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4 (목) 12:00:00 이리나 수필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려다 이메일함을 다시 열었다. 그사이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으니, 전화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추가로 도착해 있었다. 통신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상담원들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TV 신의 안부를 다그치는 미완의 신도가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전화를 내려놓았다.
TV는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섬기던 신이다. 아침에 눈을 떠 제일 먼저 안부를 묻고, 보든 안 보든 하루 종일 틀어 놓으며, 밤에 잠들기 전까지 그 앞에서 맴돈다. 집안 어느 방향에서나 잘 보이게 거실 가운데 모셔두고, 수시로 먼지를 털어내며 정성을 쏟는 나의 TV 신. 보여주는 화면과 내용으로 온 집안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존재. 그 신이 지금 침묵하고 있다. 신전의 불이 꺼지자,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마약이나 도박만 중독이 아니다. 침묵하면 이토록 영혼이 황량해지니 TV야말로 내게는 지독한 중독이다. 신이 오늘 아무것도 계시하지 않으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책을 펼쳐 들어도 자꾸만 눈길이 그곳으로 향한다. 제발 그 신성한 화면에서 그림 한 컷, 소리 한 자락이라도 보여주며 나를 구원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 영상을 몇 개 찾아보았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콘텐츠였지만, 당장의 공허함을 메꾸기에는 적당한 가짜 신이었다. 자괴감과 시간 낭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손가락은 다음 영상을 누르고 있었다. 이 비참한 대체 행위 또한 중독의 연장이었다.
TV 신이 잠잠한 오늘, 나는 갈 길을 잃었다.
<이리나 수필가>
