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論 / 윤정인
호미가 콕콕 텃밭을 쫀다. 흡사 새의 부리 같다. 날이 움직일 때마다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튄다. 쇠비름, 바랭이가 속절없이 뽑힌다. 긴 뿌리 민들레도 서너 번 호미질에 투항하고 만다. 이랑에 일순 긴장이 돈다.
전원으로 이사 온 후론 텃밭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도심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일상이다. 우기에 접어드는 육칠 월은 며칠만 발걸음을 늦추면 잡초로 덮여 묵정밭이 돼버린다. 대파모종보다 잡초가 더 웃자라버린 이웃 텃밭이 흉하다. 그 꼴이 나지 않게 얼마 전 양파를 수확하고 비워 둔 곳을 뒤적거린다.
호미는 잡초를 뿌리째 뽑고 땅속 깊이 든 감자나 고구마를 손쉽게 캐내게 한다. 생김새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르다. 끝이 뾰족한 ‘막호미’는 작물을 캐거나 흙을 팔 때 사용한다. ‘파호미’는 잔디 사이에 난 잡초를 제거하거나 파종하기에 좋고, ‘감자호미’는 감자나 고구마를 캘 때 이용된다.
나는 서너 살 때부터 장난감보다 농기구를 더 많이 보고 자랐다. 우리 남매들에겐 자신의 호미가 있을 정도였다. 아무데나 던져두어 잃어버리기 쉬운 탓에 자루에다 이름까지 써두었다. 부모님 호미자루에는 광목천을 감아두었는데 손바닥에 배는 땀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고구마를 캘 때였다. 호미로 조심스레 갉작거리는 게 답답해보였는지 남편은 삽으로 흙을 푹푹 파 엎었다. 흙덩이를 털고 보니 귀퉁이가 댕강 잘린 고구마
가 많았다. 호미로 해야 할 일이 있고 삽을 쓸 때가 따로 있는데도 남편은 무슨 일이든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고쳐 달라 부탁한 주방기구를 고장 내는가하면, 열리지 않는 병뚜껑을 억지로 돌리다 부수는 일도 있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는 걸 전원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을 싫어했다. 삽이나 곡괭이 같은 큰 연장으로 일을 뭉텅뭉텅 해치웠다. 꼼꼼하게 여미고 다독거리는 일은 대체로 여자들 차지였다. 어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오랜 시간 호미질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삽을 들고 나가 논의 물꼬를 트거나 막았다. 집안일은 그렇게 자연스레 양분되어졌다.
텃밭 일을 하면 남편은 삽질을, 나는 호미질을 맡게 된다. 굳은 땅을 파고 이랑을 만드는 건 남편이 한다. 함께 뿌린 씨앗이 싹터서 자라면 돌보는 일은 내 차지다. 네 일, 내 일 구분 없는 집안일이지만 방법은 다르다. 성격 따라 남편은 말도 굵고 짧게 끝낸다. 생략된 말을 채우고 덧붙이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그래야 아이들은 이해가 잘 된다고 한다. 삽이 못하는 일을 호미가 하는 것처럼.
호미는 농사일에 가장 많이 쓰인다. 고향집 헛간 사방 벽에는 연장들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아버지는 일정한 간격의 갈고리에 조선낫, 망치, 호미 같은 도구들을 한 눈에 보이게 걸어놓았다. 써레나 따비, 쟁기 같은 큰 것은 아래쪽에 두었고, 작은 것들은 윗줄에 있었다. 식구 수대로 걸린 호미는 참새가족이 전깃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봄이 되어 주말이면 어린 우리도 밭에 나가 일손을 보탰다. 희붐한 새벽에 안개가 덜 걷힌 강변 감자밭으로 나갈 땐 졸음도 따라갔다. 오천 평 감자밭은 이랑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호미로 잡초를 쪼아놓으면 부모님은 긴 호미로 북을 돋우었다. 이쪽을 매고 나면 저쪽에 지슴*이 파랬다. 겨우 한 고랑 김맸을 뿐인데 해가 떴다. 이슬이 걷힐 때쯤에야 아침밥 먹으러 집으로 돌아왔다. 거의 두 달에 걸쳐 세 벌 김을 매고 나서야 호미는 헛간에서 쉼을 얻었고 우리도 감자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조상들은 백중白中날인 칠월 보름에 온갖 과일과 곡식으로 제를 지냈다. 고향에선 머슴과 일꾼들에게 푸짐한 음식을 먹이고 호미씻이 같은 전통놀이를 즐겼다. 이 시기가 지나면 잡초는 기세가 한풀 꺾이고 일꾼들은 고된 김매기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호미씻이가 백중놀이의 중심인 것은 그만큼 농사일에 많이 쓰였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백중날이 지나도 씻어둘 수가 없었다. 가을무나 배추 싹이 돋는 팔월 말부터 다시 바삐 불려나가야 했다.
호미는 손끝 매운 야무진 아녀자를 닮았다. 성정이 섬세해서 제 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웬만한 도구로는 이가 들어가지 않는 자갈밭에서도 강단을 발휘한다. 두루뭉술하게 언저리를 맴돌지 않고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일 터다. 논밭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엔 단연 호미만한 게 없다.
날과 손잡이를 이어주는 호밋대는 단순해 보여도 밋밋하지 않으며 은은한 곡선의 예술미를 갖췄다. 부드럽게 휘어진 모양은 살포시 고개 숙인 여인의 가느다란 목선을 닮았다. 초승달처럼 둥근 호미등은 잡초를 뽑다 들뜬 뿌리며 흙을 다독여 준다. 뾰족한 호미날과 상반되는 부드러움이 거기 있다. 호미는 예리하되 날카롭지 않고 정확하되 냉정하지 않으며, 결단력 있지만 포용심 또한 많다. 이런 양면성이 농사에 있어 다른 어떤 농기구보다 더 믿음직한 존재가 된 게 아닐까.
작가 박경리는 서재에서 토지원고를 집필하다 막히면 텃밭에 나갔다고 한다. 호미를 펜 삼아 흙을 긁적이다 보면 소설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그려졌다고 했다. 마당에 조성된 무명옷차림동상 옆엔 토지 책과 호미 한 자루가 포개져 놓여있다. 작가가 가꾼 것은 텃밭이 아니라 글밭이었다. 고추, 오이, 호박이 영글듯 작품들은 호미질을 할 때마다 더욱 풍성해졌을 것이다.
요즘 외국에서 호미가 정원도구로 인기가 높다. 다양한 쓸모가 국경을 넘어 새로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아마존몰에서도 인기리에 팔린다고 한다. 더구나 이곳에서 팔리는 제품은 한국의 대장장이가 직접 쇠를 달궈 망치로 수없이 두드려 만든 수제手製이다. 숫돌에 직접 날까지 갈아서 완성하다보니 하루에 고작 몇 개 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런 지극함이 명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아닐까.
호미 지나간 자리가 가르마 탄 듯 반듯해졌다. 들깨며 가지, 상추모종들이 더욱 새파랗다. 반나절 애쓴 보람에 텃밭은 이전보다 한층 싱그러워졌다. 가냘프고 약해 보이지만 허허실실의 묘가 호미에는 있다. 언뜻, 크고 강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이처럼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리라.
저무는 밭둑에 호미와 나란히 앉으면 발끝으로 따뜻한 것들이 밀려온다. 발목을 적시는 어스름이며, 저녁 짓는 냄새며, 두런두런 고샅길을 걸어오는 말소리며. 그 모든 것들을 제 안으로 품으며 호미는 툭, 툭, 굽은 허리를 편다.
* 지슴 : 잡초의 경상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