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敍事에 대한 서사 / 현정원

 

 

소설을 읽다 움찔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다섯 권 중, 마수걸이로 뽑아 든 『칼의 노래』를 읽다 심쿵한 거다. 소설 속 포로들은 시신을 옮기며 울었다. 늙은 포로도 울었고 젊은 포로도 울었다. 주려서 퀭한 두 눈에 눈물을 고이고 메마른 소리로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서술자, 이순신 장군은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개울물을 퍼 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군의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라는 말은 상대를 인격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닌, 한 덩어리의 적으로만 보겠다는 다짐이겠다. 그들을 살아 온 내력과 현재의 사정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뭉뚱그린 한 단어 ‘적’으로만 여기겠다는 결심이겠다. 문득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말이 머리를 스친다. 개별성을 언어로 표현한 게 서사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한 소설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 내면서다.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소설가의 집에 사달이 일어났다. 사기를 당해 가족이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된 것. 어쩔 방법을 구하지 못해 한탄과 원망으로 밤을 지새우는 부모님 옆에서 어린 소설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결론은 집주인에게 피치 못할 사정을 알리는 것.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설가는 편지를 썼다. 집에 들이닥친 곤란을 정중하지만 간곡하게 나열하고 나름의 약속과 각오를 덧붙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집주인의 마음이 움직인 것. 그 일을 통해 소설가는 깨달았다, 글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글은 은혜를 구하는 도구였다. 때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작가 지망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비슷한 일은 나에게도, 엄격히는 남편에게도 있었다. 젊어서의 일이다.

남편은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문부성 장학금 외에는 학문을 이어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언어능력 시험에서 탈락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낙담과 고민이 이어졌다. 결국 남편이 택한 건 편지. 희망하는 대학의 교수님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써 보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교수 추천 절차를 밟아보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나 극적으로 시작한 유학 생활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달리 일찍이 집에 나타난 남편의 손에는 편의점 봉지가 들려있었다. 남편이 비닐에서 맥주 캔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오늘은 너하고 의논할 게 있어. 너하고 나, 한배를 탔으니 내 맘대로 결정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실은 나 연구실에서 진퇴양난이야. 교수님이 주신 연구과제가 나하고는 아니,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 학위를 따봤자 앞길이 없다는 얘기이지. 해보고 싶은 테마가 있기는 해. 그걸 하려면 연구실을 옮겨야 하는 게 문제지만. 나를 불러준 교수님을 배반하고 말이야. 들어보니 일본에선 유학생은커녕 자기 나라 학생도 테마나 연구실을 바꾼 예가 없대. 아무래도 공부하는 거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그래 나도 알아.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 왔게. 아무 성과 없이 이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벌써 아찔하고 창피해.”

나는 말했다,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고 응원하겠다고.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그분의 조언을 들어보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남편은 이번에도 편지를 썼다. 언어도 언어지만 대면할 담력이 없어서였다. 내가 신께 간곡한 편지를 써 올린 건 당연지사. 결과는? 놀라웠다. 교수님은 그렇게 고민이 많았으면 진작 말했어야 했다며 원하는 연구실로 남편을 옮겨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우리나라 LCD 연구의 초창기 일원이 됐다.

이야기란 게, 개별성을 만드는 서사의 힘이, 이렇게나 세다. 그러니 장군이 스스로를 엄중히 경계할밖에.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말이 세간에 떠돌밖에. 하기는 문자가 없던 시대에조차 통하고 전해지던 서사가 아니던가, 입에서 입으로 또 바위를 새기는 손으로. 그런데 지금 머릿속을 지나가는 두 사람…?

신이 말씀으로 존재하던 시절을 돌이켜다, 악인의 서사 운운하다, 엉뚱한 의문을 떠올린다. 금지된 과일을 따 먹고 숨어있다 신 앞에 불려 나온 아담과 하와가 서사의 힘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어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판국에 몰린 그 두 사람이 아내 탓하고 뱀 탓하는 대신 예의 소설가처럼 혹은 남편처럼 그간의 사정과 자신의 한계를 신께 솔직담백 곡진히 말씀드렸다면 이후의 사정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며. 정직하고 정성스럽게가 어려우면 흥미진진 재미있게라도, 셰에라자드처럼?

엉뚱한 의문이 깽뚱한 생각으로 펄쩍 나아간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란 속담을 징검다리 삼아 모든 이야기란 게 결국은 나름의 핑계고 딱한 사정이고 그럴만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진 거다. 셰에라자드가 샤한샤 샤리아르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앞에서 말한 소설가나 남편의 이야기는 수필이지 않을까, 해가며….

고개를 저으며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소설 속 문장을 힘주어 다시 읽어본다. 개별성과 적의 개별성과 또 개별성…. 반복되는 개별성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오래전의 내 모습이다.

데스벨리,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그곳을 자동차로 달리다 길을 잃었다. 어둠은 점점 짙어지고 길은 확신이 서지 않고…. 캄캄하고 좁은 길을 지도에 의지해 불안불안 나아가다 한 모퉁이를 돌 때였다. 갑자기 환한 불빛이 나타났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그곳에 집들이 모여 있고 창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절로 탄성을 지를 정도로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나는 곧 아연했다. 캄캄한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아득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저 작은 별 하나하나가 실은 어마어마하게 큰 제각각의 하나라는 게 안심과 동시에 깨달아진 거였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나였다. 그러면서 전부인 나였다. 그리고 지구상에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전부인 각각의 내가 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당연한 일인데 그게 그 순간, 왜 그리도 낯설던지.

그런데 그때의 그 자각, 어디로 간 걸까? 장군은 다짐과 각오로 하는 일을 자연스레 잘도 하는 내가 아닌가 싶어서다. oo 난민입네 xx 범법자입네 ss 희생자입네 하며 사람들을 한 덩어리의 무언가로 퉁 치는 짓을….

한숨과 함께 책을 다잡는다. 이제 딴생각 아무 생각은 노우, 독서에만 집중할 참이다. 『칼의 노래』를 시작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다섯 권을 차례로 읽으며 서사의 반대쪽 힘이랄까, 쓰고 말하는 자가 아닌 듣고 읽는 자로서의 내가 변하기를 기대하면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전부인 개별자 각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아무것도 아니면서 전부인 개별자 내가 상상과 직관으로 화답하며, 간접 경험하며, 마음이 크고 넓고 깊어지기를, 성숙하기를, 바라는 거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변명에 동병상련하고 그럴만한 사정에 역지사지하며, 때로는 할 말 있는 로맨스에 이심전심하며 마음이 부드럽게 무두질 되기를….

그런데 내가 지금 적 앞에 선 군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그러니 거침없이 마음껏 개별성에 무너져 보자는, 생각도 딴생각일까?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