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접시꽃

이리나 수필가

 

 
때마침 접시꽃이 한창이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이 피지 않았다. 겨우 서너 개의 꽃만 보였는데, 어떻게 알고 벌써 벌이 꼬였다. 윙윙거리며 달려드는 벌떼를 쫓으며 핀 꽃을 따서 언니에게 줬다. 언니가 두 손으로 꽃을 받으며, 물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전부 다 따오면 어떻게 하냐고 핀잔을 줬다.


꽃내음도 없이 풀 냄새만 나는 꽃. 하지만, 색깔만은 눈에 확 띄었다. 하얀색, 빨간색, 분홍색 꽃 그루가 해마다 담장을 따라 피었다. 주로 내 키만 하고, 더 큰 것은 담장을 넘었다. 밖의 세상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접시꽃은 보통 홑잎으로 피는데, 가장 붉은 한 그루가 유독 겹으로 피었다. 탐스럽다. 내일이면 다시 못 볼 꽃이다. 손으로 꽃송이를 따려는데 잘 안 떨어져서 비튼다. 까칠한 털이 손에 박힌다. 꽃가루가 팍하고 공중에 흩어지며 손과 가슴에 떨어진다. 유난히 진한 노오란 꽃가루는 털어도 잘 안 털어지는데.

꽃가루가 눈에 들어갔는지 눈이 가렵다. 눈물이 난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눈을 훔친다. 눈이 더 가려워진다. 눈물이 손가락에 닿자, 털이 박힌 손이 따갑다. 곧 얼굴은 꽃가루와 눈물로 얼룩져 간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나를, 말표네 엄마가 봤다.

“아니, 이사 가는 뒤숭숭한 날에 왜 너까지 말썽이야.“

그 말에 이삿짐을 싸던 엄마가 걸어왔다. 나는 급히 꽃잎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내 얼굴을 본 엄마가 등을 한 대 치자,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마당 펌프에서 물을 길어 얼굴을 닦아주던 엄마가 말했다.

 

“오늘 서울 가면 짜장면 사줄게.“


그 말에 나는 앞니 빠진 얼굴로 헤헤 웃었다.

이삿짐 트럭 안에 언니와 나는 운전사 아저씨 옆에, 동생은 엄마 무릎 위에 앉았다. 짐을 옮겨준 아저씨 둘은 뒤 트럭 짐칸, 이삿짐 위에 올라탔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로 향했다. 아빠는 볼일을 마저 보고 저녁에 집으로 오기로 했다. 저쪽으로 내가 다니던 학교가 보였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보고 싶어져서, 주머니 속 꽃잎을 살짝 쥐었다.

세월이 흘러, 그 꽃잎도 어디론지 가버리고 그 기억마저 가물거렸다. 그러나 접시꽃을 보면, 나는 다시 고향집 마당에 서 있다.

언니가 사는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 어느 집 접시꽃이 눈에 들어온다. 담 너머 붉은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꽃이 멀어질 때가지 바라본다.

접시꽃은 시린 꽃. 내 어린 시절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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