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 - 흰 너머 흰 / 송마나
1.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숨결을 느꼈다. 등산객들이 깰까 살며시 산장 문을 밀치니 이게 웬일인가. 태초의 밤이 빛을 내뿜었다. 하늘과 땅이 교합하여 천지가 환했다. 옹골찬 산맥들과 벌거벗은 고사목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천왕봉으로 오를 길이 사라져버렸다. 세석산장마저 흰 요람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지리산 겨울밤은 순백의 축제가 한창이다.
아, 누가 이 축제 마당에서 무량한 춤사위를 펼칠 것인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인간 존재의 숙명을 노래한 시인 백석(石)의 <흰 바람벽이 있어>가 떠올랐다.
환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즈 같은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며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흰 새, 백발, 수의를 적어 나간 《흰》의 작가, 한강의 눈자위가 서늘했다.
내 몸속에는 동양인의 피가 흘러 달려왔다는 바실리 칸딘스키는 캔버스에 눈 내리는 지리산의 하얀 풍경을 담았다. 점, 선, 면이 없는 무(無)의 형상들이 사각의 틀 너머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눈 덮인 세석평전의 자연, 더는 흰색이 아니었다. 흰색의 태고는 무채색이다. 현재는 공기와 산소가 혼합된 낡고 녹슨 색들의 총화다. 그 옛날은 물성이나 모든 색깔이 사라진 무(無)의 세계, 어떤 언어로도 대항할 수 없는 침묵의 세계이다.
침묵은 말의 포기가 아니라 말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덧칠된 세상을 움켜쥔 두 손을 펴고 손바닥에 '눈은 왜 하얗게 내리는가?'라고 적으면 침묵은 마음의 빗장을 열어 줄까.
눈은 온갖 색깔들을 제안에서 용해하여 흰색이 되었으리라. 지고한 순수함이다. 신부의 새하얀 드레스를 떠올리게 한다. 투명한 비밀을 삼킨 흰색은 오염된 색들을 덮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낮춰 지리산 소나무가 초록빛을 선명하게 드러나게도 한다. 오만함을 밀어내고, 무능함을 일으켜 세워 조화로운 세계를 펼쳐나가는 모성母性)을 품었다.
흰색은 인간 심층에 존재하는 근원의 색 같다. 칸딘스키가 “흰색은 모든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 그것은 젊음을 지닌 무(無)로서 시작하기 전의 무, 태어나기 전의 무.”라고 했던 것은 그의 심오한 정신적 붓질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태초의 소리 없는 코러스가 심연으로 스며든다.
눈 덮인 세석평전은 눈(目)으로 볼 수 있는 태고의 침묵,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서로 만나 가뭇없이 나를 덮는다.
2.
중국 전국시대 철학자 공손룡(公孫龍 BC 320?~BC 250?)은 백마(白馬)는 말(馬)이 아니라고 했다. 백마는 색깔을 가리키고, 말은 형체를 가리키므로 두 개념은 하나가 아니라고 한다. 말에는 백마뿐 아니라 흑마(黑馬), 황마(黃馬) 등도 있지만 백마에는 흑마와 황마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백마는 백마이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마란 무엇일까? 상반되는 두 견해, 우리는 이런 질문 하나씩을 가슴에 안고 길을 떠도는 방랑자가 아닌가.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든다. 우리의 삶도 근원으로 빨려간다. 나도 모르게 강물을 따라 길을 걸었다. 남쪽 고향의 바닷가에 멈춰 섰다.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수평선만이 가물거렸다. 경계 없는 허구의 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다가 정오의 흰빛을 가득 머금어 입을 열지 못하고 가슴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득한 곳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내 의식은 바다 밑으로 잠수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깊이 들어갈 수는 없다. 심해에도 지층처럼 깊이에 따라 인식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성직자이자 고생물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은 누스페어(noosphere)를 인류 집단적 사고이자 꿈과 상상력의 총체라고 했다. 그 누스페어는 바다의 심연에 있을 것이다.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날개를 타고 바다 깊숙이 내려간다. 체온이 떨어지고 맥박은 느려진다. 바다의 온갖 푸른색이 사라진 꿈의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기다리고 있어.”
나를 꼭 닮은 백발의 내가 말을 건넨다. 언어란 습득된 가공어로써 세상 너머를 표현 못 하는 한계성 때문인지 늙은 나는 침묵으로 소통한다.
‘이곳이 어디일까?’ 나는 당황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나, 아니 너의 무의식 세계야.”
“뭐!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왔다고?”
“무의식 세계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서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도 함께 있어.” 미래의 내가 속삭인다.
고개를 돌리자 옛날의 내가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앉아 있다. 어머니의 탯줄에서 분리되면서 느꼈던 단절의 두려움이 그림자에 각인되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무릎을 크게 기운 바지를 입고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았을 때의 창피했던 마음이 새겨졌다. 나만의 방을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불편했던 감정, 사랑했던 사람이 안겨준 배신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이별, 창피함, 원망, 분노가 나의 무의식 속에 선명하게 살아 있다. 이렇게 얼룩진 단어들을 무의식에 담아두고서 발화되기 이전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의 내면에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은 영원토록 시작이라지만 에고는 모든 사랑을 종말로 파기했다. 자신마저도 사랑한 적이 없다. 오직 뻗어 나가는 시간의 강물에 과거의 무의식을 싣고 허우적거렸다.
그만, 무의식의 바다에 잠긴 악취 나는 삶의 찌꺼기들을 소각하고 싶다. 나라고 인식했던 내 이름마저도 허망한 꽃잎처럼 느껴진다. 바람 따라 흩어지는 과거와 희망찬 미래의 꽃잎을 수렴하고 다비하여 무(無)의 꽃을 피우고 싶다. 그러면 무의 심연에서 꽃 한 송이가 새롭게 피어날지도 모른다. 비록 작고 소박한 꽃일지라도.
백마는 말이었다. 하얀 색깔이 무화(無化)된 백마의 본질은 모든 말들과 다르지 않았다. 존재의 근원에서는 삼라만상의 언어가 흰말(言)이다. 언어의 기표와 기의가 들어설 수 없는 알파와 오메가의 솟구침. 그냥 신음 소리만 터져 나온다. 그것이 성적 황홀경의 소리인지 죽음의 단말마인지 구분되지 않는 언어 너머의 소리로.
나는 심연의 하얀 문 앞에 서 있다. 저 문을 열면 언어 밖에서 솟구치는 소리로 빨려 들리라. 입안에서 맴돌던 말이 터져 나올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