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 품은 툇마루 / 김순경

 

 

좁고 가파른 길이 산속을 파고든다. 어둠이 사라지자 치열하고 분주했던 숲속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하다. 촌부의 손등처럼 거친 껍질의 소나무들도 깊은 잠에 빠진 듯 서로 엉켜 있다. 산허리를 돌 때마다 마주치는 구불구불한 계곡길이 묵혀두었던 숲의 사연들을 토해낸다.

마지막 능선을 넘어서자 멀리 기와지붕 용마루가 나타난다. 산줄기가 감싸고 있는 양지바른 곳이라 온종일 햇살이 머무는 아늑한 지형이다. 큰 절이 있었던 넓은 빈터에는 기와집 몇 채만 흩어져 있고, 작은 연지에는 누렇게 말라버린 연꽃 줄기들이 화려했던 지난여름을 말하는 듯 얼음을 뚫고 솟아있다. 개목사開目寺를 제대로 찾아왔다.

원래는 흥국사였다. 통일신라 초기에 세워진 절이다. 의상대사가 신통한 묘술로 99일 동안 아흔아홉 칸의 거대한 절을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보물 242호로 지정된 온통 전만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개목사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절을 짓자 당시 안동 지역에 많았던 소경이 없어져 개목사로 바꾸었다는 설과 조선 초기 안동부사로 부임한 맹사성이 더 이상 소경이 생기지 않도록 이름을 바꿨다는 설이 있다.

일주문도 해탈문도 없다. 건물 배치도 형식을 건너뛴다. 엄숙한 대웅전이나 잡귀를 쫓는 사천왕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석탑이나 석등도 하나 없다. 넓지 않은 마당 안에 맞배지붕의 아담한 원통전만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서원이나 제실처럼 낡은 툇마루가 친숙하고 편안함을 더해준다. 법당에는 옆문이 없다. 툇마루를 거쳐 앞문을 열고 들어간다. 마당에 들어서면 종일 방을 지키는 할머니의 살가운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안방 같은 법당의 온기가 마루로 전해진다.

툇마루에 앉았다. 좁고 낮은 법당 마루에 앉으니 바람이 멎는다. 절을 찾는 수많은 사람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두가 가져온 번민과 고뇌를 내려놓고 가려 했을 것이다. 햇살이 두터워지자 법당 앞 향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향불이 영혼을 연결하는 사다리라면 새들은 불음을 전하는 전도사가 아닌가 싶다.

작은 향나무가 고개를 든다. 적멸보궁을 지키는 정암사의 향나무처럼 온몸을 비틀며 납작 엎드려 있다. 그마저 없었다면 빈 마당에 들어온 바람이 어디에 머물렀을까. 언제 꺼졌는지 알 수 없는 향로 하나가 목탁 소리도 염불 소리도 없는 조용한 경내에 놓여 있다. 조심스레 향을 피운다. 마당을 가득 채운 진한 향이 천천히 피어오른다. 향내가 작은 툇마루에 짙게 배어든다.

고향의 앞산 작은 절에도 향나무가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작은 절 마당에 향나무 하나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한동안 어머니는 내 집처럼 그곳을 찾아갔다. 밭일을 하다가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다가오면 그곳으로 달려갔다. 타고 남은 재만 가득한 향로에 향불부터 붙였다. 향내가 법당을 가득 채울 때까지 절을 했다. 한동안 일어나지 않고 엎드려 있는 날에는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던 아들들의 혼백이라도 만난 것일까. 큰아들이 암이라는 소식에 어머니는 혼절했다. 모두가 쉬쉬했지만 결국 알게 되었다. 열일곱에 시집와 그 고된 시집살이도 아들을 보며 견뎌냈고 남편이 타지를 전전할 때도 장남이 있어 참아냈다. 어쩌면 남편보다도 더 의지하고 믿었던 큰아들이었다. 유명한 의사는 다 찾아가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시키는 대로 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둘째 아들이 병상에 누웠다. 투병 생활에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러 갔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비손을 했다. 잘하는 병원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지만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둘째마저 보내야 했다. 분주하던 집안이 적막에 싸였다.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날이 밝기도 전에 밭에 나가 무엇이든 심고 가꾸었다. 때로는 끼니도 잊은 채 풀을 쥐어뜯었다. 누가 지나가며 말을 붙여도 밭고랑만 내려다보며 병마 같은 풀과 싸웠다.

툇마루에 앉아 누각을 내려다본다. 햇살이 마당을 채우고 향내가 법당을 적신다. 처마 끝 풍경의 물고기가 산사의 정적을 깨지만 거치대에 매달려 졸고 있는 동종은 깨어날 줄 모른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등을 눕혀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철새나 산짐승이 찾아와도 기꺼이 자리를 내준다. 어쩌면 마루가 삶의 무대인지도 모른다. 삶이 끝나면 무대를 내려오는 배우처럼 아버지도 형님들도 마루를 지나 다시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다.

운해가 걷히자 올망졸망한 산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진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산들이 이제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본래 형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던 산이다. 눈을 뜨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많다.

간혹 바람 소리가 들리지만 성가시지 않다. 마루에 내려앉은 겨울 햇살이 살짝 손등을 간질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당에 뒹구는 낙엽이 바람을 몰고 지나간다. 법당 문을 열어둔 채 스님은 어디로 갔을까. 적막감이 감도는 텅 빈 툇마루에 알싸한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마음의 눈을 뜨라고 향내로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