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실 / 정은아

한 여인이 2인실에 들어왔습니다. 전신마취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꿈인 듯이 몽롱했습니다. 그녀 곁엔 철부지 두 아이와 노부모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애써 괜찮은 듯 행동했죠. “수술 별거 아니네. 별로 안 아파.” 너스레를 떱니다. 만약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온갖 투정을 부렸겠지요. 그녀를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워주고 싶어서, 일부러 더 밝게 웃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지자 노모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은 한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서 밝고 새로운 날들을 맞아야 하지요. 노모는 어린아이들이 무사히 내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할 거예요. 노부는 병실에 남아, 비어 있는 옆 칸 침대에 누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인은 노부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몇 시간 전, 딸이 응급실에 있다고 전화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게다가 어서 와서 수술동의서를 작성하라고 말했으니, 정신없이 차를 몰고 달려왔을 테지요. 여인은 수술로 뚫린 구멍보다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듯 더 쓰리고 아팠습니다.

조용한 2인실의 밤. 그녀는 호흡에 열중했습니다. 전신마취 후에 폐가 쪼그라들지 않게 심호흡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의사가 신신당부하고 갔으니까요. 2시간 동안 호흡에만 집중했죠. 한숨 같은 깊은 심호흡이 없었다면 그 밤이 얼마나 더 길게 느껴졌을까요. 때로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면, 남편을 떠올리며 원망과 분노로 베개를 적셨을지도 모릅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은 저절로 약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녀는 씩씩하게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시라고 보내고, 병실에 혼자 남았습니다. 팔다리는 멀쩡해서 걸을 수 있으니, 혼자서도 거뜬합니다. 불안증이 기어 나오려고 할 때쯤, 가방에 들어있던 <데미안>을 펼쳤습니다.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 번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중략) 지금, 바로 지금 틀림없이 나의 연인이 내게로 오고 있을 거라고, 다음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거라고 다음 창문에서 나를 부를 거라고.” 책을 잠시 접고, 눈을 감았습니다. 눈물을 삼키다가, 다시 책을 폈습니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아, 싱클레어! 너도 참 힘들겠구나. 단어 하나, 하나가 목소리를 얻은 듯이 깊은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심장이 아려왔고, 심장을 움켜쥔 손이 떨렸습니다. 불안한 그녀는 싱클레어에게 동화되었습니다. 눈물 몇 방울이 답답한 마음을 조금 씻어 주었습니다. 누워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멀리 있는 누군가를 그리듯이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요한 평안을 느꼈고, 삶이 이대로도 괜찮다고 여겨졌습니다.

노모가 다시 왔습니다. 병실에 혼자 있을 딸이 마음 쓰였나 봅니다. 손녀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모두 보내고, 서둘러 왔습니다. 노모는, 아이들이 훌쩍 커서 자기 할 일도 스스로 잘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며 대견스럽답니다. 노모의 얘기 속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처럼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녀 앞에서는 사소한 걸로 매일 싸우기만 하는 녀석들이니까요. TV를 보다가 노모는 스르륵 낮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노모를 보며 아이가 전화로 해준 말이 기억납니다. “엄마, 할머니가 수술실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수술현황판만 계속 바라봤어.” 낮은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노모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딸 걱정은 잠시 잊으시고 편히 주무세요.

오후에는 새로운 여인이 왔습니다. 이제 2인실은 다 채워졌습니다. 그 여인도 자신의 노모와 함께였지요. 다음날 수술을 앞둔 상태라 불안해 보였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불안한 심사를 얘기했습니다. “전신마취 했다가 안 깨어나면 어떡해? 저번처럼 정신 못 차리면 어떡해?” 노모가 딸을 달랬습니다.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야.” 2인실에는 한창 피어 있어야 할 딸들이 침상에 누워있고,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는 두 노모가 딸의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무거운 공기가 병실을 채웠고 엷은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답답함을 숨길 곳이 없는 딸들은 벽 쪽으로 돌아누웠습니다. 두 여인의 노모들은 아이들을 돌보러 가고 이제 2인실에는 두 여인만 남았습니다.

깜깜한 밤이 밀려오는 시간, 둘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여인은 이미 느낌으로 서로를 알아봤고, 왜 6인실이 아닌 2인실을 택했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같았고, 이른 나이에 이별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 여인은 6년 전에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고, 또 다른 여인은 2년 전에 병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습니다. 서로의 말에 놀라거나 크게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저 각자가 경험하고 지나온 일들을 들려주고 듣습니다. 서로의 삶을, 서로의 아이를, 서로의 잃어버린 사랑을 얘기합니다. 어떻게 이런 만남이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연이 아닌 필연일까요.

한 명은 수술 후 퇴원을 앞두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다음날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술하지 않은 여인은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봤기에 더 두렵습니다. 먼저 겪은 여인은 괜찮을 거라고 걱정 마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압니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무엇보다 아이 때문에 걱정이 부풀어 오릅니다. 어린 자식이 있으면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어서 더 무섭죠. 뭐든 직접 겪어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생각이 많을 때는 잠이 명약입니다. 다음 날, 먼저 입원했던 여인은 퇴원을 준비했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여인은 수술을 준비했습니다. 짐을 다 챙기고 퇴원하며 말했습니다. “수술은 별거 아니에요. 잘될 겁니다.” 불안한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습니다. 고개를 끄떡이는 그녀의 눈을 오래 볼 수 없어서 빠르게 병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외래진료를 가는 날, 2인실에 같이 있었던 여인이 생각납니다. 수술은 잘 되었을까. 아픔은 잘 아물고 있을까. 계속 신경이 쓰이지만 찾아가지는 못합니다. 하룻밤의 만남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가끔은 길을 헤매어도 하루하루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내 안의 네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입력합니다. 조금 불안해도 오늘을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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