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백혈병 환자의 절박한 사정을 전해 듣고 기증 등록을 해두었다고 했다. 수년이 지나 본인도 잊고 지낼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마침내 조직형이 일치하는 환자를 찾았다고 연락해 왔다는 것이다.
마음에 변화가 있으면 취소해도 된다고 했다. 마침, 빈혈로 고생할 때라 마음이 약간 흔들렸으나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자신이 스스로 한 약속이니 기증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인도주의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남의 불행에 마음 아파했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그런데 건강 체질도 아닌 내 딸이 하려는 일은 단순한 헌혈이 아니었다. 딸의 설명으로는 기증자의 혈액에서 피를 만드는 씨앗과 같은 조혈모세포만을 채집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또는 이틀에 걸쳐 채집한다고 한다. 생사를 가르는 환자에게는 더없이 절박한 일이지만, 내 딸이 기증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안 된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못 된 계집애.’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 해도 부모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그런 중대한 약속을 하다니,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支父母)라 하지 않던가. 자식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수술 날짜도 잡히지 않은 상황인데도 벌써 호흡이 가빠졌다. 그러나 황토물이 가라앉을만한 시간이 지나자,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자신의 숨을 나눠주려는 딸의 마음이 가슴에 들어왔다. 결국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딸이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날, 마음으로는 백번도 넘게 딸을 장하다고 칭찬했고, 또 백번도 넘게 그 약속이 취소되기를 바랐다. 숲속의 작은 교회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 정녕 옳은 일인가요.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은혜를 내려주세요.’교회 문을 나서는데, 저 멀리 산 너머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의 깊은 위로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했다.
“내 영혼과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거룩한 평안이여.”
<조옥규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