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파리는 파리 / 조문자

꽤 늦은 밤 깐족깐족 사람 약 올린다. 어디서 파리 한 마리 방으로 홱 들어와 간지럼을 태운다. 천정에 붙었다가 이마에 붙었다가 볼때기에 붙는다. 파리채도 없고 살충약도 없는데

 

기다려라. 녀석과 동침은 절대 불가하다. 지가 죽든지 내가 살든지 해야 한다. 고수는 덤벙거리지 않는다. 산만하지 않으며 용의주도하다.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파리는 벽에 붙어 있으나 여차하면 도망칠 자세다. 어떻게 나를 골탕 먹일지 잔머리를 굴리는 게 분명하다. 궁여지책으로 공책을 쥔다. 까치발을 하고 놈을 향해 내리친다. 눈치가 구단이다. 동작이 재빨라 언제 머리 위로 날아갔는지 오르락내리락 프로펠러 소리로 윙윙거린다. 경공술이 리드미컬하다. 의자 모서리에 죽은 듯이 붙어 있다가 천정으로 뿅 솟구친다.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아 어디에 앉을지 망설이더니 전등 갓에 붙는다. 눈씨름을 하려 해도 녀석이 곁눈이라 나를 보는지 옆을 보는지 당최 알 수 없다. 대가리, 몸뚱이, 다리 할 것 없이 보들레르 시(詩)에 등장한 상복 입은 여인처럼 검다. 다시 공책을 넉넉히 쥐고 뙈기 치듯 멋지게 한방 후려친다. “팍!” 또 허탕이다.

 

벌써 재빠른 운신으로 내뺐다. 가루 내다 팔면 바람 불고 소금 팔러 가면 이슬비 온다고 먹다 만 찻잔이 키보드 위에 엎어졌다. 아이고, 생일 기념으로 산 컴퓨터인데 신경이 독하게 흥분된다. 날개 없는 나를 조롱하듯 쫓으면 갔다가 다시 와서 콧잔등에서 입술로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다시 모니터 위에서 앞발을 싹싹 비비고 있다. 그래, 좋다. 납작코가 되도록 쪼글터 주든지 나도 날개를 달든지 할 테다. 남의 귀한 시간 빼앗고 비위를 건드리는 놈 관두지 않을 테다. 거무튀튀한 퉁방울눈에 어디 한 군데도 볼품없는 녀석 괘씸하다.

 

놈은 슬슬 나의 부아를 돋운다. 달라붙어 있는 자리도 전화기 번호판이나 컴퓨터 마우스, 전등 갓, 한마디로 때려잡기가 곤란해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높이 더 높이 날려는 철학도 없는 주제에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적당히 해서 창문으로 날려 보내고 말아? 파리를 파리로 날려 버린다? 어림없는 소리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하잘것 없는 것처럼 비칠지 몰라도 파리와 싸움도 싸움은 싸움이다.

 

파리는 다시금 배시시 나타났다. 방문이 열려 있건만 문제 해결 방도는 아예 생각지 않고 붙어 있는 자리에서만 머리통을 쥐어박는다. 신(神)은 우리에게 두 개의 문을 준다. 동시에 두 문을 잠그지 않는다. 한쪽 문이 닫히며 다른 한쪽 문은 열어놓는다. 닫힌 문만 바라보며 끝없이 슬퍼하는 자는 열려 있는 다른 문을 알 턱이 없다. 파리도 열려 있는 문은 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만 야단법석 떤다.

“에구, 멍청이야, 옆 좀 봐! 옆! 방문이 열렸잖아”

보다 못해 소리를 꽥 지르는 순간 파리와 내 경우가 어디가 다른지 돈오(頓悟)로 정신이 번쩍 든다. 사고 전환은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서만 박박 대는 파리는 내 모습 한 부분을 잘라 보여주었다.

 

나란 인간도 한 생각에만 사로잡힌 적 있다. 그것을 이루려고 사지 팔팔하게 움직였다. 아예 다른 생각이나 방법은 닫아 버리고 오로지 이 길이 아니면 안 돼. 내가 만든 규칙에 스스로 얽맸다. 생각을 달리해 보고 다른 방법도 찾아보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 일은 이루었으나 생(生)의 무게가 무겁기만 하다. 내가 만든 우리에 갇힌 격이다. 파리와 다르지 않다.

 

놈이 고개를 돌려 째려본다. 생긴 대로 살자 한다. 타고난 팔자대로 살자 한다. 당신이나 잘하고 살라 한다. 밥 먹고 하릴없이 파리나 간섭하냐는 듯 이젠 앉지도 않고 지그재그 비행한다. 파리를 보고 대포를 쏠 수 없는 일. 이 길로 달려가 에프킬라 사 오고 싶지만, 자정이 넘었다. 파리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이튿날 아침 눈 뜨자마자 방을 둘러본다. 파리는 여전히 마우스 위에서 날개를 오므렸다 폈다 하고 있다. 약이 다시 바짝 오른다. 건넛집 여자를 용병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어찌어찌하여 여차여차하니 우리 집에 와서 파리 좀 잡아 달라고 했다. 건넛집 여자가 파마머리를 봉두난발로 세우고 나타났다. 폴란드 자유 노조위원장 같은 인상을 한 그녀는 파리채를 들고 두 팔을 내 두른다. 딱딱한 것으로 파리 잡는 것은 망치로 참새 잡으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라며 헤실헤실 웃는다. 말캉말캉한 물체여야 파리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고 자부심이 배인 목소리로 설명한다. 나는 무엇을 했길래 이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모른 채 살았던가. 말은 안 했지만,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넛집 여자는 사위를 살피느라 눈에서 광채가 번뜩인다. 병아리를 겨냥하는 독수리 눈매다. 오페라 지휘자처럼 어깨까지 들썩이며 말캉말캉한 파리채를 휘둘러 놈을 한방에 박살 냈다. 파리 목숨이란 말이 실감 나도록 파리는 배가 터져 결단 났다.

 

아흐, 속이 시원하다. 하여튼 파리는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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