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무리 뜨는 바다 / 서운정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마치 파도타기라도 하는 양 우리는 함께 출렁거렸다. 야트막한 산 밑,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앉은 마을을 지나자 어둠에 덮인 바다가 보였다. 끼룩대는 갈매기 울음이 철썩대는 파도 소리에 섞여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왔다. 창밖으로 커다란 달이 따라왔다. 산 너머로 숨었다 나타나는 달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야만 낯설고 불안해서 두렵기만 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를 따라 내린 곳은 조그마한 어촌이었다. 좁은 골목길 가로등 불빛에 비친 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개가 컹컹 짖었다. 양쪽으로 돌담이 이어진 곳에서 그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잡았다. 그리고는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성큼성큼 걸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나보다 먼저 도착한 둥근달이 마당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 집에는 남자의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둘이 있었다. 체구가 작고 숱 없는 머리를 쪽진 할머니는 은비녀를 꽂고 있었다. 웃을 때 하회탈처럼 자상해 보이는 할머니가 그의 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호되게 시켰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주름 없는 모시 적삼, 어깨를 타고 흐르는 선에서 꼿꼿했다던 성정을 짐작해 볼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키가 크고 강인해 보였다.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강인한 얼굴이 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몸빼바지처럼 어색했던 내가 그 집의 가족이 되었을 때,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코딱지만한 창문에 아직 어둠이 머물러 있는데 부억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항우장사도 못 이긴다는 눈꺼풀을 치켜뜨고 간신히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방으로 나가시면 자연스럽게 식구들 밥을 챙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어머니는 방에서 일을 하다 썰물 때면 집으로 와 대충 밥을 드시고 쉴 새도 없이 다라이와 망, 바지락 잡는 호미를 챙겨 바다로 가셨다. 노을이 지면 물비린내 풍기는 바다를 한가득 머리에 이고 집에 오셨다.

어느 날은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고 또 어떤 날에는 바위에 붙은 굴을 따오셨다. 지충과 롯도 뜯어 와, 그 해초들을 처마 밑 콘크리트 바닥에 펴 널었다. 꾸들꾸들 잘 말리려고 이리저리 뒤집어 바람을 칠 때마다 물살에 너울대는 꿈을 꾸었던 해초들은 마당 가득 짭조름한 갯냄새를 불러왔다. 저녁에는 밤이 깊도록 바지락과 굴을 까셨다. 바람 부는 봄밤, 벚꽃이 다 떨어지지 않을까 뒤척일 때면 어머니가 계신 방에서는 쉼 없이 빈 껍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응시하며 내일을 생각하는 내 머릿속으로, 한때는 단단하게 여물었던 나의 꿈도 맥없이 딸각딸각 떨어지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 밥 챙기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또 점심때가 되고 저녁이 왔다. 그뿐인가, 신발 벗을 시간도 아깝다며 흙 묻은 장화를 신고 온 집안에 찍어 놓은 발자국을 닦는 일, 여기저기 묻어 있는 갯벌, 방안에 떠돌던 비리고 짠 냄새, 아무리 쓸고 닦아도 다음 날이면 또….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는 해초처럼 나도 시들시들 물기 없이 말라갔다. 우울의 농도가 짙던 어느 날이었다. 뒷문으로 집을 빠져나와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식구 많은 집에서 북적대며 행복하게 살아갈 날을 꿈꿨던 상상은 두 손 가득 퍼 올린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듯 빠져나갔다. 검푸른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잿빛 울음이 가슴속의 슬픔을 콕콕 들쑤시며 서럽게 했다. 밀려드는 파도를 밀어내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막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려 할 때였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수평선 너머에서 붉은 달무리가 둥글게 퍼져 올라오고 있었다. 달무리 안에서 빠져나오려던 달의 몸부림은 붉은색인가 하면 분홍색으로 그러다 노란색과 어우러져 바다를 물들였다.

불현듯 현실 같지 않은 신비로움 앞에서 마법에 걸린 것처럼, 희망도 없고 허무 한 일이라 여겼던 일상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다가왔다. 거짓말처럼 가슴속에 훈훈한 온기가 차올랐다. 문득,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된 시집살이에 젖먹이를 업고 바다로 뛰어들려했다던 어머니는 이 바다를 얼마나 자주 찾으셨을까. 아들이 낯선 여자를 불쑥 데리고 와 같이 살겠다고 했을 때는 어땠을까. 풀인지 부추인지, 냉이인지 지칭개인지도 구별 못 하는, 희멀건 얼굴에 수숫대처럼 가느다란 몸집,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을 것이다.

무리를 벗어난 달이 조금 빠져나오더니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높이 솟아 오른 달의 빛이 바다로 내려와 헤엄쳐왔다. 앉아있던 모래언덕까지. 내 가슴까지 노랗게 차올랐다. 그때 "야야, 아가"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 옆으로 다가와 않으며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잔잔한 바다처럼 순탄한 날들이 있었는가 하면 거칠게 치솟는 파도로 삶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 물살의 흐름을 타고 나는 지금 이 집에 처음 올 때 보았던 시어머니 또래의 중년이 되었다. 하회탈처럼 웃던 할머니는 달나라에 계실까. 억세고 강인해 보이던 시어머니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식구들 밥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똑같은 날의 반복이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것을,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닌, 주어진 오늘이란 길을 담담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 곧 인생이고 삶이라는 것을 할머니와 어머니의 바다 같은 삶에서 보았다. 저 멀리 주홍빛 노을에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며 물결에 그려지는 달큰쌉쓰레한 내 인생의 경전을 읽는다. 지난날들이 그리워지는 이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보았던 그날처럼 달이 참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