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튜브에 재미있는 채널이 있는데 거기에서 부르는 노래를 가르쳐 달란다. 무슨 노랜데? 응, 기러기라는 동요야.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몇 년 전, TV에서 방영한 인간극장 ‘우리 동네 파바로티’라는 프로였다. 배경이 되는 마을이 어딘지 낯이 익었다. 그동안 행정구역상 변화가 있었던지 주소도 다르고 모습은 변해 있었지만, 동네 이름과 풍경이 내 고향 마을을 닮아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사십 년이 넘었으니 변할 만도 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 년을 네 번이나 지났으니 변하는 게 당연할 터였다.
내용은 독일 유학을 다녀온 성악가가 시골 고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공대생이었던 그는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고 대학 졸업 후에 유학까지 다녀왔다. 농사지어 뒷바라지한 부모님 덕에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으나 바라던 자리는 그의 차지가 아니었다. 독일에서 오페라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아내와 세 명의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꿈을 접었다. 돌아온 고국에서의 현실은 냉정했다. 자동차에 기름 넣을 돈이 없어 주유소에서 친지를 불러내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아버지가 고추 농사짓던 땅에 살림집과 카페 겸 공연장 용도의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2년이나 걸렸다.
그는 지금 칠십이 넘은 어른들로 구성된 실버합창단과 일반 성인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청하면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어디든지 부르면 가서 노래한다. 짬짬이 농사일도 돕고 새벽에는 영농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떡 공장에서 떡을 만들고 배달도 한다. 카페에서는 화덕 피자를 구우며 오페라 공연하듯이 노래를 부른다. 멋지게 지은 카페가 있는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다른 음악가들과 협연도 한다. 그날의 공연엔 동네 사람들이 관객으로 초청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때 파바로티가 아버지에게, 어릴 적 가르쳐 주었던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중창, 그 노래가 ‘기러기’였다.
친구는 왜, 그 노래에 그렇게 감동했을까. 기러기도 있는 엄마, 아빠가 친구에겐 없어서였을까? 가물가물 잊히어 가는 옛노래가 그리워서였을까.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야, 거기가 내 고향 동네라는 것을 알았던 거야?” “아니, 몰랐지. 어머머,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니? 아는 사람이야?” 숨도 안 쉬고 되물어온다.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아는 사람이랑 성이 같아. 아마 그 친척쯤 될지도 모르지.”
몇 년 전 큰맘 먹고 찾아간 고향은 너무 변하여 우두망찰 당황스러웠다. 세월은 한가하게 앉아 향수를 곱새겨 볼 수 없게 나의 추억을 지우고 있었다. 이제는 파바로티가 있는 그 카페를 찾아가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화덕 피자를 구우면서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고향을 음미해야겠다. 우리 동네 파바로티를 만나면 말 하고 싶다. 마음 변치 말고 꼭, 그 자리를 지켜 달라고. 당신의 자리가 탐날 정도로 아름다워 보인다고.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부르며 흘러갑니다.
전화를 들고 친구와 ’기러기‘를 부른다. 노래 한 곡이 우리를 60년 전으로 데려가 동심의 나라에 내려놓는다.
<정유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