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사탕 / 최윤정

유년의 맛은 달다. 하얗고 작은 알사탕 하나를 입안에 넣는다. 혀로 굴려보는 동그란 추억의 맛. 계산 없는 순수한 맛이다. 그 촌스러움에 가득 침이 고인다.

금세 볼 안쪽이 도돌도돌하게 부풀어 오른다. 내 입속에서 둥글둥글 굴러다니는 유년의 기억 하나, 달다. 채도 낮은 수채화와 같이 애잔한 기억들의 맛이 이토록 달다니.

열 살 때의 여름이었다. 내성적이던 나는 전학 온 지 한참이 지나도록 학교 아이들과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다. 게다가 마을과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집이 있었던 터라 하굣길은 늘 쓸쓸하기만 했다. 낡은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만나는 시냇물이나 들풀들에 정을 붙이는 것이 홀로 집에 가는 열 살짜리 여자아이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 못했다. 한여름의 쓸쓸함이란 눅진하고 무기력한 것이었다.

마을 어귀를 벗어날 때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미리 사 둔 돌사탕을 하나씩 녹여 먹었다. 향도, 특별한 맛이랄 것도 없는 하얀 사탕 한 알. 호주머니 속에서 잘그락거리던 사탕들이 차례로 나와 입안에서 녹는 동안 산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멀리 집이 보이곤 했다.

사실 내가 문방구에서 사 먹고 싶었던 것은 한 개에 백 원 하던 왕사탕 한 알이었다. 맑고 투명한 알 속에 무지갯빛 마블링 한 줄이 무심하게 그어져 있는 그것은 한 개씩 따로 비닐포장이 되어 있었다. 와르르 쏟아진 듯 커다란 통속에 한꺼번에 들어 있어 누군가가 조몰락거렸을지도 모를 돌사탕과는 격이 달랐다.

돌사탕이 든 통 속에 손을 넣으면서도 늘 왕사탕에 먼저 눈길이 가곤 했다. 하지만, 하루 용돈 백 원이 가진 돈의 전부였던 내가 집어들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 개에 십 원하는 돌사탕뿐이었다. 내 걸음으로 두 시간은 더 가야 하는 하굣길의 벗으로 삼기엔 왕사탕은 적당하지 못했다.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그 모양새가 굵고 커다라니 대단했지만, 혀로 이리저리 굴려가며 먹다 보면 금세 녹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한 번씩 아이를 따라 문구점에 갈 때면 불량 식품들 쪽으로 눈길이 가곤 한다. 아폴로, 신호등, 쫀득이, 비닐과자, 진열대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 틈에 돌사탕도 보였다. 한 개에 백 원이란다. 예전보다 열 배나 몸값이 올랐지만 요즘 돈의 가치를 따져보면 여전히 하찮은 매김의 값이다. 모양도 크기도 그대로인데 시절이 좋아서인지 한 개씩 비닐로 개별 포장이 다 되어 있는 것이 그나마 구관에 대한 예우인 듯 보였다.

무심코 한주먹을 집어 계산을 했다. 불량 식품을 사 먹으면 늘 혼내던 제 엄마가 문구점에서 사탕을 사 들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던지 아홉 살 먹은 둘째 녀석이 엄마 그거 왜 사냐고 연거푸 물어본다. 대답 대신 아이의 입안에 돌사탕 하나를 까 넣어 줬다. 볼 주머니가 볼록하게 나온 아이에게 맛있느냐고 물었더니 달단다. 설탕 맛이란다. 청명한 하늘 같은 웃음이 얼굴에 가득한 이 아이의 유년시절은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땡볕 아래 길게 이어진 시골 길을 따라 산 밑의 집까지 걸어가던 시간, 나무 작대기로 둑에 나 있던 들풀들을 헤집으며 부르던 노래, 외로움에 사무쳐 사람만 보면 잡아당긴다는 귀신이 사는 저수지를 머리칼 쭈뼛거리며 후다닥 지나왔던 일, 땅거미가 마당 가득 차오를 무렵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꼬르륵거리는 배를 달랬던 기억, 누렁이의 엎어진 물그릇에 새로 물을 채워주며 중얼거렸던 혼잣말들.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그것들은 저들끼리 단단히 뭉쳐 가슴 한구석에 동그랗게 자리 잡았다.

초라하게만 생각되었던 내 유년의 기억들은 마치 돌사탕 같다. 그땐 내가 가진 기억들이 남들보다 초라해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어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금세 녹아 사라져 버릴지언정 다른 이들의 예쁘고 반듯한 왕사탕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럴수록 나는 주머니 속의 돌사탕만 조몰락거렸다. 그런 작은 기억의 알갱이들이 지금의 나를 채워주고 있음을 모르고서 말이다.

한 개에 십 원 하던 작은 사탕들 하나하나가 하얀 진주알을 닮았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만났던 친구들의 주머니 속에도 탐스러운 왕사탕이 아닌 소박하고 정겨운 돌사탕들이 꼼지락대고 있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린 시절 내가 녹여 먹었던 돌사탕의 개수만큼 많은 추억이 내게 스며들어 있음을 정말 그때는 왜 몰랐을까.

단단하게 영글어 쉬 녹아 사라져 버리지 않는 유년의 추억들은 돌사탕처럼 달콤하게, 또 천천히 내 삶 속으로 녹아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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