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그까짓 것

교회의 노인대학에서 지난 봄학기부터 1교시에 자서전반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편물반으로 향한다. 나는 뜨개질을 잘하지 못한다. 언젠가 일본 손뜨개 디자인 책을 보며 저런 옷을 한 번 떠서 입어 봐야지 하고 책을 샀지만, 끝낼 수가 없었다. 혼자서 뜨개 도안집 표시 기호를 따라서 뜬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 그 책은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 엄마는 초가을이 되면 뜨개질을 시작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설거지까지 끝나면 뜨개질 바구니를 무릎에 올렸다. 이가 빠진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는 항상 서너 개의 털실 뭉치가 있었다. 새 실은 드물었다. 좀 오래된 실로는 목도리나 장갑을 떴다. 한번은 엄마가 새 실로 아빠 조끼를 뜨는 동안, 나는 옆에서 헌 조끼를 풀고 있었다. 올이 술술 빠지며 줄어드는 조끼가 내심 안쓰러웠다. 아빠가 좋아하던 조끼였다. 엄마는 푼 실로 텔레비전에 나온 옷을 보며 내 스웨터를 떠 줬다. 그 옷을 만져보며 부러워하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편물반 교수님은 나보고 뜨개질을 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수세미를 떠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크릴 실로, 코바늘 한길긴뜨기로만 떠서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수세미는 몇 달에 한 번씩 바꾸니, 요긴하게 썼다고들 했다. 교수님은 그 실력으로는 내가 원하는 스웨터를 뜰 수 없다며 두꺼운 실을 줬다. 초록색 연습용 실로 코를 늘리고 줄이고, 또 구멍 만드는 법과 두 코 함께 뜨는 법을 배웠다. 기초를 익힌 후, 아마존에서 베이지색 얇은 실크 모헤어와 클로버 바늘과 뜨개질에 쓸 부품을 샀다.

주로 옷은 등판이 앞판보다 좀 높다. 그래서 스웨터도 등 쪽을 올리며 떠야 한다. 이 난도가 높은 처음 열 단은 교수님이 떠 주었다. 위에서 뜨기 시작해서 밑으로 내려가는 방식이다. 교실에서 어르신들의 지나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코 한 코 뜨는 재미도 쏠쏠하다. 뜨개질감을 들고 뜨니까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돌렸다. 한 분이 두꺼운 쿠션이나 앉은뱅이 테이블을 무릎 위에 놓고 뜨면 어깨에 부담이 덜 간다고 했다.

심안모옥온(心安茅屋穩), 성정채갱향(性定菜羹香). 마음이 편하면 초가집도 안락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는 뜻이다.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이 글귀가 피부에 와 닿는다. 이래서 엄마도 뜨개질했을까. 세상 시름을 잊으려고. 도안을 보고 코를 세어 가면서 떠가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실이 얇아서 오래 걸리겠지만, 계속 뜨면 언젠가는 완성하지 않을지 싶다.

클라짓에서 엄마가 몇 년 전에 떠 준 모자가 나왔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 모자를 뜨는 데 시간이 얼마 걸렸냐고 물었더니, 그까짓 거 뜨는 데 반나절이면 족하다고 했다. 내가 지금 스웨터를 뜨고 있다고 했더니, 요즘 파는 스웨터는 싸고 이쁜 데 왜 시간 들여 뜨냐고 하며, 뜨다가 정 못 뜨겠다 싶으면 가지고 오라고 했다.

모자를 쓰고 거울을 봤다. 자투리 실로 떠서 여러 가지 색이 섞였다. 써 보니 보기보다 그럴싸했다. 그러나 그 모자를 쓰고 나간 적은 없다.



이리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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