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네는 오래도록 “아름다운 얼굴fair faced”로 불려왔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존재다. 정겨운 이의 미소나 어머니의 맑은 얼굴은 마음속 깊이 남는다. 그리고 신화와 예술은 늘상 아름다움의 표상을 만들어왔다.
긴 세월 동안 여성미의 형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서구에서 미인의 형상은 상아빛 피부, 푸른 눈, 금발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그 표상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케냐 출신 배우를 헬레네로 캐스팅하고, 트랜스젠더 배우까지 시논으로 포함시키면서 영화 『오디세이아』는 예고편부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는 “올해 안에 역사적으로 정확한 <오디세이>를 만들겠다”고 말하며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감독은 영화로 시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가 선택한 얼굴은 시대가 선택한 얼굴이기도 하다.
오디세이아는 구전되다가 기원전 8세기 무렵에 문자로 정착한 서사시다. 헬레네의 용모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없다. 위 첫문장의 헬레네의 모습은 호메로스 원전의 서술일뿐 대부분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가 반복하는 이미지다. 그렇다면 일론이 말하는 “역사적으로 정확한” 아름다움이란 예술의 이미지 아닐까. 나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다 알지 못하지만, 이번 캐스팅에서 이룬 변화만큼은 흥미롭다.
사회는 끊임없이 재창조된다. 신화 시대에서 농경 시대를 지나, 산업사회와, 정보화 시대 그리고 디지털 문명시대로 진전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바뀌면 신화도, 예술도, 문화도 새롭게 해석된다.
고대 그리스는 다양한 혈통과 외모가 뒤섞인 세계였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잇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 햇살에 그을린 갈색 여인을 헬레네로 캐스팅 했다면 어땠을까. 무심코 백인 이미지을 간직한 예비 관객에게 흑인 배우로의 급격한 전환으로 인한 그 뜨거운 설전을 면했을 듯하다. 아니다. 어쩌면 그 디지털 잡음이 마켓팅으로 나타나 감독의 흥행 기록을 갱신하는 것일까. 그러나 개봉과 동시에 폭망할 것이라는 영화는 국내외로 고공행진 중이다. 관객은 이미 개봉 한 달만에 한국내 천 만을 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역대 R등급 영화 흥행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관에서 들은 어느 할머니의 말이다. “세 시간이 금방 갔네.” 관객은 영웅의 스토리에서 감독의 재해석과 작품성을 높이 평가한다. 신화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의 신호일까. 얼굴에 흉터가 새겨진 어두운 피부의 헬레네는 새로운 인간상을 보여준다. 영화 캐스팅의 핵심이 된 외면만이 아니고, 조롱을 받기도 한 상처와 경험이 만들어낸 깊이까지 아름다움의 일부로 표현했다. 아름다움은 때로 상처가 피어낸 꽃이다. 놀란 감독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선택을 하면 그런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편견의 시대가 가고 개성의 시대가 열리는 지금, 어떤 얼굴이 아름다운가’.
다음 시대의 여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홍용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