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2026-09-14 (월) 12:00:00 조옥규 수필가


어느 사이엔가 큰 올케가 달려 내려와 “작은 아씨 오시느라 힘드셨죠?”라며 손을 잡아 주었고, 돌계단을 오르고 높은 대문턱을 넘으면 정갈하게 빗질 된 안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큰 집에는 일꾼들이 드나드는 쪽문이 하나 더 있었다. 문턱이 높아 조심해야했지만, 이 문은 어린 마음에 동화의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쪽문 밖에는 까치가 날아와 시문을 읊는 고목이 된 감나무가 서 있고, 비탈진 산밭에는 개구리참외와 수박이 단내를 풍기며 익어갔다. 목화는 다래를 키우기에 분주하고, 콩밭과 수수밭에서는 은밀한 대화가 오가는 듯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물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서로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높낮이도 따지지 않았다.

나는 사촌들과 쪽문을 통해 산밭으로 나가 익은 참외를 따서 옹달샘에 담가 놓는 일을 좋아했다. 그날도 재빨리 달아나 버리는 오빠들을 따라가려다 쪽문 턱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는 길을 일을 도와주는 언어장애인 아줌마가 나를 업고 뛰었다. 큰집은 산촌이라 병원에 가려면 십 리 길을 걸어 나가야 했다. 큰어머니는 아줌마와 소통을 답답해했지만, 그래도 기운 하나는 돌절구도 깨뜨리는 장사라며 나를 그 아줌마 등에 업혔다.

 

피범벅이 된 나를 업고 아줌마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 신작로 먼지는 하얗게 피어났고, 걸음이 느린 우리 엄마는 기를 쓰고 따라오셨다.


베적삼을 입은 아줌마의 등이 금세 땀으로 젖어 들었다. 나는 그날 아줌마의 등에서 배어 나오던 진실된 땀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마를 다섯 바늘 꿰매었다고 한다. 아팠던 기억보다는 잘 참았다며 의사 선생님이 주신 하얀색 바둑껌이 신세계였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생각해 보면 냉면을 먹기 위해 넘어야 했던 턱과, 동화처럼 신기했던 세상의 턱은 어쩌면 삶에서 우리를 한 뼘씩 자라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사람 마음에 생긴 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턱을 허물어뜨릴 시원한 산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려나.

어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을 때린다.

“세상에 턱지지 말고 살아라.”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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