태양 빛이 댕글댕글한 한낮에 비행하는 비단벌레를 쫓아다니느라 까맣게 그은 피부가 가시지 않는다며 팔을 쑥 내밀어 보였다. 그런데 그 팔은 뽀얗고 탱탱했다.

곤충기를 시 낭송하듯 줄줄 외는 그녀가 파브르 같았다. 황혼기의 파브르는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시인처럼 곤충을 표현했으니까. 쇠똥구리에서부터 매미와 개미, 사마귀와 여치, 벌과 나비, 전갈과 송충이, 장수풍뎅이와 딱정벌레까지. 나는 수십 편의 벌레에 관한 시를 들었다. 그녀가 관장하는 곤충의 세계에 점점 발이 빠지는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내 몸이 곤충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비단벌레라면 나도 마음에 품고 산 적이 있다.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를 보았을 때다. 2011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딱 3일을 공개한 적이 있다. 1975년 출토된 이래 36년 만의 외출이었다. 부식이나 훼손이 염려되어 바깥세상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영롱한 녹색의 빛을 내는 비단벌레 날개를 촘촘하게 붙인 장식 마구의 광채는 나를 홀렸다. 그 황홀함을 놓칠 수 없었다. 혼자 보기가 아까워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3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박물관으로 찾아갔다.

그녀 또한 그 보물을 닳도록 보았다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라면 더더욱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뜨거운 동지애를 느낀다며 삼국시대 여인이 입었다는 비단벌레 치마를 보여주었다. 황금색과 짙은 녹색이 교묘히 빛나는 비단벌레 날개를 엮어 옷감에 무늬를 놓아 만든 치마였다.

1500년 만에 재현이 된 그 옷은 그녀의 스마트 폰 속에서 유달리 맑은 빛을 내고 있었다. 언젠가 그런 옷 한 벌을 꼭 지어 입고 싶다고 했다. 치마에 올릴 밑그림을 저장된 파일에서 불러내 보여주었다. 곤충채집하는 도구도 새로 구입했다며 들떠 있었다. 하지만 비단벌레는 멸종위기에 처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며 그 안타까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채집이 안 되면 사육이라도 할 기세였다.

차를 한 잔 마시러 나갔다가 그녀와 밥을 같이 먹고 바닷가를 걸었다. 물론 진한 에스프레소도 나누어 마셨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질문에 주저 없이 답을 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노라며 완강하게 거절했던 내 말은 진심이 아닌 것이 되어버려 당황스러웠다. 그녀 앞에서 주절주절 헛말을 쏟아놓고 말았다. 뒤태가 고운 그녀가 엉덩이에 수놈 한 마리가 더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차만 마시고 헤어졌을 것이다. 술을 곁들여 생선회를 먹고 파브르 곤충기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초승달이 떠오르고 한참 지나서야 우린 헤어졌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예닐곱 걸음을 떼었을까?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비쩍 마른 내 발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 반딧불이 한 마리 새길래요? 꽁지에 불도 지필 수 있어요"

자칫 그러마고 대답할 뻔했다. 우리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생기는 바람에 그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볼 수 없어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돌아서 얼른 걸음을 뗐다. 그리고 보폭을 크게 했다.

젊은 그녀는 모른다. 애써 바늘로 찌르고 색을 넣지 않아도 내 몸 여기저기 크고 작은 벌레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모서리에 부딪혀 다리에 난 상처가 아물면서 동그랗게 얼룩이 생기더니 점점 색이 진하게 변해 무당벌레 색깔이 되었다. 치마를 입을 때는 신경이 쓰인다. 얼굴의 눈썹 가장자리에 제법 큰 점이 생겼다. 그 부분만 진하게 메이크업을 해서 가리고 있지만 부위가 점점 넓어져 이제 개똥벌레 크기만 하다.

쭈글쭈글한 손 등에는 거뭇거뭇 검버섯이 자리를 잡았다. 빛을 내지 않는 것이 그녀와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 암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절실한 그리움도 기다릴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온몸으로 곤충기를 쓰고 있지만 물기 빠진 내 몸은 크고 작은 벌레들이 어지럽게 달라붙어 스멀거림이 느껴진다.

부산스럽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과 함께 생기가 넘치는 그녀와의 하루는 솔직히 불편했다. 잠깐의 꿈을 꾼 듯 현실 저편이었다. 젊음에 대한 약간의 시기심이 작용했다. 비단벌레의 날개를 엮어 옷을 해 입고 싶어 채집망까지 장만한 그녀는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것 같아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꽁지에 불을 붙인 개똥벌레 한 마리가 되어 그녀의 손 등에 찰싹 내려앉는 꿈이었다. 생시처럼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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