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 / 박종희
조락의 계절, 아픈 손가락 같은 꽃을 매달고 있는 만천홍에 자꾸 눈이 간다. 무녀리꽃일까? 얼마나 애틋한 자식이기에 내려놓지 못하는지. 삭정이처럼 하얗게 마른 꽃대가 꽃을 품고 있는 것을 보니 시아버님의 얼굴이 얼비친다.
아버님은 아들 둘에 딸 셋 오 남매를 두셨는데 헤묽어 세상일에 서투른 큰아들 때문에 차남인 남편이 평생 장남 노릇을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버님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교육공무원이었던 아버님은 결혼 후 전시 입대를 했다. 덕분에 신혼이었던 어머니와도 생이별하고 최전방의 소대장으로서 전투에 참여하시게 되었다. 두 분은 혼례를 치른 뒤 2년 만에 만났지만, 한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조바심에 몸이 단 어머니는 날마다 삼신할머니께 치성을 드렸는데 간절함이 통했는지 정말 아들을 낳았다. 결혼 후 5년 만에 얻은 자식은 아버님을 닮아 귀공자처럼 잘생긴 아들이었다.
손이 끊길 뻔하다가 생긴 아들이니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태어나면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가슴 벅찬 세상을 살아가게 해 준 장남한테 아버님은 아낌없는 사랑을 쏟았다. 평소 감정 표현에 서툰 아버님이 아들을 보면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4년이 지나 아들과 딸들이 태어났지만, 아버님 가슴에는 맏이의 자리가 컸다.
갓난쟁이 때부터 손, 발이 되어 챙기는 아버님 때문에 시숙은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칫솔이나 양말 같은 기본적인 것도 스스로 챙기지 못하는 수동적인 성격으로 성장했다. 아버님이 시숙한테 무한한 사랑을 쏟는 데는 시숙의 온순한 성격과 명석한 머리도 한몫했다. 머리가 좋아 늘 우등생이었던 시숙은 부모님한테 말대답을 하거나 동생들한테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쏟아지는 잔소리에 속으로는 반항심을 키웠을망정 겉으로는 순종적인 아들이었다.
교육대학을 졸업한 시숙은 발령도 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내리 낳았다.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로 삐거덕거리던 시숙은 아버님으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했다. 나이가 마흔 살이 넘도록 아버님 집에 얹혀살면서도 생활비 한 푼 보태지 않았다. 귀한 자식이라고 떠받들어 키워서일까. 정말이지 시숙은 결곡하고 책임감 강한 시부모님의 성정을 하나도 닮지 않았다.
아버님은 성공한 사람으로 존경받으며 딱히 걱정이 없었지만, 큰아들 때문에 남모르는 가슴앓이를 했다. 걸핏하면 한뎃잠을 자며 경제관념 없이 생활하는 시숙 때문에 아버님의 가산도 축이 나기 시작했다. 시숙이 가장 노릇을 못 하니 화목하던 집안은 엉망이 돼버렸지만, 아버님은 큰아들을 내려놓지 못했다.
칠순을 맞이한 아버님의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셨다. 남편과 병원에 다녀온 아버님은 간암 말기 판정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 순간에도 시숙은 아버님 곁에 없었다.
아버님은 투병하시면서도 병세가 조금 누꿈해지면 큰아들을 찾았다. 당시에는 그런 아버님이 정말 이해되지 않아 화가 났다. 큰아들 때문에 집안이 기울고 당신 몸에 병까지 얻었으면서도 어떻게 저러실 수 있을까 싶었다. 남편과 시누들도 시숙 때문에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아버님의 시선은 항상 큰아들을 향해 있었다.
선한 얼굴로 늘 사람을 힘들게 한 시숙 때문에 착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것 같다. 재산을 탕진해서 집안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누구도 시숙한테 대놓고 잘못을 따지지 못했다. 원망스럽고 괘씸해 한 소리 하려다가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선하게 웃는 시숙의 얼굴을 맞대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오히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아버님께 바른말하고 대드는 남편만 손해를 봤다.
스트레스로 병까지 얻은 아버님의 노년은 평탄하지 못했다. 남편이 아무리 잘해드려도 마음은 큰아들한테 가 있으니 웃을 일이 없었다. 늘 텅 빈 마음으로 계시니 덩달아 집안 공기도 무거웠다.
때도 모르고 꽃에 집착하는 만천홍을 보면서 아버님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삶에 애착이 집착으로 바뀌는 순간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아버님을 보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귀한 자식일수록 더 바르게 키웠어야 하는데. 아버님의 잘못된 자식 사랑 때문에 어머님과 다른 자식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돌아가시던 날 아침까지도 시숙을 기다리던 아버님은 남편한테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 꺼져가는 목소리였지만, ‘이제, 네, 형 찾지 말아라’고 하신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지 20년이 지난 지금은 알 것 같다. 사위어 가는 촛불처럼 하루가 다르게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던 아버님은 큰아들이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성정은 타고난다지만, 시숙이 내일을 준비할 줄 모르고, 미래가 없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은 아버님 탓도 있었지 싶다. 당신을 쏙 빼닮은 큰아들한테 기대가 컸던 아버님은 장남이 당신이 원하는 모델로 커주길 바랐던 것이다. 당신이 쓴 시나리오를 들이대며 그대로 연기하기를 바랐으니 시숙도 가끔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때부터였지 싶다. 시숙이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
떨켜가 고장 난 것처럼 순리를 거스르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계절에 맞게 꽃을 떨구고 새로운 봄을 준비해야 하듯 아버님도 시숙이 독립적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품에서 내보내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언제까지 매달고 있으려나. 아버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라비틀어져가면서도 꽃을 안은 꽃대에서 방하착을 본다. 아버님이 자식을 귀애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큰아들을 위해 지혜로운 방하(放下)가 필요했다는 것을 만천홍이 알았으면 좋겠다.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고. 꽃을 오랫동안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욕심이라고. 비우고 내려놓는 것도 생의 한 방식이라고 만천홍에게 일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