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에는 세월이 없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날이었다.

 서정주의 시에 송창식이 곡을 붙여 부른 「푸르른 날」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아침이었다. 일요일이라 느지막이 일어났다. 커피와 토스트를 준비해 창가에 앉았다. 햇살은 부드러웠고, 하늘은 맑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살짝 흔들고 지나갔다. 이런 날에는 별다른 일이 없어도 마음이 설렌다.

 오십 대 후반의 나이에도 창밖의 바람 한 점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세월이 흐르면 감동하는 능력도 조금씩 무뎌질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떤 날에는 어린 시절보다 더 사소한 것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날이 그랬다. 갑자기 국화꽃을 사 오고 싶어졌다.

 밴을 빌려 홈디포(Home Depot)에 갔다. 꽃과 나무들이 늘어선 곳을 둘러보다가 큼지막한 소국 화분 세 개를 골랐다.

 반쯤은 샛노랗게 피어 있었고, 나머지 반쯤은 꽃봉오리로 맺혀 있었다. 작은 꽃송이들이 서로 어깨를 맞댄 채 소담스럽게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횡재라도 한 것 같았다. 수지맞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꽃 화분 세 개를 샀을 뿐인데 온종일 마음이 들떠 진정되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별일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국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그 꽃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숨어 있다.

 고향 집 바깥마당 끝자락에는 가을이면 소국이 무더기로 피었다. 누가 정성 들여 가꾸는 것도 아니었다. 봄이 오면 싹이 돋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깊어지면 어느새 노란 꽃들이 마당 끝을 환하게 밝혔다.

 꽃이 피면 향기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국화 향기가 마당을 건너왔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향기도 짙어졌다. 그 향기에 취해 철부지 악동이었던 나조차 한동안 꽃 앞을 떠나지 못했다.

 미당은 국화를 누님 같은 꽃이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내게 국화는 누님보다 먼저 고향이었다. 고향 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국화와 뒤꼍의 대숲이 생각난다. 가을날 마당을 채우던 꽃향기와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 몸을 비비며 소리를 내던 대나무 잎들. 그 두 가지가 내 유년의 계절을 이루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병치레가 잦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친구들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침이면 나는 집에 남았다. 열이 내리고 몸이 조금 나아지면 오후에 혼자 뒷산으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동구 밖 과수원 길을 지나면 오솔길이 나타났다. 그 길에 접어들면 세상이 달라졌다.

 솔 향기가 먼저 다가오고, 산새 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왔다. 발밑에서는 흙냄새가 올라왔다. 햇볕을 머금은 산 흙냄새는 묘하게도 묵향을 닮아 있었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흙냄새가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산이 자신의 속살을 조금씩 내어 주는 것 같았다.

 특히 가을날의 오솔길은 황홀했다.

 길 양쪽에는 샛노란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누가 심어 놓은 것도 아닌데 꽃들은 저마다 알맞은 자리를 찾아 피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아픈 몸으로 집 안에 누워 있을 때는 세상이 멀게만 느껴졌다. 친구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산길에 들어서면 이상하게도 그런 서러움이 사라졌다.

 바람은 내게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았고, 들국화는 왜 그토록 자주 아프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피어 있었고, 향기를 내어 주었다. 나는 그 향기를 욕심껏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면 며칠 동안은 몸이 거뜬해져 학교에 잘 다녔다. 그 향기가 내 몸에서 다 빠져나가면 나는 다시 아팠고……

 물론 꽃향기가 병을 고쳐 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지금도 가을 들국화 향기를 맡으면 그때의 허약한 소년이 어디선가 다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생각해 보면 자연은 내게 처음으로 만난 위로자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아픈 아이를 걱정하고, 약을 먹이고, 쉬라고 타이른다. 그러나 산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조금씩 살아날 수 있었다.

 국화가 모두 작고 소박한 꽃인 줄 알았던 것도 그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였다.

 읍내에 사는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이층 양옥집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보아 온 시골집과는 달리 집부터 크고 반듯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온통 국화꽃이었다.

 계단에도, 베란다에도, 뜨락에도 큼지막한 국화 화분들이 가득했다. 꽃송이는 내가 알던 국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탐스럽고 우아했다. 마치 꽃들이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나선 것 같았다.

 나는 감탄하기보다 먼저 당황했다. 국화가 저렇게 클 수도 있단 말인가. 내가 알던 국화는 마당 끝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작은 꽃이었다. 산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소박한 들꽃이었다. 그런데 친구 집의 국화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꽃 같았다.

 친구의 할아버지가 소일거리로 가꾸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화분 하나하나에 들인 정성을 보니 소일거리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나는 그날 국화도 사람이 정성 들여 가꾸는 귀한 꽃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을까. 그때의 놀라움은 단순히 꽃이 크다는 데서 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친구 집의 대국을 보고 난 뒤 고향 집의 소국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꽃은 서로 다른 아름다움으로 마음에 남았다. 한쪽은 사람의 정성이 빚어 낸 아름다움이었고, 다른 한쪽은 자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어 준 아름다움이었다. 친구 집의 국화는 눈을 놀라게 했지만, 고향의 국화는 내 몸이 먼저 알아보는 꽃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고향을 떠났다. 부모님도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그 옛날 뒷산 오솔길 초입에는 부모님의 묘소가 있다. 산소 양옆에는 형님이 심어 놓은 소국이 무성하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묘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그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몸이 아픈 날이면 들국화 향기를 맡으며 다시 건강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제 그 길은 부모님께 가는 길이 되었다. 같은 길인데 세월이 길의 끝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때는 산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꽃이 피어 있었고, 바람이 불었고, 흙냄새가 좋았다.

 이제는 안다.

 사람이 평생 걸어온 길도 어느 날에는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부모님 묘소 곁에 핀 국화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마당과 뒷산 오솔길이 함께 떠오른다. 살아 계실 때 부모님이 보셨던 꽃을 이제는 부모님이 잠드신 자리에서 다시 보는 셈이다.

 꽃은 해마다 피고 지는데, 그 꽃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국화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향기에는 세월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세월이 흐를수록 향기는 더 깊은 곳에 스며드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와 밴에서 소국 화분을 내려놓았다.

 노란 꽃송이들이 햇살을 받으며 반짝였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들이 꽃들 사이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꽃을 바라보았다. 이 꽃들은 내가 태어난 고향도, 어린 시절 걸었던 산길도 모를 것이다. 부모님이 잠드신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그 모든 곳이 함께 있었다. 고향 집 바깥마당의 국화와 뒷산 오솔길의 들국화, 친구 집 뜨락을 가득 채웠던 대국, 부모님 묘소 곁의 소국이 캘리포니아의 작은 화분 세 개 속으로 모여들었다.

 그날 나는 꽃을 사 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떠나온 시간들을 조금씩 데려온 것 같았다.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일이 언제나 편안한 것은 아니다.

 낯선 말과 문화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이유 없이 피곤한 날도 있다.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문득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고향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제는 고향이 반드시 돌아가야 할 장소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까지 함께 품고 있는 곳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집으로 돌아간들 그때의 부모님이 계시지 않고, 그 시절의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온 뒤에도 오래도록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정작 그리워하는 것은 장소만이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 그 시간 속의 사람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한때를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화꽃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희미한 향기가 났다. 그 향기 속에서 오래전 산길을 걷던 소년이 떠올랐다.

 병약하고 외로웠지만, 들국화 향기만으로도 며칠은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아이. 나는 그 아이가 조금 가엾으면서도 부러웠다.

 꽃향기 하나에 몸이 나을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세상을 순진하게 사랑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창밖에서는 가을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멋진 날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곤 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난 날일까. 오랫동안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오거나, 뜻밖의 행운을 얻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곳에서 시간을 보낸 날일까. 물론 그런 날들도 멋질 것이다.

 그러나 살아 보니 사람의 생애에는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이 훨씬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 별다른 사건도 없이 지나가 기억에조차 남지 않는 날들. 그런 날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특별한 날을 기다린다. 지금보다 더 좋은 날, 더 행복한 날, 더 아름다운 날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는 사이 지금 이 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 버린다.

 소국 화분을 다시 바라보았다.

 반쯤 피어난 꽃과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들이 한데 어울려 있었다. 그 모습이 사람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피어난 시간도 있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시간도 있다. 어떤 꽃은 먼저 피고 어떤 꽃은 늦게 핀다. 그러나 꽃들은 서로를 재촉하지 않는다. 제 몫의 햇살을 받으며 제때를 기다릴 뿐이다.

 나는 그 꽃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십 대 후반의 나이에 아직도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리워할 수 있는 고향이 있고, 떠올릴 수 있는 부모님이 있고, 꽃 한 송이에 마음이 설레는 오늘이 있다는 것도 고마웠다.

 그날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일요일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꽃집도 아닌 홈디포에서 국화 화분 세 개를 사 온 날이었다. 그러나 저녁 무렵 나는 알 것 같았다.

 어느 멋진 가을날이란 달력 속에 미리 정해져 있는 날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살아온 모든 계절이 문득 한 송이 꽃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날.

 그리움조차 고마움이 되는 날.

 그날이 바로 내게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