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과 찔레나무 / 강돈묵
전원의 꿈이 특별히 있었던 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사람에 치이다 보니 조용히 살고 싶었다. 어쩌면 견디기 어려웠다기보다 내 성미 탓일지 모른다. 직장생활의 분주함이라든지, 수시로 접하게 되는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비껴나 전원의 조용함을 꿈꾸었다.
그러면서 시답잖게 울 안에 오죽(烏竹)을 심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한번 내보았다. 삶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오죽의 심성이 더 그럴싸해 보였다. 이것은 순전히 강릉 오죽헌(烏竹軒)의 탓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만난 오죽헌의 검은 대는 보통 대보다 훨씬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울 안에 오죽만 있으면 커가는 아이들이 올곧은 심성으로 율곡처럼 큰 인물이 되리라는 헛된 기대에 빠져 있었다. 막연히 오죽헌의 분위기를 동경하다가 친구 집에서 오죽을 만났다. 내 마음을 알아차린 친구가 커다란 화분에 흙을 얹어 가져왔다. 어디가 좋을까. 정식할 자리를 찾다가 주차장 담벼락에 붙여 자리를 잡아 주었다. 무성하게 뻗어가는 실죽(實竹)의 기세를 생각하면 이곳이 적격이다 싶었다. 주차장 바닥은 콘크리트를 바르고 가장자리에 두 자 정도의 너비로 흙이 채워 있어서 옆으로 트인 통로만 차단하면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였다.
오죽을 심던 날 뭔지 모를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딱히 그럴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데, 왠지 모를 웃음기가 자주 흘렀고, 집안에 빛이 훤히 비치는 듯이 느껴졌다. 용한 지관을 만나 조상을 모실 영모원(靈慕苑) 터를 잡던 날도 이랬지 싶다.
가끔 들르는 식당에 노란 할미꽃이 있었다. 잘 꾸민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분재가 즐비했고, 피고 지는 다양한 화초 속에서 노란 할미꽃이 수줍게 내 눈을 붙잡았다. 씨를 따기로 주인과 선약하고 할미의 머리가 하얗게 되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백두옹이 되었다 싶어 씨앗을 받으러 다시 방문했다. 할미꽃을 찾으니 온데간데없다.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이 지나갔다. 주인은 없어졌다며 대신 이것으로 뿌리를 내려 보라며 가시가 성성한 찔레나무를 지적했다. 거제왕찔레꽃나무다. 하얀 꽃이 주먹만 해서 보기에 괜찮다며 삽수를 몇 개 만들어 주었다. 집에 와 보니 아래위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잎자루도 제멋대로 붙어 있고, 무서운 가시마저 갈고리처럼 휘어 있어 어느 쪽이 위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삽목판에 꽂아 두었더니 겨우 두 개 뿌리를 내렸다. 가시가 무서워서 심을 자리를 고민하다가 한갓지고 안전한 곳으로 오죽 옆 담에 붙여서 심었다.
가시가 너무 날카로워 특별히 조심하였는데도 흙을 덮으며 손끝에 상처를 입었다. 가시는 제 앞에 얼씬거리는 것은 무엇이든 할퀴고 보는 난폭자였다. 제 영역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때로는 이웃의 울안까지 넘보는 욕심쟁이였다.
튼실한 타일 판으로 경계를 확실히 해준 덕에 두어 해 동안 자라나는 오죽의 특이함과 기개를 지켜볼 수 있었다. 또한 찔레꽃의 하얀 꽃송이에 빠져서 주먹으로 크기를 재며 감탄하였다. 그러나 무슨 놈의 찔레꽃이 이리 크냐는 이들의 탄성에 빙긋이 웃어 주던 우쭐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서너 해가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 찔레나무 가지가 어찌나 무성한지, 한 해에 이삼 미터씩 자라나 허공을 흔들어 댄다. 갖으나 날카로운 가시가 무서운데 휘휘 늘어진 가지들이 주변에 심술을 부리듯 활개 치며 자맥질이다.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가시에 찔리기 일쑤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의 손가락에 연고를 들이미는 일이 자주 생겼다.
아무리 사람들의 선망 대상이라 해도 다른 이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 싶어 오죽 뿌리에 차단막을 설치했었다. 오죽은 순응하였다. 뻗어나가고 싶은 심성을 다스리느라 흙 밖으로 실죽을 밀어 올리기도 하며 제 성미를 추슬렀다. 이웃을 넘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끝까지 지켜냈다.
하지만 왕성하게 자라는 찔레나무는 달랐다. 가시를 앞세우고 온 정원을 제 터전으로 만들었다. 누구의 등이 되었든 제가 가고 싶은 곳이면 맘대로 휘젓고 올라탔다. 하얀 순백이 좋아 접근하면 손을 대기가 무섭게 바람을 타고 달려들어 상처를 내어 내몰고 만다. 이제는 오죽의 머리 위로도 제 맘대로 휘젓고 다닌다. 오죽은 제어하는 대로 순응하여 자신의 욕심을 통제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나, 찔레는 막무가내였다.
아침마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떠올린다. 오죽과 찔레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사람 속 다툼이 싫어 전원주택을 마련하였더니, 찔레 가시가 내 심기를 깐죽인다. 나름 오죽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 구해 심은 것인데 찔레나무가 가시를 앞세워 뒤덮었다. 그리고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 그렇다고 두 생명체의 경계인 타일 판을 신경질적으로 뽑아내자니, 그도 좀 그렇다. 현직에 있을 때의 아픈 기억이 밀물져 온다. 불의에 빠진 현실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