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멈춰 서다 /장미숙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가끔 생각이야 나겠지만 점차 잊힐 거라 여겼다. 시간과 장소가 바뀌다 보니 일찍 잘 수 있었고 덕분에 새벽 시간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다. 잃으면 얻는 게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는 점도 괜찮았다.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니 자유로움이 발걸음을 달뜨게 했다.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머릿속에 복잡한 일들도 정리가 되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새로운 일상은 삶을 더 다양하게 만들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자연의 소리를 세세하게 들을 수 있어 심신이 맑아졌다. 관계라는 복잡한 그물망에서 감정을 소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걷고 뛰는 동안 사계절이 여러 번 지나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하는 나무와 꽃들이 안주하려는 몸을 부추겨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열병은 유튜브에서 한 남자를 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언젠가부터 멍하니 바라보는 영상의 대부분은 몸을 움직이는 것들이었다. 그중 중국 남자에게 푹 빠졌다. 아주 젊은 남자는 아니었다.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쯤 되었을까. 그 남자가 나오는 영상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귄’이었다.

‘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귀염성’의 전남 방언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건 단편적인 해석이다. 예전 고향에서는 ‘귄’이라는 단어가 무척 다양하게 쓰였다. ‘믿음직하다’, ‘매력있다’, ‘훈훈하다’, ‘다정하다’, ‘실속있다’, ‘잘생겼다’, ‘행동이 반듯하다’ 등의 의미를 포함한 사투리였다. 어른들은 괜찮은 사람을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 남자가 그랬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도 그의 움직임은 도드라졌다. 동작은 마치 물이 흐르듯, 몸짓이 하나로 연결된 듯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힘 있는 동작을 할 때는 허공을 칼로 자른 듯 정확하고 깔끔했다. 동작이 크고 신체 부위를 잘 활용했다. 몸이 음악을 흡수해 체화한 듯 보였다. 음악과 동작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어긋남이 없었다. 표정까지 완벽하게 조화로웠다.

어려운 동작으로 혼을 빼는 것도 아니었다. 단순하면서도 쉬운 몸짓을 잘 엮어서 시원시원하게 팔을 뻗쳤다. 섬세한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허공에 수많은 형상을 그렸다. 큰 동작은 크고 경쾌하게, 작은 동작은 오밀조밀하게 펼쳤다. 그가 신들린 듯 앞뒤로 움직일 때면 몸이 들썩였다. 지금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으로 남자를 따라 했다. 매일 그를 보며 허한 가슴을 채웠다.

그랬다. 아닌 줄 알았는데 허함을 실감했다. 한때 에어로빅에 빠져 지낸 시간이 영상 속으로 스며들고 그곳에 내가 있는 듯 착각에 빠졌다. 몸에 내재한 동작들은 나를 지난 시절로 데려갔다. 어쩔 수 없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팔을 휘둘러보고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한낱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벌써 사오 년이 지났으니 리듬 감각도 떨어졌다.

이십오 년 정도 해온 운동이었다. 서른 초반에 시작해 쉰 중반에 그만두었으니 족히 긴 날들을 에어로빅과 함께했다.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산골에서 태어난 덕분인지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성격은 본래부터 타고났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움직이는 게 좋았다. 그러다가 집 근처 근린공원을 찾았고 처음 알게 된 에어로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많은 사람으로 인해 응축된 기는 흥을 만들었고 흥은 곧 삶의 에너지로 이어졌다. 팍팍한 날들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없이 어설펐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빠져들었다. 한 시간을 대충 보내지 않았다. 느슨한 삶을 조이고 담금질하고 새로운 다짐으로 풀어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가볍게 왔다 단순하게 가는 사람들 속에서 내 여운은 한없이 길고 묵직했다.

조금씩 몸에 쌓인 리듬은 계속 이어지고 변화했다. 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도 포기할 수 없었다. 불안정한 가정사로 평탄치 않은 하루하루는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갔지만, 다음날이면 샘물처럼 몸속 가득 차오르는 리듬을 느꼈다. 이른 새벽, 공원으로 달려가 음악에 두려움과 불안을 씻었다. 핍박과 폭력으로 얼룩진 바닥의 삶 속에서도 오롯이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움직이고 뛰는 동작이었다.

야외에서 시작된 에어로빅은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실내의 전문반으로 이어졌다. 공원에서 제약 없이 할 때는 느슨하고 자유로웠지만, 실내의 전문반은 몰아치는 느낌으로 왔다. 신체의 각 부위를 제대로 활용할 때의 쾌감은 컸다. 육체노동을 끝내고 쉬어야 할 저녁 시간이란 것도 개의치 않았다.

잠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이십여 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센터가 있었다. 겨울에도 컴컴한 어둠을 헤치고 혹은 눈 속을 달려 열기와 함성 속에 합류했다. 춤이라고 하기엔 지극히 절도 있고 체조라고 하기엔 유연함을 곁들인 그 중간이 좋았다. 타고나지 않아도 따라 할 수 있는 감각 정도에 만족했다. 몸을 힘들게 하고 팔다리의 기능을 활용해서 얻어지는 땀은 뭉친 근육을 풀고 세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대형거울에 비친 나는 살려고 몸부림치는 존재로 다가왔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실체는 때로 타인의 영역처럼 냉담하게 혹은 간절하게 생과 마주하고 있었다.

당시는 뛸 수 있을 때까지 할 거라고 자신했다. 몸에서 리듬을 놓아버리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로 단체활동이 제한되면서 열정을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오 년이 훌쩍 흘렀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잊힌 게 아니었다. 야외에서 달리다가도 문득 멈춰 서는 날들이 많아진 까닭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과 열정도 곧 식을 거라는 걸….

웃음 한번 날리고 숲길을 걷는다. 발걸음 사이로 다채로웠던 지난 시간이 휙휙 지나간다. 다음 생이 있다면 춤꾼의 재능을 부여받아 몸의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마음을 달래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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