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 / 박범신

 

 

제대한 막둥이가 먼 곳에 있는 제 학교를 찾아 집을 떠났다. 작년에 큰애와 둘째 딸애까지 짝을 채워 품에서 내보냈으니, 당연지사 집안은 텅 비었다.

잠이 영 오지 않았다.

“돌보아야 할 새끼들이 다 떠났으니 우리 부부에게 이제 평화뿐이네. 축하주로 술 한 잔 어때?” 내가 말했고, 아내가 대뜸 “좋지!” 했다. 요즘 내 몸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는 아내지만 이때만은 남편이 술 마시고 몸을 망치든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우리는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셨다.

어린것 셋을 데리고 연탄 때는 단칸방에서 살던 시절, 행여 연탄가스 사고로 죽을까봐 하루도 깊은 잠을 자지 못했던 일을 얘기할 땐 아내가 눈시울을 붉혔고, 엄혹했던 1980년 5월, 혹시 내가 데모에 끼려고 집을 나갈까봐 아내가 큰애를 감시원으로 붙여놓았던 얘기를 할 땐 내 언성이 턱없이 높아졌고, 성탄절에 산타클로스로 분장하고 막둥이 유치원에 갔다가 눈썰미 좋은 막둥이에게 가짜 수염을 처참하게 잡아 뜯긴 대목이 나왔을 땐 함께 킥킥거리며 품위 없이 웃었다. 거실은 술병과 안주 그릇과 벗어던진 옷가지들로 금방 난장판이 됐다. “새끼들 없으니 지금 치울 것도 없지 뭐” 내 말에 아내가 냉큼 “아무렴!” 평소와 달리 방자한 어조로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만취해서 기다시피 침대 위에 쓰러져 누웠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방귀를 여러 번 뀌었고 여지껏 애들 뒷바라지로 지친 아내는 전에 없이 드르렁드르렁, 우렁차게 코를 골았다. 생의 길고 혹독한 ‘리얼리즘 단계’가 마침내 끝났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부부는 보통 3단계의 인생을 함께 겪는다.

죽어라 물고 뜯다가도 포도주 한 잔이면 사랑의 달콤한 꿀주머니 속으로 황홀하게 투신하는 짧은 신혼 시절을 나는 보통 ‘낭만주의 단계’라고 부른다. 내 경우 이 단계는 채 반년도 되지 않았다. 새끼는 고사하고 나와 아내만을 먹여 살리는 것도 힘들었던 절대 빈곤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는 ‘리얼리즘 단계’.

세상 속에서 가족을 지키고 내 꿈도 지켜나가야 하는 길고 혹독했던 리얼리즘 과정을 살 때, 나는 매일 썼고 매일 가정을 버리기를 꿈꾸었다. 정말 이불 속에서 빠져나가듯이 표 안 나게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언제든 내 ‘집’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나는 취해 잠든 아내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기미가 끼고 사뭇 똥배도 자리잡은 아내는 취해 잠들었기 때문인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그때 아, 나는 보았다. 아이들이 떠난 텅 빈 집안, 혹은 잠든 아내와 쓸쓸한 그림자에 덮인 내 자의식 사이로 가을이, 아니 시간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와 채우는 것을. 불같았던 한 시대가 가을빛 속으로 속절없이 침몰하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튿날 늦은 아침 녘, 막 깨어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휴머니즘 시대가 도래한 거야.”

나는 하릴없이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해맑은 가을 햇빛 아래, 뜰 한켠에서 제멋대로 자란 키 큰 취꽃이 하얗게 꽃을 피운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국화꽃이 무더기로 핀 것도 내다보였다. 간밤에 남몰래 피워낸 꽃들이었다. 그 순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낭만주의 단계도, 리얼리즘 단계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아름답고 고요한 그 가을꽃들 덕에 선뜻 깨달았다. 인생의 진정한 승부는 마지막에 만나는 ‘휴머니즘 단계’에서 어떻게 살아내느냐, 또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그래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인생이 지금 막 내게 밀려오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내 입에서 릴케의 시구가 절로 흘러나왔다.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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