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방 / 김혜원

 

내가 꿈꾼 서재의 원형은 언제나 엄마의 자궁이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처음 머무는 공간. 둥글고 따뜻하며, 세상의 냉기와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첫 집. 그 안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다만 자라난다. 나는 그 공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평생 그리워해 왔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서재는 늘 둥글어야만 했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언젠가 떠나온 그 자궁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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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사진을 보면 늘 서재가 떠올랐다.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으며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작은 생명. 그 모습은 나에게 책상에 앉아 문장 하나에 매달리는 작가의 형상과 묘하게 겹쳤다. 책 역시 내게 탯줄이었다. 페이지마다, 활자마다 영양분을 흘려보내며 나를 살아 있게 했다.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결국, 생존을 위해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오래된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꿈꾼다. 커다란 둥근 방을. 직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곡선이 만든 고요 속으로 숨어드는 방을. 벽을 따라 책장이 빙 둘러 있고, 그 가운데 작은 책상이 놓인 풍경. 앉아 고개만 돌리면 온 세상의 지식과 문학이 원을 이루며 나를 감싼다. 그 책들은 나를 굽어보지 않는다. 그저 같은 원 안에서 숨을 나누며 함께 존재한다. 나는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듯 글을 쓰고, 길을 잃었다가도 돌아오고,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각진 방은 늘 내 마음을 어딘가를 불편하게 했다. 모서리는 사유를 끊고, 벽은 생각을 가두었다. 효율적이지만 차갑고, 편리하지만 내적 호흡을 방해했다. 반면 둥근 벽은 시선을 흘려보내고, 생각을 품는다. 원은 권력이 아니라 포옹이다. 건축에서 원형은 완결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순환을 허락한다. 빛이 부드럽게 돌고, 그림자가 선 없이 흐른다. 그 안에서는 시간마저 직선이 아니라 호흡처럼 둥글게 감긴다. 그래서 나는 직선의 세계를 잠시 벗어나, 원의 품 안에서 사유를 이어가고 싶다.

 

나는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 방을 설계해왔다. 벽은 매끈한 곡선으로 이어지고, 천장은 높고 조용하다. 은은한 조명들이 별처럼 천장을 따라 박혀 부드럽게 빛을 흘린다. 바닥은 오래된 나무로 마감되어 발끝에서 잔잔한 온기가 전해진다. 벽을 따라서는 책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고전과 현대, 철학과 시, 기억과 상상이 한 바퀴를 이룬다. 그것은 거대한 압박이 아니라 부드러운 포옹이다. 한 바퀴를 따라 책등을 쓰다듬으면 마치 오래된 친구들의 손을 잡는 듯한 안도감이 느껴질 것만 같다. 방 한가운데에는 작은 책상이 있다. 필요 이상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고요하다. 책상 위에는 연필과 종이, 한두 권의 책만 놓여 있다. 창문은 내 앞쪽에 있다. 언제든 세상과 연결될 수 있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완전히 닫아 나만의 우주를 지킬 수 있는 통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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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나만의 성역이다. 누구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는 고요의 행성. 나는 그곳에서 문장과 싸우고, 때로는 좌절한다. 깊이 막힌 문장을 붙들고 고개를 떨구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끌며 서재를 빙빙 돌게 될 것이다. 그때 방 안의 공기는 단순한 공기가 아니라 사유의 바다다. 책과 내가 함께 내쉬는 호흡으로 가득한, 두텁고 느린 바다. 나는 그 안에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른다. 새로운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물 위로 올라와 숨을 들이쉬듯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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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은 어쩜, 그 자체로 하나의 건축이자 도시다. 촘촘히 들어찬 서가는 벽이면서도 미로이고, 책 한 권 한 권은 집이자 골목이다. 밤마다 그들은 속삭인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보다 오래된 목소리다. 한참을 듣다 보면 방 안이 그들만의 대화로 차오른다. 그러면 나는 문을 열어둔다. 지식의 숨결이 바깥 공기와 섞이도록. 그리고 다시 문을 닫으면, 그 무형의 속삭임은 더욱 짙어져 나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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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방의 현실은 엉켜 있다. 책들은 이중, 삼중으로 꽂혀있고, 찾으려면 한참을 꺼내고 다시 쌓아야 한다.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풍경은 나쁘지 않지만, 가끔은 답답하다. 그래서 더 간절히 꿈꾼다. 질서정연한 원형의 향연, 길을 잃지 않는 미로. 그곳에서는 생각이 더 자유롭게 흐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곳에서야 비로소 완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는 작은 벌레 몇 마리 살지도 모른다. 오래된 책갈피에서 희미한 금을 볼 적마다 느닷없이 드는 생각이었으니까. 어떤 날은 잠을 청하려고 억지로 눈을 감고 누우면, 어디선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날이 밝으면 그 작은 소음들은 결국 내 안의 소리임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는다.

 

어느 햇살 좋은 날.

 

나는 책을 밖으로 내놓아 오래된 먼지를 턴다. 그때 느껴지는 공기는 묘하게 향기롭다. 새 나무의 향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지식과 기억의 냄새. 과거의 손길과 오래된 숨결이 뒤섞인 그 냄새는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그것은 말 없는 위로이자, 또 다른 시작의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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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란 결국 뭘까. 그 공간은 인간의 사유를 담는 그릇이고, 형태는 사고의 방식이 되는 건 아닐까. 직사각형의 방에서는 언제나 끝과 모서리를 의식할지도 모른다. 그 네모진 경계는 나를 자꾸 세상으로 밀어낼 것 같다. 순전히 내 생각이겠지만.

 

하지만 둥근 방에서는 끝이 없다. 원은 사유를 순환시킨다. 생각, 한 점에서 시작해 흐르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 내가 둥근 방을 원하는 이유는 어쩌면 끝없는 사고의 회귀를 꿈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자궁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 지식의 원천으로 회귀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본능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상상한다. 그 방 한가운데서 숨을 고르고 앉아 있는 나를. 수많은 책의 무게가 공기 속에 섞여 나를 감싸는 순간을. 철학자의 날카로운 문장과 시인의 부드러운 언어가 한 공간에서 부딪히며 서로를 껴안는 장관을. 그 무게는 나를 짓누르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나를 지탱해준다. 나는 그 안에서 비로소 나다운 문장을 찾아낼 것이다. 사유는 때로 나를 압박하지만, 그 압박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둥근 방은 아직 내게 없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지어졌다. 머릿속의 설계도에서 나는 매일 그 방을 짓고 허물고 다시 세운다. 언젠가 현실 속에 탄생할 그 방은 단순한 서재가 아니라 사유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나를 감싸고,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자궁. 글과 지식의 탯줄이 다시 나를 연결해 줄 행성. 그곳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며 미소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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