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5 (화) 12:00:00 홍용희 수필가
“빛은 어둠에서 나온다.” 세상의 빛만큼 많은 그림자를 체험한 뜻이다.
나는 ‘컷 피스 Cut Piece 1965’ 영상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30대 시절의 공연에서 관객들의 행위는 망설임, 부드러움, 거칠음이 뒤섞여 검은 상하의를 잘라낸다. 어느 관객의 가위가 브라 끈을 끊었을 때, 그녀는 두 팔을 들어 가슴을 감싼다. 말 없는 저항. 그 묵언의 힘은 지금도 가시지 않는 어제의 불편함을 떠오르게 한다.
집에 돌아와 2003년 파리 공연의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70대 오노가 다시 무대에서 사랑과 평화를 외쳤다. 거의 한 생애를 돌아본 자의 깨달음일까. 그녀는 ‘컷 피스’라는 제목에 ‘바이 피스’를 더해 ‘컷 피스 바이 피스 Cut Piece By Peace’로 진정한 빛을 호소했다.
2003년 파리 공연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검은 상하의를 입고 의자에 앉은 그녀. 관객들은 마치 대칭을 이루는 무늬처럼 질서 정연하게 옷을 잘라낸다. 제목의 ‘평화’라는 단어 때문일까. 20세기 후반의 전쟁과 사회적 긴장, 그리고 그녀의 나이테가 객석의 태도까지 바꾼 듯하다. 결국 상하의는 모두 잘려나갔지만, 그녀는 검은 비키니 같은 속옷만 입은 채 당당히 서 있다. 시대를 앞선 예술가? 70대의 그 담담함은 소리 없는 절규 같다. 그렇다고 전쟁이 사라질 리야 없겠지만, 그 모습은 분명 빛을 발한다.
그녀는 예술을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흐름으로 보았다. 나도 전시장에서 못 박힌 하얀 캔버스에 못 하나를 박았다. 망치 소리는 사라졌지만, 한 번 박힌 것은 작품의 뜻이 된다. 그렇다면 어제 그리피스 파크에서 박힌 그 바늘도 내 여린 마음을 단단하게 여며주는 의미가 될까. 정말 그럴까. 어둠에서 길을 만든 예술가도 있지만, 어제의 그 남자처럼 아무 말이나 던지는 사람도 있다. 사방에 길은 많다.
나도 한 번쯤, 그처럼 말해버리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