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소리/ 장미숙

 

 

산길로 들어서자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달아난다. 길에 웅크려 있다가 인기척에 놀란 모양이다. 초여름 오후, 강하던 햇빛이 약간 누그러진 시간이다. 조붓한 길 양쪽으로 나무의 그림자가 길다. 그런데 난장 끝 정적처럼 조용한 게 영 어색하다. 허공에 가득하던 소리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나뭇가지 사이를 유심히 살피지만 보이는 건 바람에 살랑이는 초록 잎새들뿐이다.

매실나무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햇빛만이 가지 사이를 들락거릴 뿐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없다. 여백을 허용하지 않던 가지였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휑해졌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열매는 다 떨어지고 그 사이로 하늘이 비집고 들어와 여러 가지 무늬를 그려놓았다. 드문드문 남아 노랗게 변해가는 열매만이 매실이라는 걸 말해준다. 십여 일 전까지만 해도 생명의 소리로 가득했던 곳이다. 그 소리를 들으려고 고개가 아프도록 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일까. 친하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버린 듯 허전하다.

소리가 시작된 건 나무 이파리에 초록빛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늘은 높아지고 햇살은 투명한 빛을 뿜어대던 오월 말쯤이었을까. 매일 걷던 산길에도 푸르름이 차올랐다. 빈 곳 없이 하늘을 가린 울창한 나무 사이로 그날도 숨어들었다. 그건 하루를 완성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걷기와 달리기에 빠져들면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은 아늑하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자주 보는 나무도, 이파리도, 나무뿌리까지 친근해서 기회만 되면 산으로 달려가곤 했다.

운동에 대한 당위성에 힘입어 숲이 주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모르고 산길을 올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매일 걷는 길에서였다. 찌직, 찌지직, 뭔가를 긁어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리고 위에서 툭툭 내리는 초록 열매들, 매실이었다. 온전하게 동그란 열매가 아닌 반으로 쩍쩍 갈라진 매실은 마치 누가 던지기라도 하는 듯 쉼 없이 떨어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과실 모양이 이상했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고개를 들고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다. 이파리 사이에 재바르게 움직이는 물체, 저게 뭘까. 하나가 아닌,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가지가 흔들렸다. 빗자루 같은 꼬리를 단 짐승들이 허공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람쥐로 알았다. 하지만 등에 줄무늬가 없었다. 게다가 곱상하지도 않았다. 꼬리도 길고 잿빛 털은 부스스했다. 청솔모였다. 털이 삐죽빼죽한 귀를 곤두세우고 날카로운 이빨로 청솔모는 매실을 갉아대고 있었다. 앞발을 이용해 열매를 꽉 잡고 속을 파는 듯했다.

순간 독한 짐승이구나 생각했다. 시퍼런 매실을 갉아먹다니 말이다. 생각만으로도 혀가 굳을 것 같은데 청솔모는 신맛을 구분하는 감각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땅에 떨어져 뒹구는 건 반으로 갈라진 매실이었다. 모두 씨가 사라진 열매, 그러니 청솔모가 먹은 건 매실 씨의 속살이었다. 찌지직거렸던 건 단단한 씨앗의 껍질을 벗길 때 나는 소리였다.

나무는 쾌 컸다. 줄기가 굵진 않았지만, 가지가 버드나무처럼 넓게 휘어졌다. 무심코 다닐 때는 그곳에 매실나무가 있는 줄도 몰랐다. 비로소 자세히 본 나무에는 열매가 실하게 달려 있었다. 녀석들에게는 배를 채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었다.

녀석들을 본 날 이후부터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소리가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음은 한없이 바쁜데도 눈은 어느새 나무 사이를 더듬었다. 여전히 씨앗을 갉는 소리는 고요한 숲에 메아리쳤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면 청솔모는 휘늘어진 가지에 올라앉아 천연덕스럽게 열매를 까먹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로 매실을 갉아대는 모양은 기계처럼 빨랐다. 나와 눈이 마주쳐도 까만 눈을 말똥거리며 쳐다보았다. 동그란 매실을 입에 물고는 거꾸로 매달린 채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매실 하나가 생명을 잃고 무생물이 되어버리는 데는 채 일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들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듯했다. 씨앗이 움트기 시작하는 계절은 다람쥐과 동물에게는 춘궁기라 했다. 주로 나무 열매를 먹는 짐승들인데 봄이면 땅에 떨어진 열매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먹이를 찾아 나무 위를 헤매는 것이리라.

깊은 산속이 아닌 도심의 산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해봐야 새나 청솔모가 고작이다. 그것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빠른 녀석들이라 나타나더라도 금방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런 녀석들을 그렇게 자주, 많이 본적은 없었다. 정적인 나무만 있는 숲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개체가 있다는 사실은 생기를 더해주었다.

청솔모의 움직임에 따라 가지는 휘어지고 흔들리며 햇빛을 풀었다가 가두곤 했다. 조롱조롱 달린 매실이 짐승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기에 그 광경은 신기하고도 진기했다. 가을이면 청명한 하늘에 펼쳐진 감나무의 감을 새들이 쪼아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건 자연 속에서 무시로 이루어지는 보시가 아닌가.

생태계의 순환으로 어떤 생명은 흙으로 돌아가고 다른 생명은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매실이 청솔모에 생명을 준 것처럼 매실에 생명을 준 또 다른 개체가 있을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을 생성하고 해소하는 근원은 공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공기 속에 들어있는 어떤 물질들이 매실을 키운 게 분명했다. 생명에도 흐름이라는 게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돌고 도는 생명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열흘 정도, 그 어느 때보다 산길 걷기는 즐거웠다. 매실나무와 청솔모 덕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청솔모가 사라져 버린 나무는 여백이 더 크게 느껴진다. 더불어 녀석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먹이가 많은 가을까지 어딘가에서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필 오디세이』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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