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칼럼] 질그릇

얼마 전그릇 가게에 갔다. 손목을 다쳐 수술한 뒤라 가벼운 그릇이 필요했다. 점원은 코닝웨어가 가볍고 실용적이라며 권했다. 디자인도 단정하고 세련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옆에 놓인 질그릇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세련되지도, 말끔하지도 않은 홍갈색 그릇, 표면은 투박하고 빛을 반사하지도 않았다. 요즘 그릇들처럼 반듯하고 매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그릇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듯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마 질그릇이 나를 닮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름답지도 않고, 특별히 빛나지도 않는 내 모습, 조금만 건드려도 마음에 금이 가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그 약속을 잊어버리는 사람, 잘해 주겠다고 마음먹고도 작은 서운함 하나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나. 이런 질그릇처럼 연약한 나를 알아 갈수록,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조금씩 보듬게 한다. 내 손목이 아프다고 해서 손을 잘라 버릴 수 없듯, 마음에 상처가 있다고 그 사람을 내 삶에서 깨진 그릇처럼 내다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서로의 흠과 상처를 끌어안고 산다. 나 자신이 깨지기 쉬운 존재임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에게 마음 문을 열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하면서 우리 안에 보배가 담겨있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보배라고 하면 금이나 은, 다이아몬드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을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보배는 질그릇 안에 숨 쉬는 온기 같은 것일 것 같다. 때로는 눈물일 수도 있고, 침묵일 수도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는 작은 마음일 수도 있다. 힘들어하고 슬픈 사람을 만나면 함께 슬프고, 행복해하는 사람을 만나면 함께 행복한 공감의 온기다.

이 사랑을 차가운 사기나 유리그릇에 담지 않고, 따뜻하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질그릇에 담는다. 이 그릇은 양은그릇처럼 쉬 끓고, 식지 않아 겨울철에 뚝배기에 찌개를 끓이면 오랫동안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뚝배기 안에 보글보글 끓여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는 보기만 해도 가슴까지 뜨거워진다.

그릇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흙으로 빚은 질그릇에서 도자기가 생겨났고, 청자와 백자는 오랜 세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질그릇은 잿물을 칠하지 않고 진흙으로만 빚어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소박한 한국 전통 그릇이다. 표면이 거칠고 윤기가 없지만 숨을 쉬는 성질이 있어 선사시대부터 생활 용기로 널리 쓰였다. 질그릇 중에는 용도에 따라 항아리, 뚝배기 등이 있지만 어머니 품 같이 가장 포근한 그릇은 어린 시절 우리 집 장독대에 있었다.

장독대의 항아리 안에는 우리 가족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계절의 냄새와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내가 힘들었을 때 말없이 내 곁을 지켜주었던 할머니의 사랑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 오르는 어른 키만 한 항아리와 옹기그릇들. 겨울이면 장독에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 위에 써놓은 작은 새 발자국 편지가 어린 내 마음에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게 남아 있다.

비록 나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지만, 밤에는 빗물로 채워진 항아리안에 반달과 별들이 빛나고 있다.

김영화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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