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벽 / 전미란

 

벽은 소리를 막아내지 못했다. 섬마을 학교사택은 여러 개의 방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었다. 슬래브 지붕에 구멍 숭숭 뚫린 벽돌로 칸만 쳐져있었는데 칸칸이 나누어진 허름한 벽은 많은 말을 해주었다.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커졌고 나는 예민해져갔다. 밤마다 부르릉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옆방 남자의 코 고는 소리, 기침소리, 방귀소리 할 것 없이 벽을 넘나들었다. 심지어는 몇 시에 일어나는지, 티브이 드라마는 뭘 보는지, 잠들기까지 무엇을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사택은 보일러실을 부엌으로 썼다. 헐거운 문틈으로 들쥐가 드나들고, 비가 오면 지렁이들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교실 헌 책상을 붙여 그릇을 올리고 빨간 고무통에 물을 받아 바가지로 떠서 설거지를 했다. 벌 받듯이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 했다. 한겨울, 보일러 온수통이 끓어오르면서 뜨거움을 토해낼 때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곤 했다. 방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당과 맞대어 있어 아무리 볕이 좋아도 내 속옷은 토굴처럼 어두운 부엌에 널어야 했다. 그보다 더 고역스러운 건 공동화장실을 쓰는 거였다. 늘 추리닝 차림을 한 옆방남자와 마주칠 때면 한껏 몸을 오그려 비켰다. 벽을 통해서 아는 것이 많아진 탓이었다.

​음악선생인 그 남자의 방에서는 ‘흑산도아가씨’ 노래가 수시로 흘러나왔다. 그는 수업이 없는 주말엔 일찍 잠들었지만 평일엔 혼자 소주를 마시다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걸었다. 그는 매일 어린 딸과 통화를 했는데 그럴 때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이 올라갔다. 엄마는? 나갔어? 아니, 아니… 엄마 바꾸진 말고. 아내와 통화하는 날보다 통화를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아내가 부재중인 날엔 양은 상에 탁, 탁, 술잔 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택 교사들은 주말이 가까워지면 풍랑주의보가 주 관심사였다. 여객선을 타고 뭍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날에는 이방 저 방에서 빈 김치통과 빨래 감을 싸느라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그들이 선착장을 향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남겨진 옆방남자는 바다가 보이는 학교뒷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어느 주말 저녁, 남편과 술안주 한 접시를 들고 남자의 방으로 건너갔다. 누리끼리한 벽지와 흐릿한 형광등 불빛까지 우리 방 그대로였다. 먼지 쌓인 오디오 위에 박카스병과 약봉지가 널려있었다. 그는 남편과 비슷한 사십대 초반의 나이었지만 귀밑머리가 희끗한데다 얼굴빛도 거무튀튀했다. 별 말 수가 없이 술잔만 기울이던 그가 내게 불쑥 “사모님은 입술선이 분명한 게 정조관념이 강할 것 같아요.”라며 힘없이 웃었다. 지금도 그 말을 잊을 수 없는 건, 말의 내용이 아니라 남자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옆방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왔다. 나는 아예 벽에다 귀를 바싹 갖다 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무언극을 하듯 손을 휘저었다. 어떤 여자일까. 벽을 외면하고 싶어 티브이를 크게 틀었다. 소리는 더 이상 넘어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노크소리가 났다. 문을 여니, 높은 힐에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저는 옆방 사는 사람 아내에요. 남편 따라와서 살림하는 사람도 있네요.”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녀가 손님처럼 왔다 떠나던 날, 틉틉한 안개가 덮치더니 섬에 비가 내렸다. 새벽녘 옆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입을 틀어막고 우는 듯한 소리였다. 어떤 설움이 저토록 오열하게 만들까. 내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리자 남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픈 사람이라고. 동료들 사이에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방학 때 육지에 갔다 돌아오니 낯선 사람들이 옆방에서 짐을 빼고 있었다. 컴컴한 밤 마주잡을 손 하나 없었던 남자. 누구보다 육지로 나가기를 원했던 그의 넋은 어디로 갔을까. 죽음의 문턱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누구보다 뭍이 그리웠을 그의 넋은 어디로 갔을까. 바닷모래로 찍어낸 구멍 난 벽돌은 그의 한기를 품어주지 못했다. 벽에 부딪혀 오다 마음에서 더 파동을 일으키던 소리들. 벽이 벽의 구실을 못했던 것처럼 나는 그의 고독을 지켜보기만 한 옆방 여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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