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이상한 여행
2026-10-22 (목) 12:00:00 성민희 수필평론ㆍ소설가
낯선 거리 낯선 커피샵에 앉아 있다. 목적지도 일정도 없는 여행을 혼자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이렇게 하고 있다.
아들을 만나러 뉴욕에 온김에 로키 영화의 72 계단 위에서 신나는 ’Gonna Fly Now’를 흥얼거려 보고, 아트 갤러리도 둘러보자며 친구랑 어제 빌라델피아로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친구는 40년 만의 만남이라며 팔짝팔짝 뛰는 초등학교 동창에게 목덜미를 잡혀가 버렸다. 난감해하는 친구에게 실컷 회포를 풀고 오라고 등 떠밀어 보냈다. 낯선 거리에 가방 하나와 내가 덩그러니 남았다. 그래도 예약해 둔 호텔이 있으니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였다.
난생처음 혼자 호텔에서 지내야 한다. 음악을 크게 틀고 컴퓨터도 연결하며 밤 새울 준비를 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어느덧 시간은 밤 9시를 넘어섰다. 웬 여자가 혼자서 들락거리나 하는 눈초리가 있을 것 같아 서둘러 로비를 빠져나왔다.
거리는 화려한 쇼윈도 불빛을 뒤로 하고 귀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랐다. 큰 유리창으로 들여다보이는 식당 안은 발간 불빛이 정다워 보였다. 구석 자리에 앉아 따뜻한 수프와 빵을 주문하는 영화 속 쓸쓸한 여인이 되어보고 싶은데. 도무지 나랑은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혼자 들어서는 게 쑥스러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조금 더 걸으니 맥도널드 간판이 보였다. 고향 친구라도 만난 듯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거기로 향했다. 아주 능숙하고 세련되게 치킨 맥너겟을 주문했다. 봉투를 품에 꼭 안으니 내 마음에서 술렁이던 바람이 따뜻한 온기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치킨 맥너겟도 먹고 커피도 마셔 배고픔은 가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괜히 으스스해졌다. 화장실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T.V.를 크게 틀어놓았다. 괜찮냐는 친구의 걱정에는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다며 큰소리쳤다. 커튼을 꼭꼭 여미고 이메일을 열었다. 반가운 이름들이 있었다. 이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커튼을 젖히자 쏟아지는 아침 햇살. 옆 교회 건물의 종탑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오후에는 비가 올 거라던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날씨다.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쌀쌀한 아침 거리를 걸었다. 아파트 앞마당 잔디 위 나지막한 울타리를 따라 걷는데 마주 오던 남자가 옆으로 비껴 준다. 나는 굿모닝 하며 미소를 보내주었다. 세탁소 낡은 창문 틈으로 빨간 조끼를 입은 강아지가 유리창에 코를 비비며 내다보고 있다. 손을 흔들어 주니 캉캉 짖으며 얼른 엉덩이를 돌려 도망가 버린다. 인정머리 없는 녀석. 혼자 걷는 나그네에게 꼬리라도 한번 흔들어 줄 것이지.
오늘은 용기를 내어 커피샵에 들어왔다. 두 여자가 마주보며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다. 저 사람들도 40년 만의, 아니 아직 젊으니 그 정도는 아니겠고 10년 만의 만남인가 하고 혼자 피식 웃는다. 괜찮니? 친구는 계속 문자를 보낸다. 멋진 에세이가 한 편 나올 것 같으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답을 보냈다. 이상한 여행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기억에는 오래 남을 것 같다. 두고두고 써먹을 친구 원망거리도 하나 만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건너편 그로서리 마켓에 들러 물이랑 과자랑 오늘 하루 견딜 양식을 좀 사 가야겠다.
<성민희 수필평론ㆍ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