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덜 까불지/ 신재기

 

 

 

어느 문학관 담당자가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사정이 있어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불가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가 어려워 궁색한 핑계만 늘어놓고 말았다. 거절하는 내 태도에 마음이 편치 못했을 텐데도 그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관심을 가져 달라면서 인내심을 발휘했다. 내심 미안했다.

 

퇴직할 무렵 어느 시점부터 다짐하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 앞에 내 얕은 지식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자제하겠다고. 특히 문학 관련 심사나 강의는 가능하면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벌여놓은 일도 있고, 얽힌 인간관계로 간혹 심사에도 참여하고 강의도 깨끗하게 손 털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더군다나 올해부터는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아 발간하는 잡지의 발행인 책무를 맡았다. 회원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시작한 강의가 지금은 일상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오래 끌고 가지는 않을 생각이다. 글 쓰고 강의하는 일에 매여 살아온 삶이 아니던가. 어찌 그 일을 한순간에 벗어던질 수 있겠는가마는 실행에 옮기려고 무진 애를 쓴다.

 

교수 혹은 전문가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남의 작품을 함부로 심사했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마음의 가책을 느낀다. 알량한 지식, 일천한 경험, 왜곡된 논리를 앞세워 아래를 내려다보는 태도로 남의 작품을 멋대로 재단하지는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평론가로서 평문을 집필할 때도 그랬다. 문제에 관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논리를 펴는 단호함은 어디서 온 것인가. 겉으로 명징하게 드러나는 현상 너머에는 불가지한 심연의 세계가 있음을 인식치 못한 채 말이다. 무지가 낳은 만용이 아니던가. 평가하는 내가 평가받는 그들보다 더 낫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 제도가 부여한 자리를 실력으로 착각하고 오만함에 젖어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한 점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 얼마나 뻔뻔스러운 태도였던가.

 

강의도 마찬가지였다. 진실에 대한 확신도 없이 오염된 감정과 욕망의 언어를 태연하게 내뱉었다. 강의에 푹 빠지면 나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열정을 가지고 무엇을 설파하는 것은 아름답고 숭고할 수도 있다. 그것이 심연에서 우러나는 진리의 샘물일 때는 그렇다. 하지만 그 열정 뒤에는 초라하고 비루한 내 실체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래 더욱더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위장이고 허위다. 말을 쏟아내면 낼수록 내 존재는 점점 가벼워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로 신명을 풀었다. 사실과 진리에 다가간다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내 자랑이 밭고랑을 이루었고 비천한 욕망이 얼룩처럼 배어 있었다.

 

어릴 때 선친은 다소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좀 덜 까불지’라는 말을 종종 했다. 일상의 언행을 지켜보다 과하다 생각되면 던지는 충고였다.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선친의 유일한 말이다. 예순 나이를 넘어서야 이 말을 제대로 새겨들을 수 있었다. 사려분별을 앞세워 자식을 훈육하는 일을 나름대로 실행했을 테지만 그 어떤 가르침보다 ‘덜 까불지’라는 선친의 이 한마디 나무람이 훗날 자식의 가슴을 진하게 울렸다. 진중치 못하고 지망한 아들의 언행이 걱정되었으리라.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말고 하찮은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어른이 되어서도 겸허함으로 자신을 낮추고 제어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꼬집고 비판하는 일에 열중했다. 나는 바르고 정의롭다는 독선에 갇혀 툭하면 세상을 탓하고 남을 비난하지 않았던가. 뒤돌아보면 그간 얼마나 까불며 살았던가.

 

‘까불다’라는 말은 곡식 등을 키에 담아 위아래로 가볍고 빠르게 흔들어 쭉정이나 검불 따위를 바람에 날려 보낸다는 뜻의 동사이다. 여기서 의미가 전이되어 그 행동거지가 가볍고 방정맞고 건방지고 주제넘음을 일컫는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건방지게 구는 경망스러운 언행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진중하지 못하고 언행이 가벼운 사람, 자신을 내세워 자랑을 일삼는 사람, 좀 알고 가졌다고 남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 등을 나무랄 때 ‘까불지 마라’는 말을 사용한다. 물론 ‘덜 까불지’라는 말은 아들 훈계로는 다소 거칠다. 훈육보다는 야단에 더 가깝다. 그러나 오랜 세월 뒤 어느 한순간 이 말은 아들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그 의미를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을.

 

이문열의 소설 <금시조>의 등장인물 ‘고죽’은 예술적 재능이 출중한 화가였다. 서화에서 ‘도’를 중시하는 석담이란 스승 밑에서 박대를 받으며 성장한 고죽은 스승에 대한 애증이 증폭되자 석담 곁을 떠나 자기의 길을 걷는다. 스승의 도학적 예술관에 맞서 예술의 본질적 지향은 예술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그는 스승을 부정하고 자기 관점과 이상을 표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데, 말년에 이르러 자기 작품을 남기지 않고 불태운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가. 작가가 의도한 주제는 석담과 고죽의 대립하는 두 예술관의 변증법적 통일이다. 하지만 이 의도된 관념적 주제를 떠나 한 예술가의 자기 삶에 대한 회한이나 반성 정도의 상식적인 해석이 훨씬 더 진한 울림을 줄 것 같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신에게서 균열을 발견할 때 밀려드는 회환과 허적이, 그리고 자기를 지움으로써 완성의 가능성을 찾는 자기 부정의 비극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날 뱉었던 그 많은 말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대부분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긴 하지만, 어쩌면 내 존재의 너절함을 변명하고 못난 면을 감추려는 속임수였는지도 모른다. 자기 분수도 모른 채 말로 금자탑을 쌓겠다며 당당하고 의연한 척했던 그 허영이 이제 비수로 되돌아와 가슴에 꽂힌다. <금시조>의 고죽이 자기 그림을 모두 찾아내어 불태웠듯이 지난날 뱉은 그 허접한 말들을 끌어 모아 한꺼번에 폐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불가능하지만 좀 덜 까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까불지 말자’며 다짐하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까불고 있는지 모른다. 죽음이 목전에 이르면 까불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남은 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언명을 따르는 일이다. 이것인들 어디 쉽겠는가마는.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