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 강동우
귀에서 폭죽이 터졌다. 누군가 귀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잠이 달아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화약 터지는 소리가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문을 쾅 닫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인지 그제인지 꿈을 꾼 뒤로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 꿈속에서 발걸음을 목격했고, 방문이 세게 닫히는 장면을 포착했고, 문이 닫히는 순간 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꿈이 확실했다. 눈을 뜬 나는 안도했다. 다행이었다. 이제 얼굴 없는 이웃을 구겨버리는 상상을 그만할 수 있었다. 방금 전 단잠을 깨운 폭죽 소리도 꿈속에서 들은 것이라 확신했다. 밖에 나가 어느 집에 불이 켜졌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긴장감과 안도감을 오가며 한동안 뒤척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였다.
겨우 아침이 되었다. 일어나서 아이 밥 챙기러 부엌으로 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천장에서 두두두두 뛰는 소리가 들렸다. 위층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우리네 삶의 아름답지만 개 같기도 한 증거였다. 일 년에 몇 차례 윗집에 손주들이 오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싶었다. 인위적 이해심과 직관적 불쾌감이 동시에 일었다. 두 감정의 격돌이 미간의 찌푸림으로 나타났다. 이것도 공동주택 생활자로서 마땅히 견뎌야 하는 소리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역한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찌르듯 둔탁한 저주파가 귀에 못을 박아댔다. 미생물의 작용보다 인간의 활동이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고역이었다. 꾸역꾸역 참아내던 혐오감이 무표정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힘겹게 유지하던 무표정이 곧 무너져내릴 것 같아 초조했다. 정신적 무력함과 비정상적 면모를 아이들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 구역질 나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신경 쓰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유의 통역 불가한 외계어. 이웃 간의 배려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순진무구한 언론 기사들. 어불성설한 말들의 시체가 바벨탑 높이로 쌓여있고, 그 너머 닿지 못할 곳에서 빵긋빵긋 웃고 있는 건설사의 얼굴들. 집 바깥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와 나뭇잎이 서로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들렸고, 집 안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 몸에 내장을 달고 뱃속에 날개를 감춘 새, 뿌리가 하늘로 솟고 가지가 땅속에 박힌 나무를 생각했다. 나도 겉과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모든 소리가 나를 정조준하고 있는 이 집구석에서 벗어나야 했다. 동양화처럼 쉬지 못할 바에야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 속 엑스트라가 되기로 작정했다. 퍼뜩 과천에 있는 놀이공원을 떠올렸다. 머뭇거릴 새 없이 어른 하나 아이 하나, 표를 예매했다. 공동주택 생활에 적합한 아내에게 갓난쟁이 둘째를 맡기고, 나는 첫째와 함께 집을 떠났다.
놀이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코끼리 열차는 타지 않았다. 아이랑 같이 정문까지 걸었다. 불특정 다수가 어수선하게 모여 발산하는 웅성거림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나 때문에 딸아이도 덩달아 고생이었다. 미안해서 아이를 업었다가, 힘들어서 내렸다가, 도로 힘을 내서 업었다. 도망친 곳에 지나가는 계절이 있었다. 우리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어디쯤을 걸어갔다.
과천의 놀이공원은 참 오랜만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 같았다.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친구의 좁은 마음씨, 돈 밝히는 성정과 같은 흠결마저 정답게 보이게끔, 시간은 많은 걸 희석했다. 어른이 즐기기엔 좁다는 둥, 놀이공원은 돈으로 즐거움을 사는 곳이라는 둥 하는 지난날의 냉소는 기억나지 않았다. 옛 친구와 밥 한 끼 먹으며 유치하지만 즐거웠던 옛날얘기를 되풀이하듯, 오늘은 별생각 없이 그러고 싶었다.
아이가 나를 이끌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어딘 줄도 모르고 무작정 줄을 섰다. 기다리는 동안 마술 상자 속 스프링 인형이 되어 바깥을 궁금해했다. 놀이기구에 올라타 호기심 자물쇠가 풀린 순간 상자 뚜껑이 펑 하고 열렸다. 선물처럼 튀어나온 아이는 컵에 담긴 각설탕이 되었다가, 바이킹에 오른 항해사가 되었다가, 만세를 부르는 개구리가 되었다.
우리는 도처를 방랑하는 집시였고 자유를 갈망하는 히피였다. 밥 먹을 시간에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세속의 규칙도 무너뜨리며 여기저기 쏘다녔다. 점심에 이어 저녁 먹을 시간마저 어길 참이라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얼추 가까워졌을 때쯤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출하는 어쩔 수 없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위해 고안한 특별한 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음악의 진원지로 뛰어갔다.
공연장에서 한 밴드가 합주를 시작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놀이공원 전속 록밴드라고 소개했다. 생전 처음 보는 라이브 록밴드 공연에 나도 아이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밴드는 예전에 자주 듣던 노래 <좋지 아니한가>도 불러주었다.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멋지지 않았는가.” 좋지 아니한 집에서 나와 떠돌아다니는 이 순간을 아이도 좋아하고 있을까. 노래를 들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밤공기가 찼다. 겉옷을 벗어 아이의 등에 걸쳐주었다.
아파트 주위로 가스, 수도, 교통, 통신, 민관을 막론한 모든 인프라를 욱여넣었다. 직장생활, 문화생활, 학교생활, 투병생활 등등 이런저런 생활을 탈 없이 하려면 미우나 고우나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적응한 운수 좋은 다수는 아파트 단지를 꿀단지로 여기는 일벌이 되어 구성원들과 일치단결 살아가겠지만, 아파트에 적응하지 못한 불운한 소수는 마당에 말뚝 박힌 시골 개처럼 애물단지 같은 아파트 단지를 떠나고 싶어도 차마 떠날 수가 없다.
기형적이면서도 가학적인 도시 구조가 싫어서, 기회가 날 때마다 목줄 끊은 시골 개처럼 도망쳤다. 청양으로, 온양으로, 제천으로. 첫째 딸은 내가 전담한다는 명분을 챙기며, 둘이서 소음이 닿지 않을 곳으로 주말여행을 다녔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넘기지만 다음에 또 원치 않는 소음이 자연재해처럼 휘몰아칠 때는 도대체 어디를 부유해야 한단 말인가.
공연을 보고 마침내 식당에 들어섰다. 햄버거를 먹던 중 갑자기 불이 다 꺼졌다. 곧 있으면 식당 옆 무대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고 했다. 햄버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무대 앞 광장은 이미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맨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불이 하나둘 꼬리를 달고 먼 하늘로 올라갔다. 이윽고 펑펑 소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빛이 부채꼴로 혹은 원형으로 사납게 전개되었다. 불꽃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불꽃이 밤하늘에 피고 지며 달과 별을 가렸다. 사람들 머리 위로 재가 떨어졌다. 화약 냄새가 났다. 저 불꽃이 바로 옆에서 터졌다면 눈이 멀고 귀가 먹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환희와 공포가 등을 맞대고 동전처럼 팽그르르 돌았다.
불꽃놀이가 끝났다. 정말 갈 시간이었다. 놀이공원에 작별을 고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코끼리 열차는 타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밤길을 걸었다. 태양에서도 우주인을 위한 불꽃놀이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달이 빛났다. 달은 태양에서 터진 불꽃을 여과해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고요한 스포트라이트. 서늘하고 아늑했다.
택배 느리게 받기. 자전거 타고 장모님 댁 가기. 뒷사람 가래침 소리 듣지 않으면서 산책하기. 감기 걸린 김에 출근하지 않기. 옷 하나 사서 십 년 입기. 비 오니까 집에 있기. 이동권 시위를 틈타 지각하기. 서울로 향하는 트랙터 바퀴. 빠르지 않게. 너무 가깝지 않게. 꾸준하고 느린 것들. 그래서 사라져가는 것들. 인류 진화의 역사 그 어느 페이지에도 남지 않을 구제 불능의 발자취.
달빛은 쬐기 좋게 식어버린 햇빛. 우주적 존재가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서 입에 넣어주었던 흔적. 달빛이 둘의 어깨를 감쌌다. 아이를 업었다. 표적은 이제 하나. 달빛은 아이의 등을 감쌌다. 달을 독차지해서 좋았던 걸까. 세속에 눌려 납작해진 아빠의 등이 평화로웠던 걸까. 아이는 아무 말 없었다. 최대한 천천히 걷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